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한일 정상회담 현안 해결도 가시밭길…한반도 외교 ‘3중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9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과의 외교전이 3중 파도로 덮쳐오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서열 3위의 실세가 60명이 넘는 수행단을 대동해 방한했다. 미국 하원 의장으로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의장의 방한 당시 ‘홀대론’ 논란을 비웃듯 중국 측은 세를 과시했다. 중국은 이번 대규모 수행단 방한을 통해 미국이 집중하고 있는 반도체 등의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한국의 균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등 외교적 압박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UN) 총회 연설을 계기로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계획이다. 따라서 중국의 방한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한 한국 기업에 대한 피해를 어떻게 수습할지도 큰 과제로 남아 있다. 2년 10개월 만에 이뤄지는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강제노역 관련 대법원 판결로 인한 한일 간 민감한 현안들에 관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지가 최대 관심사다. 윤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을 가늠할 거센 파도가 9월에만 세 차례 몰려오는 것이다. 

66명 방한단 꾸린 중국 서열 3위…역사 논란 중국박물관 표기도 변경  

중국 공산당 서열 3위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그를 맞이한 한국 측 인사는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었다. 리 상무위원장은 16일 윤 대통령을 예방했다. 중국 상무위원장 방한은 2015년 장더장 전 상무위원장 이후 7년 만이다.

미국의 요청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한 달 전 미국 펠로시 하원의장 방한 당시 우리 측 인사가 오산 공군기지에 아무도 나가지 않은 데다 윤 대통령과 전화 통화만 이뤄져 '홀대' 논란을 빚었던 장면과는 대비가 된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으로 중국 방한단이 입국한 만큼, 이 사무총장이 통상의 절차에 따라 영접했다는 게 국회 측 설명이다. 리 상무위원장의 방한은 지난 2월 초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것에 대한 답방 성격이 강하다.

리 상무위원장은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주로 인천공항으로 드나든 것과 달리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는 국가 정상급에 준하는 최고위 인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방한단 규모도 무려 66명에 달한다. 

대표단에는 양전우 전인대 상무위원회 비서장, 우위량 전인대 감찰 및 사법위원회 주임위원, 쉬사오스 전인대 재정경제위원회 주임 위원, 장예수이 전인대 외사위원회 주임 위원 등 장관급 4명과 차관급 3명이 포함돼 있다.

이번 중국 측 대규모 방한단은 윤 대통령이 오는 18일부터 5박 7일간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에 나서 유엔 총회 기간 중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둔 상태여서 더욱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번 방한을 통해 미국의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한국이 미국으로 급속히 기울어질 것에 대비한 압박과 설득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이다. 중국 수행단을 맞이하는 윤석열 정부의 속내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이와 관련, 중국은 또 다른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열린 고대 유물 전시회에서 고구려와 발해 내용을 제외해 논란이 된 한국사 연표를 철거하기로 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15일 "중국 국가박물관으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특별전 '동방길금(동방의 상서로운 금속) -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에 게시된 한국사 연표를 철거한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도 "중국 측은 그간 가장 문제가 되었던 특별전의 한국사 연표를 우선 철거하는 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외교 경로를 통해 오늘 통보해 왔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13일 국내 언론 보도를 통해 연표 문제가 알려진 지 이틀 만이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날 오전 한국사 연표 부분을 즉각 시정하지 않으면 한국 측 전시실에 대한 전시 관람 중단을 요구하고 전시품을 조기에 철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국 국가박물관은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중·일 공동 특별전을 열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한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 부분을 빼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동북공정’ 등 중국의 한국 역사 왜곡에 대해 한국 내 감정이 악화한 상황에서 돌출된 사건이라 자칫 한중간 외교적 ‘뇌관’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5일 상무위원장을 앞세운 수행단의 방한을 앞두고 극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중국 측이 상황관리를 위해 사태를 봉합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중관계가 정체된 상황에서 이번 방한에 대한 중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전기차 뒤통수 논란 해결 난망…일본은 한일 정상회담 미지근 반응

윤 대통령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각각 현지에서 양자 정상회담을 갖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유엔 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놓고 시간을 조율 중이다"고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격식을 붙이지는 않지만 30분간 얼굴을 마주 보고 진행하는 양자 회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서로 알고 있는 우려 사항도 있고 이미 확인했던 의제도 있기 때문에 실무차원에서 관계 부처가 발전시켜온 이행방안들이 있다"며 "그것을 구체화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정상들이 식별해 공감 이루는 회담"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선 "흔쾌히 합의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눌지 정하지 않았다"면서 "강제노역 등 현안들은 자체적으로 한국이 프로세스 진행하고 있고, 일본과도 내밀하게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이로써 대선 직후인 지난 5월 21일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서울에서 회담한 이후 4개월 만에 양국 정상은 뉴욕에서 다시 회담을 갖는다.

한일 정상회담은 2019년 1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회담을 가진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성사됐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대면했으나 공식적인 양자 회담은 불발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길은 순탄하지 않은 가시밭길이 깔려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 전기차·배터리와 반도체의 미국 내 산업기반을 강화하는 IRA를 시행키로 한 것을 어떤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미 서명을 한 이후라 한국 전기차 등에 대한 차별 속 요소를 해소할 만한 구체적인 성과를 가져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한일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양국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강제노역 배상 문제를 놓고 일본은 줄곧 한국의 해법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태도 변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강제 동원 문제가 한일 정상회담 의제에 오르더라도 구체적인 합의보다 원칙적 수준의 입장 표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을 가능케 하는 '핵 무력 정책' 법령을 채택하는 등 핵 도발 위협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일 정상이 만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외교적 진전으로 평가할 여지는 남아 있다.

하지만 일본은 벌써 기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우리 정부의 반응과는 달리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정부의 양국 정상회담 발표에 대해 이날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기시다 총리가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지만, 뉴욕 방문의 구체적 일정은 정해진 게 없다"고 반응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