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버블’ 사태 재연되나...기업가치 부풀려 재투자로 연명하는 생태계 ‘흔들’

5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스타트업 축제 '스플래시(SPLASH) 2022'에서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5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스타트업 축제 '스플래시(SPLASH) 2022'에서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유망 스타트업으로 꼽히던 회사들도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투자가 위축됐고 내부적으로는 자생할만한 수익 모델 창출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BM)을 구축하지 못한 채 가입자 수를 늘려 기업가치를 부풀려 재투자받는 스타트업 생태계 구조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인다.

75만 회원 규모 ‘오늘회’

전 직원 권고사직 통보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회’는 지난 2일 서비스를 중단했다가 14일 재개했다. 운영은 재개됐지만, 배송 가능한 상품은 2개로 나머지는 모두 ‘상품준비중’ 문구를 달고 있는 상태다. 오늘회 운영사인 ‘오늘식탁’은 최근 300여 개 협력 업체, 총 40억원 규모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지난달 31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오늘회의 서비스 중단은 업계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오늘회는 누적 회원 수 75만명에 지난 4월까지 누적 매출액이 131억 4000만원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53억원)과 비교하면 144% 증가한 수치다.

특히 카카오톡 서비스 등을 통해 ‘당일 배송 회’라는 인지도를 높여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에 지난해 초 12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협력업체 대금 지급이 밀리는 등 자금난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식탁은 지난 5일 공식 입장을 통해 “조직과 재무구조를 전환하는 과정 속에 있다”며 “부득이하게 서비스를 일시 중지를 시킨 것은 실제로 오늘회의 서비스를 재정비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서비스 지역의 변경·배송시간의 변경·상품의 재오픈 등 재정비를 해서 오픈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자금난과 인력난으로 위기 징후가 감지되는 스타트업은 늘어나고 있다.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VROONG) 운영사 메쉬코리아는 핵심 인력들의 줄 퇴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스탠퍼드대 출신의 인공지능(AI) 전문가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회사를 떠난 데 이어 SM엔터테인먼트 출신의 최고디지털책임자(CDO)도 지난달 사표를 냈다.

메쉬코리아는 지난해 7월 KB인베스트먼트 등에서 1500억원 투자를 유치해 큰 화제가 됐다. 이에 경기 김포, 남양주 등에 물류센터를 구축하며 종합 물류 플랫폼 회사로 사업 투자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커진 덩치에 비해 수익화는 빠르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오프라인 클래스 플랫폼 ‘탈잉’도 핵심 인원 인력이 연이어 퇴사 행렬에 동참했다. 탈잉은 지난해 2월 메가스터디, 신한대체투자운용, DSC인베스트먼트 등에서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그러나 교육 플랫폼 시장이 치열해지면서 추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 ‘휘청’

스타트업 투자유치 70% 감소

스타트업의 자금난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유치 규모는 최근 1년새 70% 넘게 줄어들었다.

스타트업 민관협력 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투자 유치 규모는 올 7월 기준 836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조659억원)보다 72.7%나 급감했다. 정부가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만든 모태펀드 예산안도 감소하는 추세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내년 모태펀드 예산은 3135억원으로 올해(5200억원)보다 40%가량 줄어든 수치다.

투자금이 축소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금리인상에 따라 유동성 자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스타트업의 한파는 이제 시작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스타트업들이 투자 유치에는 사활을 거는 반면 수익 창출은 더딘 구조적 한계가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속속 나오고 있다. 자체 수익 구조가 미미하고 투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현재의 자금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적자 스타트업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가 늘어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지만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데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적자 상황을 견디면서 사업을 키워야 하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10년간 스타트업 투자는 호황을 구가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유동성 위기가 오면서 자체 수익 창출 동력이 약한 스타트업들이 큰 타격을 받는 상황이다.

실제로 작년 초까지만 해도 넘치는 시장 유동성으로 스타트업들이 투자받기 쉬운 환경이었다. 특히 ‘플랫폼’이라고 하면 까다로운 사업 검토 없이도 투자가 몰려 너도나도 뛰어든 경향이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글로벌 유동성 위기 속에서 벤처투자업계도 ‘투자 회수’로 돌아선 만큼 앞으로 향후 몇 년간은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는 스타트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한편에서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 사태가 플랫폼 비즈니스 위기로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외부 투자나 정부 지원 등 외부 요소에 기대하기보다는 ‘작지만 알찬’ 사업 모델을 꾸려가면서 자생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장착한 스타트업으로 변신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지금은 대규모 확장이 아닌 ‘생존’을 먼저 직시할 때”라고 전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