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벨리키 노브고로드에서 열린 러시아 건국 116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벨리키 노브고로드에서 열린 러시아 건국 116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유엔(UN) 총회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공방이 치열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과 부분적 군 동원령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고 응수했다.

최후의 카드인 핵을 거론하면서 수세에서 벗어나려는 러시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 침략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맞물리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앞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폭탄선언성 발언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3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부분 동원령을 내렸고 심지어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대량 살상무기 사용을 논의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면서 강력한 대응을 경고했다. 그는 엄포가 아니라고까지 말했다.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푸틴이 핵전쟁을 위협했다”고 전했다. 

푸틴만이 아니었다. 푸틴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다음날 러시아 영토 방어를 위해 전략핵무기를 포함한 어떠한 무기도 쓸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위협의 수위를 더욱 끌어올린 것이다. 서방측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등 특정지역에서만 핵을 사용하는 전술핵 공격 가능성을 예상했지만 전면적 핵전쟁을 불러올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비친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장악했던 동부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에 의해 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나온 이 발언은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방의 관심은 단연 핵에 쏠렸다. 궁지에 몰린 푸틴이 자칫 전 세계를 핵재앙으로 몰아갈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푸틴의 발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과거 러시아가 점령한 크름 반도를 탈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과도 맞물려 볼 수 있다. 젤렌스키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몰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지만 푸틴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를 보낸 셈이다.

푸틴은 당초 일정에 비해 대국민 연설을 하루 미뤘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하루 지연된 것을 감안하면 이번 발언이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것임을 볼 수 있다. 러시아를 상대로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을 흔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바이든 대통령도 푸틴의 발언을 계기로 연설 내용을 긴급 수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제77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 전쟁의 위협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은 비확산 체제의 의무를 무모하게도 무시하며 유럽을 상대로 공공연한 핵 위협을 했다"고 지적하면서 "핵전쟁은 승자가 없는 전쟁이며,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고 했다.

사실 푸틴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서방이 대량 살상무기를 러시아에 사용하려 한다는 주장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억지 주장일 뿐이다. 억지 주장이겠지만 끼어 맞추기 식으로 자신의 향후 행동을 정당화했다.

과연 푸틴은 핵을 선택할 수 있을까. 러시아가 최악의 경우 ICBM으로 미국을 공격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보다는 유럽 서방 국가와 우크라이나를 겨냥해 전술핵을 교묘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술핵을 사용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지역을 공격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자국 영토에서 전술핵 실험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어 흑해나 우크라이나 인근 지역으로 무력시위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술핵 공격 가능성도 있다. 

푸틴의 발언은 심리전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쟁의 전황이 역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러 세력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강제 병합을 위한 국민투표를 성사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동남부 루간스크, 도네츠크, 헤르손, 자포리자에서는 러시아 합병을 위한 긴급 주민 투표 요구가 나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군의 공세에 밀려 북동부 지역의 점령지에서 후퇴한 상황에서 서둘러 국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내 핵심 지역 병합을 마무리하려는 시도다. 

이들 지역을 병합하면 러시아는 앞서 병합한 크름 반도와 연결되는 핵심 전략 요충지를 확보할 수 있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지난 2014년 크름 반도에 강제로 진입해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주민 투표를 내세워 합병한 전력이 있다. 친러 세력이 많은 지역인 만큼 이번에도 러시아 합병을 선택하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러시아는 국민투표에서 러시아 병합이 결정되면 군을 즉시 주둔시키고 이 지역에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가할 경우 러시아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보복할 것임을 경고하며 서방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이 경우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끝낼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바이든 대통령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일부를 병합하려고 가짜 투표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지도에서 지우려고 이웃나라(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러시아의 의도를 차단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에 의해 무력해진 안보리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압박의 수위를 높였지만 이는 현실성이 높지 않다. 

다만 수세에 몰린 푸틴이 탈출구를 모색하는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변곡점이 곧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