‘게으른 천재’에서 ‘노력형 당구소녀’로 진화

프로당구 선수 김보미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프로당구 선수 김보미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화려한 머리 염색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발산하는 김보미(24· NH농협카드) 선수는 부녀선수로도 유명하다. ‘뽀미 아빠’ 김병호(하나카드) 선수가 그의 아버지다. 김보미는 중학교 때 아버지의 권유로 당구를 시작해 고등학생 시절부터 전국 대회를 휩쓸고 다녀 ‘천재 당구소녀’로 불렸다. 그러나 정작 선수 본인은 천재라는 단어에 모순이 있다며 자신을 ‘노력형 당구소녀’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올해 개인전 우승과 팀리그 우승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겠다는 김보미 선수를 서울 강남구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점에서 만났다.

당구가 죽기보다 싫었던 소녀
성인 되고 찾아온 늦은 사춘기

김보미는 천재라는 별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당구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대한당구연맹 선수로 활동할 때 당구가 싫어서 연습을 게을리 했지만 정작 대회에 출전하면 우승을 하는 등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당구를 스파르타 식으로 가르쳤어요. 제가 잘 치지 못하는 공이 있으면 그 공만 11시간동안 시킬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었을 때 늦은 사춘기가 왔죠. 그래서 아버지한테 당구를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너무 힘들다 보니 재미도 없고, 재미가 없다보니 흥미도 없어진 거죠. 그래서 3년 정도 연습도 안하고 맨날 놀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대회에 준비 없이 나가 우승을 하고, 랭킹도 1위를 찍자 주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천재 당구소녀’ 였던 거죠.”

김보미는 당구가 그저 싫었지만 또 할 수 있는 일이 당구뿐이었다. 13살 때 시작한 당구였다. 성인이 돼서 딱히 다른 할 일을 찾기도 힘들었다. 프로가 생기지 않았다면, 또 팀리그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김보미는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PBA가 생기면서 프로로 전향할 때도 그저 아버지가 참가하니까 따라갔을 뿐이에요. 그런데 프로가 생기면서 팀리그가 생겼고, 그때 운 좋게도 SK렌터카에서 저를 뽑아 주셨어요. 여태 당구는 개인이 묵묵하게 하는 스포츠라 여겼는데 팀리그에 막상 들어가니 강동궁, 임정숙, 김형곤, 고상운, 에디 레펜스까지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한 팀이 된 거죠.”

팀리그에 합류하자 김보미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다시 큐를 잡고 연습장을 향했다. 과거처럼 그저 큐를 잡는 것 자체가 싫어서 빈둥거릴 여건이 아니었다. 쟁쟁한 팀원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조바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천재 당구소녀라는 별명은 사실 들으면 너무 민망하죠. 철없던 시절도 떠오르기도 하고요. 지금은 매일 연습에 집중하면서 개인전과 팀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력형 당구소녀’로 불리고 싶어요.”

미래를 내다본 아버지의 선택 ‘3쿠션’
14살 때부터 스파르타식 당구 교육

프로당구 선수 김보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보미는 당구를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했다. 아버지 김병호 선수가 운영하는 당구장에서 그녀는 선수의 꿈을 키우며 3쿠션에 도전했다.

“친할아버지 묘지를 갔는데 그날 아버지가 당구를 시켜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한테 인사하고 오는 길에 당구를 쳐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사실 제가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다 보니 그런 저에게 빨리 진로를 잡아주고 싶었나 봐요. 마침 아버지 본인도 당구 선수니까 당구 선수로 자연스럽게 진로가 결정된 거죠.”

그가 당구를 처음 시작한 2011년은 여자 포켓볼이 유행하던 시기다. 하지만 김보미는 포켓볼이 아닌 3쿠션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어린 나이에 선수로 등록해 본격적인 도전에 나서게 된다.

“그때 여자 포켓볼 선수는 많았지만 3쿠션 선수는 거의 없었어요. 아버지가 미래를 내다보고 3쿠션을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여자 3쿠션도 발전할 것이라 믿으신 거죠. 그래서 저는 4구나 포켓볼은 해본 적도 없이 바로 국제식 대대에서 3쿠션을 배웠죠.”

그렇게 3쿠션에 발을 담근 그는 2년 정도 동호인 생활하다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후 연습시간을 늘려야 했다. 정상권 여자 선수들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연습만이 해답이었다. 그는 당시를 생각하면 진짜 당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아버지가 새벽까지 당구를 연습시켰어요. 그렇게 밤을 새고 아침에 학교를 가는 패턴이었죠. 아무래도 학교에선 공부보단 부족한 잠을 보충했죠.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당시엔 당구장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폈잖아요. 밤새 당구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가면 아무래도 담배 냄새가 몸에 나는 거에요. 그래서 학교에서 불량학생처럼 비춰진 거죠. 다행히 나중에 선생님들이 제 사정을 알고 이해 해주셔서 좋게 봐주셨어요.”

김보미의 아버지가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다면 어머니는 당구를 그만두려 할 때마다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흔들리는 김보미의 중심을 잡아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딸이 TV에 나올 때마다 주변에 자랑할 정도의 ‘딸 바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저를 당구선수로 진로를 잡아 주자 너무 좋아하셨어요.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정신적으로 저를 잡아줬습니다. 두 분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항상 강조하시면서 ‘지금 열심히 해야 나중에 편할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 줬어요. 특히 어머니는 ‘1등이 최고야’라는 스타일이세요. 그래서 제가 TV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자랑을 하신 거 같아요.”

김보미는 성인이 된 후 당구에 대한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자 아버지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이 강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다른 방식의 당구를 접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박광렬(PBA) 선수를 찾아가 원포인트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를 찾았다.

“아버지랑은 연습 경기도 하지 않아요. 재미삼아 하더라도 제가 못 치면 배운 대로 못한다고 혼내는 거에요. 그래서 아버지랑은 게임을 하지 않게 됐죠. 20살이 넘어가면서 당구 자체를 죽기보다 싫어하면서 멀리하게 됐는데, 그때 박광렬 프로님이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다 프로로 넘어와선 팀리그에 있는 선수들에게 원포인트 식으로 배우면서 실력이 탄탄해졌죠.”

전환점이 된 팀리그 소속감
“당구 매력 팀리그에서 찾아”

2020 팀리그 때 경기에서 맞붙은 부녀, 2018 아시아 3쿠션 선수권 대회 준우승 당시, 올해 열린 첫 팀리그서 퍼펙트큐 달성 후 받은 꽃다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선수제공

프로로 오기 전까지 당구를 피해다니며 방황하던 그는 팀리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팀리그가 그녀에겐 인생의 변곡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방황을 잡아 준 당구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프로로 온 것도 그저 배운 게 당구니까, 아버지가 하자니까 별 생각 없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구는 혼자 외롭게 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팀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이 생긴 거에요. 혼자만의 싸움이고, 혼자 이겨내는 멘탈 스포츠라고 생각하던 당구가 6명이 서로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하나의 팀 스포츠가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된 거죠. 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연습도 하게 되고요. 당구의 매력이 뭐냐고 지금 누가 물어보면 당연히 ‘팀리그’라고 할 정도로 저한테는 전환점이 됐습니다.”

올해 팀리그에는 새롭게 여자 복식 경기가 추가됐다. 같은 대구 출신의 김민아 선수와 팀을 이뤘다. 하지만 언론의 평가는 냉랭했다. 팀리그 여자복식 조 중에서 약체로 분류했던 것이다. 오기가 꿈틀거렸다. 새롭게 각오를 다진 결과 현재 ‘김보미-김민아’ 팀은 최강의 호흡을 자랑하며 여자복식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자복식이 시작되기 전에 저희 팀이 가장 약체라고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저희 팀만 당시에 우승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1라운드에서 민아 언니가 개인전 우승을 했어요. 뭐랄까, 약체라고 나간 기사를 보고 엄청 자극을 받은 것 같아요. 전 개인전에서 아직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복식만큼은 잘하고 싶었죠. 그래서 언니한테 우리가 ‘대구의 힘을 보여주자.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뒤집어보자’라고 다짐했고, 다행히 1라운드 성적이 좋게 나와서 뿌듯합니다.”

김보미는 명실상부 세계 여자 3쿠션을 평정하고 있는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를 롤모델로 꼽고 있다. 남자 선수들과도 견줄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어 한다. 국내에서 롤모델은 김민아를 꼽는다. 마침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여자복식에서 좋은 성적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도 롤모델과 한 팀을 이뤄 경기에 나선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롤모델은 어릴 때 테레사 선수를 비롯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 명만 꼽으라고 하면 민아 언니가 제 롤모델입니다. 같은 고향 선배인데 민아 언니가 저 학창시절 때 대구연맹에서 유명했거든요. 아버지도 저한테 ‘너도 저렇게 돼야 되지 않겠냐’라고 얘기를 많이 하셨고요. 그래서 저는 롤모델을 민아 언니라고 생각하고 자랐어요. 그런데 지금 한 팀을 이루고 있으니 제가 더 열심히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아직 제가 어린 편에 속하는데 나중에 저도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도록 복식에서 좋은 성적을 내보려고 해요.”

“개인전과 팀리그 우승이 목표”
부녀 맞대결도 기필코 승리 의지

프로당구 선수 김보미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어릴 때 스파르타 교육을 받은 김보미는 그 누구보다 기본기가 튼튼한 선수로 뽑힌다. 기본기가 튼튼한 만큼 지금은 동료 선수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때마다 빠른 흡수력을 보이며 실력 향상의 거름으로 삼고 있다. 배운 것을 몸으로 체득할 때까지 훈련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연습한다.

“확실히 제가 중학교 때 받았던 2년간의 스파르타 방식이 지금의 제가 되도록 만든 것 같아요. 기본기가 있다 보니 지금은 제가 잘 안 되는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연습합니다. 다른 선수들이 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시합 영상을 보면서 따라하는 방식인 거죠. 못하는 포인트를 잡고 반복적으로 연습하면서 제 것이 되도록 합니다. 최근엔 힘이 좋은 남자 선수 경기를 보면서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기도 해요.”

김보미의 올해 목표는 팀리그와 개인전 우승이다.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아버지와 팀리그에서 마주치면 기필코 이기겠다는 다짐이다. 부녀간 맞대결로 세간의 화제가 됐지만 아직까지 아쉽게 승리해본 적이 없어서다.

“예전에는 누군가 목표에 대해 물어보면 순위권만 갔으면 좋겠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거 자체가 잘못됐다고 깨달았죠. 겸손이라고 생각했던 목표가 오히려 진짜 4강에 올라갔을 때 마음을 풀어지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우승을 목표로 해야 제 마음가짐이 더 단단해질 것 같아요. 그리고 아버지랑 2020년 팀리그에서 2번 마주쳤는데 2번 모두 졌어요. 올해 혹시라도 마주치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이길 거에요.”

그녀는 인터뷰 마지막에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는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제가 당구선수가 될 때부터 응원해 주시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과거 당구가 싫다는 핑계로 열심히 안 해서 실망하셨던 팬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해요. 분명 저한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었을 텐데 항상 응원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주는 팬 분들한테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수많은 메시지에 하나하나 답변을 다 못해도 읽으면서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저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우승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김동찬 스포츠한국 기자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