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테크족 VS 플렉스 소비…평소 허리띠 졸라매도 ‘나’를 위한 소비는 ‘펑펑’

'런치플레이션'(런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외식물가가 오르면서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20일 서울 시내 편의점의 간편식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런치플레이션'(런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외식물가가 오르면서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20일 서울 시내 편의점의 간편식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시기인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 물가상승률이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양극화된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최대한 아껴 쓰는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는 반면 고비용이더라도 자신만의 취향과 명품에 무게를 실은 소비행태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른바 ‘짠테크’(소비를 줄이는 사람을 일컫는 ‘짠돌이’와 재테크의 합성어)와 ‘플렉스 소비’(소비를 통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함)의 공존 시대다.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의 두 얼굴인 셈이다.

MZ세대 중심 ‘무지출 챌린지’ 확산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4.8%에서 5.2%로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전망대로라면 올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게 된다.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 상승폭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 푼이라도 아껴 가계에 보태고자 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다는 ‘영끌’로 집을 산 젊은 세대들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금리에 ‘짠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소비를 최대한 줄이자는 ‘무지출 챌린지’에 동참중인 회사원 김모(25)씨는 커뮤니티에 ‘일주일간 외식비 0원’에 성공했다고 인증했다. 회사에는 미리 준비한 냉동 볶음밥과 반찬 등으로 손수 마련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고 친구들과 2주일에 한번 꼴로 만나던 주말 브런치 모임도 없앴다. 대신 집에서 직접 장을 봐온 음식으로 대체했다며 음식 사진도 공유했다.

김씨는 “이렇게 아낀 비용을 계산해보니 일주일에 10만원이 넘었다”라며 “주변 회사원들도 구내 식당을 이용하는 등 점심값 줄이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라 무지출 챌린지가 그리 어렵지 않다”라고 전했다.

스타벅스 등 고가 커피 이용자 줄고

저가형 커피 브랜드 이용자 급증

 이같은 세태를 반영하듯 커피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스타벅스와 투썸플레이스, 커피빈 등 고가 커피브랜드 이용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메가커피·매머드커피 등 비교적 저가형 커피브랜드의 이용자 수가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외식 비용을 줄이기 위한 직장인과 학생들이 저가형 커피 쪽으로 소비 패턴을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스타벅스의 앱 주간 활성 사용자 수(MAU, 안드로이드 및 iOS 사용자 합산·중복포함)는 올 초 대비 10.7% 줄어들었다. 커피빈 또한 같은 기간 17.4% 이용자 수가 감소했다. 투썸플레이스·할리스 역시 지난 6월과 7월 고점을 찍은 뒤 각각 6%와 14% 하락했다.

이와 달리 저가형 커피 브랜드인 메가커피와 매머드커피, 컴포즈커피 등의 앱 사용자 수는 상승세다. 메가커피 앱 ‘메가MGC커피 멤버십’의 이용자 수는 연초 대비 40.5% 증가했다. 늘어난 이용자만 약 20만 명에 달한다. 매머드커피의 ‘매머드 오더’는 71.5% 급증했다. 매머드커피는 올 초 이용자 수 35만 명을 돌파해 경쟁 브랜드 중 가장 많은 회원 수를 확보했다. 컴포즈커피 앱 이용자 수 역시 51.8% 증가했다.

‘적금 풍차돌리기’ 목돈 만들기 성행

금융권도 고금리 적금 잇달아 선보여

 금융업계에도 짠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 소비를 줄여 소액이라도 지속적으로 적금을 들어 목돈을 만드는 유행이 번지고 있다.

매달 새로운 적금에 가입해 1년 후부터 순차적으로 원리금을 회수해서 목돈을 마련하는 소위 ‘적금 풍차 돌리기’가 MZ세대들 사이에서 트렌드가 된 것이다.

적금 풍차돌리기로 벌써 다섯 개째 적금에 가입했다는 자영업자 고모(37)씨는 “적금이 현재 총 5개로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다”라며 “매달 붓기가 빠듯해서 깰까 말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금액을 보면 뿌듯하다”라고 전했다.

이에 발맞춰 은행권에서는 고금리 적금을 앞다퉈 출시하며 MZ세대를 타깃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일 연 최대 11%를 지금하는 ‘신한 플랫폼 적금’(야쿠르트)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6개월제 자유적립식 적금으로, 월 저축 한도는 1000원 이상 30만원 이하다. 기본금리는 연 2.0%고 연 9.0%포인트 우대금리를 모두 적용한 최고 금리는 연 11.0%다. 5만좌 한도로 선착순 판매중인 이 상품은 4영업일 만에 5000좌를 돌파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웰컴저축은행도 최고 연 10% 금리의 ‘웰뱅워킹적금’ 상품을 지난 6일부터 판매해 14일 1만좌를 계약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 상품은 계약기간 동안 집계된 걸음 수에 따라 최고 연 8%포인트의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헬스케어 적금 상품이다. 웰컴저축은행은 “계약 고객들의 연령대를 집계해보니 30대와 40대가 각각 27%, 38%로 가장 많았다”라고 전했다.

이밖에 광주은행의 행운적금은 최고 13.2%(1년 만기, 월 50만원 이내), 케이뱅크의 코드K 자유적금은 최고 10% (1년 만기, 월 30만원 이내)의 금리를 제공한다.

18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 유플렉스 신촌점에 문을 연 중고품 전문관 '세컨드 부티크'를 찾은 고객이 다양한 중고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 유플렉스 신촌점에 문을 연 중고품 전문관 '세컨드 부티크'를 찾은 고객이 다양한 중고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식을 모르는 명품 시장 성장세

고급 주류 인기로 ‘위스키 오픈런’ 성행

그러나 이같은 짠테크 열풍과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는 플렉스 소비도 여전히 식을 줄 모른 채 이어지는 추세다.

우선 고물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명품의 인기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19조 3437억원으로 전 세계 7위를 기록했다. 2015년(12조 2100억원)과 비교하면 약 58.4% 성장한 수치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중고 명품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면서 명품 중고거래 플랫폼도 늘어나고 있다. 중고 명품 시장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지한 유통 대기업들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2월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중고 거래 플랫폼 오프라인 매장인 브그즈트랩을 입점시키기도 했다.

고가 주류로 분류되는 위스키는 중년 이상의 ‘아저씨’가 선호하는 술로 알려졌지만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홈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고급 주류에 대한 소비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위스키 수입액은 1억 2365만달러로 전년 동기(7639만달러) 대비 61.9% 늘었다. 수입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3.8% 증가했다.

 자신이 선호하는 위스키를 구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위스키 오픈런’ 현상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달 GS25는 전국 18개 주류 강화 매장 ‘플래닛’에서 희귀 위스키 7종을 판매하는 ‘위-런’(WHI-RUN) 행사를 열었다. 매장 앞에는 오픈 전부터 고객들이 길에 줄을 서는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 결국 발베니와 러셀 리저브 싱글 배럴 300병은 1시간 만에 완판 기록을 세웠다.

GS25에 따르면 해당 제품 구매 고객의 연령대는 30대(43.4%)가 가장 많았고 20대(39.5%), 40대(14.8%) 순이었다. 20대와 30대가 전체 구매 고객의 80% 이상을 차지해 젊은층의 위스키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GS25 관계자는 “예상보다 열띤 반응에 주류에 대한 젊은층의 트렌드 변화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라며 “나만의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현상이 주류 소비에도 반영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트 전담팀까지 꾸린 신세계백화점

롯데,현대백, MZ세대 위한 아트 전시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국내 주요 백화점들의 행보도 관심을 끈다.

젊은층의 미술품 구매 움직임에 힘입어 올해 미술시장은 사상 최초로 1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롯데·신세계·현대 등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젊은 세대에 주력한 아트 비즈니스에 힘쓰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곳은 신세계백화점이다.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은 ‘아트 마케팅’을 주도하며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업계 최초로 아트 비즈니스 관련 전담 팀도 꾸렸다. 백화점을 전시가 어우러진 예술 공간으로 재편해 마케팅으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는 미술 경매 시장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의 지분 4.8%를 취득한 신세계는 최근 서울옥션 인수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연 2회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아트뮤지엄’ 행사를 진행 중이다. 롯데백화점도 지난해 8월 ‘아트 콘텐츠실’을 신설하고 각종 전시 관련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에는 부산에서 ‘아트페어’ 행사를 열기도 했다.

미래 대신 현재 택한 ‘욜로족’ 늘어

불황형 럭셔리 소비 패턴 이어질 듯

고가품은 물론 예술품 등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비 패턴은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플렉스 소비는 ‘욜로(YOLO)족’들이 주도하고 있다.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뜻의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욜로’는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태도를 뜻한다.

최근 젊은세대들 사이에서는 오를 대로 오른 집값과 고물가 시대에 비혼을 자처하며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살겠다’는 트렌드도 늘어나고 있다. 미래를 위한 대비에 현재를 할애하기보다는 지금 바로 자신을 만족시켜줄 소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 정여경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시대의 소비는 양극화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구매력이 감소됨에 따라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계층에서는 최소비용으로 최대만족을 추구하는 ‘불황형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라며 “한편에서는 비싼 가격을 감수하는 럭셔리 소비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