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추석 연휴 전해진 가장 반가운 뉴스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패퇴했다는 소식이었다. 외신 보도로는 수천 명의 러시아 군인이 탄약과 장비를 버리고 달아났고, 이번 하르키우 수복이 러-우 전쟁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낙관론을 내세우긴 이르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우크라이나가 동북부 지역을 일부 되찾긴 했어도 우크라이나 영토 5분의 1에 상당하는 동남부 지역은 여전히 러시아가 광범위하게 점령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성도 이번 하르키우 지역 탈환이 전세를 뒤집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러시아 쪽 사기가 크게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푸틴은 공세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라 펀더멘털 한 변화가 발생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코멘트했다.

오히려 이번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일부 수복한 것이 전황의 장기화, 고착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모종의 희망이 생기면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가 서방을 다른 방법으로 압박하기 위해 에너지 무기화를 위해 공급을 더 조일 가능성도 있다. 설사 휴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상호 간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상황이라, 러시아가 예전과 같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으로 기능하긴 더욱 어렵다.

그래서일까.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ESG 전략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중요한 상황에서 화석연료냐, 친환경 연료냐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른바 ‘반 ESG(Anti-ESG) 행동주의’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인 "깨어있어라(Woke)"의 저자인 라마스와미(Ramaswamy)가 그 주인공인데 얼마 전 석유기업 셰브론에 화석연료 생산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내 화제가 됐다. 공개서한의 주요 내용은 1) ESG 경영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탈피해라 2) ESG 같은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이슈로 프로젝트를 판단하지 말고 계량 가능한 투자 수익률(ROI) 같은 지표를 기준 삼아라 3)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탄소 저감 및 ESG 프로젝트는 단호히 거부해라 등이었다. 

라마스와미는 지난 8월 에너지 업종에 투자하는 ETF를 출시하고 셰브론을 직접 매입했는데, 내년 주총 시즌에 위임장을 모아 적극적인 주주제안을 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하고 있다. 물론, 라마스와미의 셰브론 지분율은 0.02%에 불과하고 블랙록(BlackRock),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뱅가드(Vanguard) 같은 인덱스 전문 운용사들이 20%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다. 이에 라마스와미는 화석연료에 우호적인 워런 버핏 등에 도움을 청할 계획을 하고 있는데, 워런 버핏은 실제로 셰브론 지분을 8%나 보유하고 있고, 올해는 석유기업 옥시덴털 페트롤륨(Occidental Petroleum)에 베팅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로 화석연료 생산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논지다. 

이 와중에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ESG에 대한 반발이 공화당 우세 주에서 급격하게 확산하는 조짐도 발견되고 있다. 얼마 전 플로리다에서는 연기금이 자산운용 전략을 짤 때 ESG를 의무적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하는 조항을 전격 삭제했는데, 이번엔 텍사스가 비슷한 조치에 나섰다. 텍사스주 정부는 이미 2021년에 텍사스 공적연금이 에너지 기업을 보이콧하는 금융회사들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승인했는데, 이번엔 리스트를 한층 더 확장했다. 친 ESG 성향으로 유명한 블랙록뿐만 아니라 BNP파리바, 크레디스위스, UBS 등 유럽 9개 금융회사와 ESG 전략을 가지고 투자하는 348개 뮤추얼 펀드까지 투자 금지 리스트에 올랐다. 여기에는 아이셰어스(iShares)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예탁증서(SPDR), 뱅가드가 운용하는 ESG ETF까지 다수 포함됐다.

텍사스의 교직원 연기금은 전 세계 20위에 달하는 규모가 매우 큰 연기금이다. 운용자산(AUM)은 약 1,600억달러(우리 돈 약 200조원)에 달한다. 11월 중간선거 앞둔 정치싸움의 일환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한다면, 친환경이나 ESG 전략에 큰 변곡점이 올 가능성도 있다.

이는 결국 에너지 무기화, 원자재의 보호무역주의 흐름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호주는 전 세계 3위 LNG 수출국으로 유명한데 얼마 전 아이러니하게도 자국민이 쓸 가스가 부족해져 수출 제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수출 제재 검토 원인은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스 잉여분을 국내보다는 해외로 돌려 수출하는 업체들이 많아진 데다, ESG 전략 일환으로 동부 해안의 석탄발전소를 폐쇄했는데 이후 정전 사태가 빈번해져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호주에는 에너지원이 부족하면 LNG 업체들의 수출을 제한하는 ADGSM(Australian Domestic Gas Security Mechanism)라는 제도가 있는데 10월 1일 이전에 결정, 고지된다면 2023년 1월부터 적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장기계약을 통해 LNG를 공급받고 있고, ADGSM은 가스 잉여분에 대한 제재이긴 하지만 이런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에너지 가격이 재차 급등할 가능성이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는 우크라이나 군이 하르키우를 재탈환하고 우세를 보이는 현상을 순수하게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러-우 전쟁의 결과와 관계없이 에너지 공급망의 교란 현상은 장기화할 조짐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물가 안정 기대로 금융시장의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재차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중립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 박소연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프로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 (2001)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대학원 수료 (2010)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2003.10~2007.08)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2007.09~2021.08)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 담당 (2021.09 ~현재) <수상내역 및 기타> -매일경제 베스트 애널리스트 2011, 2012, 2014, 2015 -한국경제 베스트 애널리스트 2015, 2016 -조선일보-Fnguide 베스트 애널리스트 2016, 2017, 2018, 2020 -2016 서울경제 올해의 애널리스트 수상 -2021 매일경제 증권대상 수상 -KRX 증권시장 협의회, 수협중앙회 자문위원 위촉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연합뉴스 등 언론 출연

 


박소연 칼럼니스트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