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31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 165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론스타 측 청구 금액인 46억 7950만달러의 4.6%에 불과해 선방했다는 의견이 있다. 애초 뻥튀기된 금액일 뿐 아니라 낼 필요 없는 돈이므로 실질적으로 한국 정부가 패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불복해 취소 및 집행정지를 신청할 계획을 밝혔으므로 10년을 끈 이 싸움은 아직 끝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가 판정 무효가 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설령 무효 판정이 나더라도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라 새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기존 판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볼 뿐이다.

론스타 사태는 무려 20년을 거슬러 올라간 2003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수출입은행과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대주주로 있던 외환은행이 현대전자, 현대건설 등의 부실화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제2의 금융위기를 걱정한 정부는 외환은행의 매각을 결정하고 매수자를 물색했으나 적절한 상대를 찾을 수 없었다. 오직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만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기로 한다. 

여기서 두 가지 논점이 등장한다. 첫째는 과연 외환은행이 매각될 만큼 부실화된 상태였는가이다. 당시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8%를 건전한 은행의 기준으로 봤다. 2003년 6월 당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9.56%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 비율이 곧 8%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외환은행 측에 BIS 전망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6.16%라는 외환은행 측의 답변이 팩스로 날아왔고 이 수치에 근거해 외환은행의 매각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론스타는 2003년 약 1조 3800억원에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했고 2012년 하나은행에 3조 9000억원에 매각했다. 매각차익뿐만 아니라 그동안 받은 배당금까지 합쳐 4조 6000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외환은행이 부실하지 않았다면 나가지 않았을 돈이므로 국부 유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는 것은 당연했다. 

이에 따라 관련 담당자들이 기소돼 법정에 섰으나 최종 무죄로 판결됐다. 전망이 얼마나 객관적이었느냐는 알 수 없지만, 판단과 의사결정은 정책 담당자의 몫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일단 결론이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것이 위법이 아닌가이다. 론스타는 사모펀드로서 은행이 아니므로, 인수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은행법 시행령 제8조 2의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적용해 인수를 예외 승인했다. 

그렇더라도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면 금산분리를 엄격히 적용하는 은행법에 저촉되므로 여전히 인수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당시 은행법은 비금융 부문의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이면 산업자본으로 간주하고 이들이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것이 뒤늦게 판명된다. 시민단체 등의 조사에 의해 론스타가 일본에 골프장 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때문에 론스타에 매각하기로 한 결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심의가 있었는지 의문이 일었다. 고의는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정부가 법을 위반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실을 명백히 밝히지 않고 흐지부지한 태도를 보이다가 2012년이 되어서야 “론스타가 2010년 말 기준으로는 산업자본이지만, 골프장을 팔았으니 지금은 아니다”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린다.

이 문제는 두고두고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ICSID에 우리 정부를 대상으로 ISDS 소송을 제기한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 정부의 법령과 정책 등으로 손해를 봤을 때 국제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론스타는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 9000억원에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맺었으나 우리 정부가 승인을 지연하는 과정에서 계약이 파기됐다. 이후 하나은행과 4조 7000억원에 1차 계약을 맺었으나 승인을 늦추고 가격을 낮추라는 압력을 넣는 바람에 최종 매각 가격이 낮아져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ISDS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우리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론스타의 과실도 존재하기 때문에 배상금을 깎아 준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정부가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해 쟁점을 삼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분쟁에서 우리의 입장이 현저히 약해지는 원인이 됐다.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은 국내법을 위반한 투자이니, ISDS를 통해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으면 결론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이러한 논리를 배제했고, 국민의 세금으로 2억 1650만달러를 배상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안 내도 될 돈을 내면서 선방한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론스타 사태가 이처럼 사회적 관심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비판의 대상으로 오래도록 남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정부의 비밀주의에 있다고 보인다. 국민이 미심쩍어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도 과정과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ISDS의 판정 과정에서도 한국 정부는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면밀히 살펴서 대응하겠다’는 식으로 발표했고, 이에 따라 국민들은 정보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오히려 론스타가 홈페이지나 언론을 통해 흘리는 정보에 의존해 상황을 짐작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번 ISDS 판정문도 공개되고 있지 않으며 이에 따라 논란과 의문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정보 공개가 분쟁의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국회에서 검증 절차를 거침으로써 올바른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목격했다. 처음으로 은행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사태를 경험했고 이에 대한 대응을 능숙하게 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고 앞으로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론스타 사태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따지고 벌을 주거나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미래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미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점검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밀주의의 장막을 거두고 징비록을 작성함으로써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