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배터리 이어… 국내 산업 불이익 확대 우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입법 기념행사에서 연설하며 겉옷을 벗고 있다. 그는 미국산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주요 치적으로 거론하며 IRA 성과를 거듭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입법 기념행사에서 연설하며 겉옷을 벗고 있다. 그는 미국산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주요 치적으로 거론하며 IRA 성과를 거듭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국과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전기차에 이어 바이오산업도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 미국 내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했다. 또한 해외 자본의 자국 산업 투자를 이전보다 까다롭게 규제하는 등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을 예고했다.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이 강화되면서 전기차·배터리에 이어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져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바이든 행정명령 서명
생명공학·AI 등에 20억달러 투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외국인의 미국에 대한 투자를 심사할 때 국가안보 위협 분야와 사이버보안 등 특정 국가안보 위험 여부를 검토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CFIUS가 설립된 1975년 이래로 대통령이 거래 심사 대상에 공식적으로 지침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정명령이 적용되는 분야는 초소형 전자공학과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양자 컴퓨팅, 첨단의 청정에너지, 기후 적응 기술 등 첨단 기술 분야다. 백악관은 행정명령 이행을 위해 20억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한다. 국방부는 국내 바이오 생산 기반 구축에 향후 5년간 10억달러를 투입한다. 바이오 생산시설을 사이버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2억달러가 투자된다.

이틀 전인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 생명공학·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은 후속 조치다.

바이든 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반도체 생산·공급망 동맹인 ‘칩4’(chip4)를 준비하며 반도체 분야의 자국 공급력 강화에 집중해 왔다. 이번 투자 결정은 식량 안보와 관련된 농업 기반 요소 등으로까지 전선을 급격하게 확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해당 정책에선 식량 안보부터 백신 주권까지 아우르고 있다. 보건인적서비스부는 전염병 대응에 필요한 약물에 쓰이는 원료와 항생제 생산에 4000만달러, 불에 잘 타지 않는 합성물, 고분자 등의 소재를 개발·생산하는 데도 5년간 2억 7000만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또한 에너지부는 바이오매스와 폐기물로 연료, 화학물, 소재를 만드는 분야의 연구개발과 상업화 등에 1억 6000만달러, 생명공학 연구개발에 1억 7800만달러를 지원한다. 농무부는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비료를 자체 생산하는데 2억 5000만달러를 투입한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캐슬린 힉스 국방부 부장관은 “생명 공학·제조는 국가를 방어하는 국방부의 임무를 변혁할 잠재력이 있다”며 “중국 같은 전략적 경쟁자들도 이런 기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미국의 선두 지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말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 11일 “지난 5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새로운 기술을 가속화하고 의료, 농업, 연료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술한 생물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산업에 대한 투자를 억제할 방안을 모색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일련의 정책은 미국이 자국 산업에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해외 투자는 규제 허들을 높여 중국 등에 대한 의존도를 떨어뜨리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백악관은 지난 12일 “글로벌 산업은 생명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혁명의 전환점”이라며 “미국은 해외의 원재료와 바이오 생산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고, 생명공학 등 주요 산업의 과거 오프 쇼어링(생산시설 해외 이전)은 우리가 중요한 화학 및 제약 성분 같은 재료에 대한 접근성을 위협한다”고 밝혔다.

추가 투자 계획에 미국의 관련 기업들은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6일 마이크로소프트 지노믹스는 회사 트위터에서 국가 생명공학·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내용을 담은 백악관 보도자료를 인용하고 “정밀 의료 및 국민 건강과 관련된 통합된 다중 모드 데이터 세트를 활용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협력하자”며 “우리는 이를 실현하는 안전하고 확장 가능한 협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과학자 및 파트너와 협력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바이오 회사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시스 오브 캘리포니아(PacBio)도 해당 트윗을 인용하며 “국가 생명공학 및 생물 제조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대한 게놈 정보를 밝히는 것은 번영하는 미래 생물 경제에 필수적일 것”이라고 반색했다. 

미국 기업들 반색, 정치권도 환영
셀트리온 “미국 현지 판매도 검토”

이 같은 정책에 미국 여론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당분간 장기화할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미국이 오는 11월 8일 상·하원 및 공직자를 선출하는 중간선거를 앞둔 가운데, 자국주의 산업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지렛대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선거 분석 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지난 1∼13일 공표된 각종 여론조사를 취합한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평균 지지율은 지난 14일(현지시간) 기준 42.4%로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1년 만에 40%대 초반으로 추락하고 이후 장기간 30%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최근 반등한 것이다. 

야당에서도 바이든의 자국주의 정책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의원들은 애플이 신제품 아이폰 14에 중국의 반도체 기업인 YMTC에서 생산한 낸드플래시 메모리칩이 탑재될 계획이라는 보도를 보고 비판을 쏟아냈다. 

공화당 소속인 마르코 루비오 미국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은 “애플이 불장난하고 있다”며 “만약 애플이 더 진전시킨다면 연방정부로부터 전례 없는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 투자를 기대했던 우리 기업들이다. 앞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산 전기차까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해 역차별 논란을 초래했다, 

국내 업계에서는 미국이 바이오 분야까지 전선을 확장한 정책과 관련해 어디까지 여파가 미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셀트리온은 미국의 바이오 행정명령과 관련해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보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지난 15일 밝혔다. 셀트리온 측은 이날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구상' 행정명령과 관련해 문의가 많다”며 “행정명령 상세안을 검토했으나 현재까지 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2023년 이후 미국 시장에서 출시될 제품은 셀트리온헬스케어 미국법인을 통해 직접 판매 방식으로 판매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셀트리온은 현재 미국에서 다국적제약사 화이자를 통해 자가면역질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미국 제품명 인플렉트라)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 다른 제약사 테바를 통해서는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 '허주마' 등이 미국 내에서 판매된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