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EU가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과도한 이익을 얻는 발전사에 ‘횡재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EU가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과도한 이익을 얻는 발전사에 ‘횡재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8.3% 올라, 7월의 8.5%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1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0.75% 올려 인플레이션 억제가 통화정책의 확고부동한 목표임을 선포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2.5%이나 미국은 3.25%에 이르러 상당한 금리 역전이 일어났다. 양국의 금리 인상 추세를 감안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환율이 급등해 외환시장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미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4364억 3000만달러로, 지난해 말 대비 266억 9000만 달러 줄어들었으며 그 감소 추세가 가팔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당분간 0.25%의 금리 인상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금리 격차가 벌어지고 환율의 변동성이 심화된다면 그러한 기조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만약 한국은행이 연준을 따라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인다면 가장 타격이 예상되는 부분이 가계부채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지목돼 왔지만 장기간 증가해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경제 주체들은 이 이슈에 대해 둔감해져 있고 경고의 목소리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과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금리 인상기를 맞아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9조 4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분기보다 6조 4000억원이 늘었는데 1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조사 대상 36개 국가 중 최고였다. 

가계대출 증가는 집단대출 등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쳤는데 2분기 주택담보대출의 규모는 8조 7000억원 증가한 1001조 4000억원에 달했다. 여전히 부동산 거래가 가계대출 증가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창구별로는 은행권 가계대출이 1000억원 감소했으나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 그리고 보험 등 기타금융기관의 가계대출 규모가 각각 9000억원 늘어났다. 비은행권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신용도가 낮고 이들에 대한 대출금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의 질이 나빠진 것이다.

가계부채의 약한 고리는 다중채무자, 청년 및 고령층, 그리고 자영업자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행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대출자 가운데 22.4%가 다중채무자이며 대출잔액의 31.9%가 다중채무로 분류됐다. 더욱이 다중채무자의 대출잔액 가운데 76.8%가 저축은행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기준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시중은행이 연 4.23%, 저축은행이 연 9.79%다.

지난 1분기 ‘30대 이하’ 연령층의 가계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7.5%로 역대 최고치에 달하고 있는데 이들 중 취약 차주 비중은 6.9%, 잠재 취약 차주 비중은 17.1%로 나타났다. 이들 부채의 상당부분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영끌’(영혼을 끌어 모아 투자) 투자에 기원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60대 이상 고령층의 가계대출 총액은 349조 8024억원으로 전체의 19%에 달해 규모가 만만치 않다. 더구나 그 증가세는 다른 연령층을 상회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60세 이상 개인사업자 대출은 142조 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9% 늘어 30~50대의 9.4%를 크게 능가했다. 이는 은퇴 이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현실을 반영한다. 

3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차주 수는 314만명, 총액은 664조원에 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래 2년 동안 개인사업자 대출차주는 33%, 총액은 32.4%나 늘어났다. 이들은 대출에 의존해 위기를 극복했으나 아직까지 매출 감소의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악화하면서 이들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의 대응책이 충분한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는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만들어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금액이 적고 지원대상도 부실 또는 부실우려 차주에 국한됐다. 따라서 아직 신용점수가 괜찮지만 매출과 소득이 적어 한계선상에 있는 다수 자영업자가 사각지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고령층에 대한 별도의 방안이 없고 오히려 노인 일자리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이들의 채무상환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청년층에 대해서는 ‘청년 특례 채무조정’을 도입해 34살 이하 저신용자에게 최대 50%까지 이자를 감면하고 상환 기간을 늘려주고 있으나 충분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원금 탕감이 빠지게 된 것은 ‘빚투’까지 세금으로 갚아주느냐는 비판 때문이었으나 지난해 신용회복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청년 채무 조종자의 주요 연체 사유는 근로소득 감소와 생계비 증가, 실직으로 빚투는 0.8%에 그쳤다. 

이처럼 취약계층에 대한 가계부채 대응이 부실한 이유는 상당 부분 정부의 건전재정정책에도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제약조건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횡재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정유회사 등 에너지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데 이들에게 1400억유로를 걷어 가계 및 기업에게 전기요금 등을 보조한다는 것이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이미 도입했고 미국도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10개 금융지주회사의 당기순이익은 12조 4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동기보다 7.4% 증가한 금액이다. 이들 금융기관은 과거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 시기에는 대출 증가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최근 금리인상 시기에는 예대금리차 확대로 이익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위기 상황에서 뜻밖의 횡재를 누린 셈이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금융기관의 대출 증가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를 가진다. 금융기관은 가계부채 증가에 상당한 책임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그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공적 기능을 감안하면 그들에게 일정한 기여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유례없는 위기 상황을 벗어나면서 금리 인상이라는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은행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통해 취약 차주에 대한 충분한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것이 고객의 부도로 인한 신용위기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점에서 은행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