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런 저지. (사진=AFPBBNews 제공)
애런 저지. (사진=AFPBBNews 제공)

야구의 ‘꽃’은 무엇일까. 투수들의 강속구를 활용한 삼진? 빠른 발을 활용한 도루? 정교한 타격?

누가 뭐래도 역시 야구하면 ‘홈런’이다. 베이브 루스가 지금까지도 '야구의 신'으로 여겨지는 것은 홈런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야구의 꽃’이 가장 아름답게 만개했던 시기가 있다. 바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로 대표되는 홈런 레이스와 배리 본즈의 한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73개)과 역대 홈런 1위 등극(762개)은 마이클 조던에 의해 NBA에게 패권을 내줬던 미국 최고 스포츠의 위치를 다시 되찾게 하는데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본즈와 소사, 맥과이어 등 당대 스타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이 공개되면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믿음과 위신은 추락했다. 당시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기이면서도 가장 추악한 시기였다.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들의 홈런 기록을 폄하하고 명예의 전당 헌액을 거부하는 등 이 시기를 애써 잊으려 하고 있다.

이제 ‘애써’ 잊을 필요가 없다. 애런 저지(30·뉴욕 양키스)라는 ‘괴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약물 없이 청정한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저지가 지난 21일(한국시간) 60홈런 고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6번째 단일시즌 60홈런.

저지가 때려낸 60홈런의 의미와 대기록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깨끗한’ 60홈런

메이저리그 140여년 동안 한 시즌 6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는 고작 5명이었다. 배리 본즈(73개), 마크 맥과이어(70→65개), 새미 소사(66→64→63개), 로저 매리스(61개) 베이브 루스(60개)였고 저지는 6번째 선수가 됐다.

그러나 본즈와 맥과이어, 소사는 약물 시대를 대표하는 ‘부끄러운 선수’다. 그렇기에 메이지리그에서 사실상 매리스와 루스, 그리고 본즈 이전에 통산 홈런 1위였던 행크 아론을 진정한 홈런왕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야구의 신’ 루스의 기록마저 논란이 되기도 한다. 루스가 활약한 1910년대부터 1930년까지는 유색인종 선수가 뛸 수 없었다. 루스는 오로지 백인들이 던진 공만 쳤고, 백인 사이에서 경쟁했다.

저지는 흑백혼혈로 태어난 지 하루만에 입양됐다. 그의 형 역시 한국인으로 같은 가정에 입양됐다. 다양한 인종의 더불어 사는 삶과 차별없는 사회를 지양하는 미국의 정신에 들어맞는 롤모델인 가정 속에서 메이저리그의 과거의 어두운 면을 걷어내는 홈런왕이 탄생했기에 미국 사회는 더욱 열광하고 있다.

MVP는 당연… 트리플 크라운에 초점

2013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2번째로 양키스에 입단한 저지는 양키스 팜에서만 크며 메이저리그에 등장했고, 2017년 5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MLB 신인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다. 이후 잦은 부상에도 데릭 지터 이후 ‘양키스의 상징’으로 꾸준히 활약해오며 올시즌 드디어 60홈런 이상 때려낸 역사적인 시즌을 만들어냈다.

원래 지난시즌 만장일치 MVP를 탄 ‘투타겸업’ 오타니 쇼헤이와 아메리칸리그 MVP 경쟁이 예상됐으나 오타니가 타자로는 40홈런(종료 13경기 남기고 34홈런), 투수로는 15승(13경기 남기고 13승)을 넘어서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저지의 MVP가 당연시 되는 분위기다. 물론 오타니는 다른 시즌에 같은 기록을 세웠다면 MVP 후보로 손색없겠지만 하필 경쟁자가 60홈런을 때린 저지라는 점에서 아쉽다.

만장일치 MVP냐 아니냐만이 관건인 저지가 도전하는 대기록이 또 있다. 바로 타율-홈런-타점왕 동시 석권인 ‘트리플 크라운’이다. 22일까지 시즌 종료 14경기만 남겨놓고 아메리칸리그 타율 1위(0.317), 홈런 1위(60홈런), 타점 1위(128타점)인 상황. 홈런은 2위와 무려 23개차, 타점도 2위에 13개나 앞서 있어 1위 수성에는 문제없을 전망.

관건은 타율이다. 잰더 보가츠(보스턴 레드삭스)가 3할1푼7리 동률, 루이스 아라애즈(미네소타 트윈스)가 3할1푼4리 등 타율 경쟁이 치열하다. 만약 저지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면 2012년 미겔 카브레라 이후 10년만에 처음이자 양키스 타자로는 1956년 미키 맨튼 이후 66년만에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스테로이드 보다 무서운 FA로이드… FA 금액이 궁금

홈런 신기록으로 MVP는 떼놓은 당상에 타자의 로망인 트리플 크라운까지 도전하는 저지의 올시즌 맹활약의 이유로 모두가 한가지를 꼽는다.

바로 금지약물인 스테로이트 보다 무섭다는 ‘FA로이드’이기 때문. 올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게 되는 저지의 초대형 계약은 올시즌 활약으로 이미 확정적이다.

사실 양키스 입장에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양키스는 올시즌 전 저지와 장기계약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양키스가 8년 2억3300만달러(약 3283억원)의 계약을 제시했음에도 저지는 10년 3억6000만달러를 요구하며 서로 간극이 너무 커 결렬됐다. 결국 저지는 올시즌이 끝나고 FA시장에 나가게 됐고 이제 양키스는 뉴욕 메츠, 보스턴 레드삭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과 경쟁해야한다.

현재 저지는 최소 8년 이상의 기간에 총액 3억달러 이상의 계약은 ‘기본’으로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남은 10여경기 동안 저지가 얼마나 더 많은 홈런을 때릴지, 그리고 타율에서 1위를 수성해 10년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지, 그리고 시즌 종료 후에는 얼마나 큰 FA계약을 따낼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남게 된 메이저리그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