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반도체 설계 핵심 기업 ARM 인수전…삼성전자 100조 빅딜 뛰어드나

2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1일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1일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빅딜’을 위해 내달 다시 만난다. 영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인 암(ARM)을 인수하고 2017년 한국을 찾았던 손 회장이 이번에는 매각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는 것이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이 한참 뜨거운 시점에 반도체 설계 핵심 기업의 향방이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의 회동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손정의가 35조 투자한 ARM
6년 만에 3배 차익 매각 추진

이 부회장은 국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21일 기자들과 만나 영국 반도체 기업 ARM사 인수 관련 질문에 "손정의 회장이 서울에 오면 그런 제안을 할 것 같다"며 긍정하는 답을 내놓았다. 

이어 이 부회장은 ARM과 인수 관련 논의가 있었는지 묻자 "ARM은 안 했다"면서 "내주나 다음 달에 손 회장이 서울로 오면, 그런 제안을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 대변인은 이날 "손 회장이 삼성전자와 ARM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위한 논의를 할 예정으로 이번 한국 방문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 회장이 이 부회장과의 회동에 앞서 이처럼 인수합병(M&A) 의사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다. 대형 M&A의 경우 협상 과정과 거래 상대와의 접촉 여부 등에 대해 언급을 꺼리기 마련이다. 

특히 ARM 매각은 SK하이닉스 등으로부터 과거 러브콜이 나올 만큼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데도 서슴지 않고 공개 발언이 나온 점을 두고 이미 양 그룹 실무진 차원에서 M&A 물밑작업이 마무리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ARM은 대표적인 펩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으로 직원은 6000여 명, 분기 매출은 7억 달러 수준이다. 반도체 제조기업과 비교하면 몸집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애플, 퀄컴 등 대표적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업들은 ARM의 반도체 아키텍처(설계도) 라이선스 구입 후 자체 규격에 맞게 조금씩 수정해 사용하고 있어 영향력은 크다. 반도체업계의 독보적인 지적재산(IP) 판매회사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 '엑시노스'도 ARM의 설계 기술에 기반한다. ARM의 AP 시장 점유율은 90% 이상이다. 현재 거론되는 ARM의 가치는 70조~100조원에 육박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약 120조 원 가량의 현금성 자산을 가지고 있어 이론적으로 매입은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 팹리스 세계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도 3% 수준이라 ARM 인수 시 관련 기술 공백을 상당부분 극복할 기회로 해석된다. 그러나 기술 격차가 곧장 우리 기업의 펩리스 시장 점유율 확대 등의 시너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파운드리 공정의 3나노 양산에 돌입했지만 일감 수주 실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엔비디아와 퀄컴 등 기업들이 대만의 TSMC에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GPU) 생산을 맡긴 탓이다. 

기술적 이점을 매출로 승화시키지 못한 것은 손정의 투자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소프트뱅크는 당시 매출이 2조원도 안 되는 ARM을 총 320억 달러(약 38조원)에 사들였다. ARM이 보유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기술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배팅한 것이었다. 당시 손정의 회장은 "IoT는 기회이고, ARM의 미래 성장여력을 감안하면 저가에 인수한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었다.

이후 소프트뱅크는 ARM의 IoT 사업 부문에  2000명 이상 인력을 신규 고용했고 손 회장은 2017년 방한 중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치만큼 IoT 분야의 시장은 성장하지 않았다. 또한 ARM의 IoT 플랫폼과 IoT 트레저 데이터 등의 자원은 소프트뱅크 그룹 산하 계열사로 이전하며 반도체 역량에 집중하게 된다.

5월 ‘이재용-인텔 CEO’ 회동 다시 부각
SK하이닉스, 퀄컴도 인수 컨소시엄 관심

한편 현재 소프트뱅크는 경영 실적 개선이 시급한 시점이다. 기술 펀드인 비전 펀드는 그동안 공격적인 M&A로 독점 구조를 만든 후 수익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일관했지만 잇따른 투자 실패로 긴축 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소프트뱅크에 따르면 비전 펀드는 지난 6월에만 2조 9300억엔(216억 80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는 비전펀드의 분기 손실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쿠팡과 중국의 승차공유 서비스인 디디글로벌, 위워크 등의 투자로 큰 손실을 떠안은 소프트뱅크는 현금에 목말라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손 회장은 IT 업체 투자를 위해 앞으로 비전펀드를 추가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2020년 엔비디아에 대한 ARM 매각 계획은 산적한 재무적 문제를 해소할 기회였다. 하지만 반독점법 등 당국의 규제와 함께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테슬라 등 빅테크 기업들의 반대에 떠밀려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ARM의 가격은 400억달러(약 47조 4800원)였다. 

한번 고배를 마신 후 소프트뱅크그룹은 기업공개(IPO)를 통한 지분 매각으로 방향을 돌렸다.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소프트뱅크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는 것을 고려 중인 상황이다. 또한 영국 정부는 ARM을 런던증권거래소(LSE)에 우선 상장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현재 반독점법 규제를 피하면서 지분을 매각하기 위해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식은 컨소시엄 형태로 복수 기업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과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말 한국에서 회동한 사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 참석과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업계에서는 ARM의 본사가 영국 런던 북쪽 케임브리지에 소재한 점을 들어 ARM 인수를 위한 밑거름 작업으로 이 부회장이 영국을 방문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퀄컴, SK하이닉스도 지난 2월부터 계속해서 ARM 인수 컨소시엄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