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대기업 영업이익 14조 줄어...롯데는 급한 불 끄기

예년에 비해 포근한 초겨울이지만 기업들은 이미 엄동설한에 떨고 있다.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재고는 역대 최대 규모로 급증하고 있으며,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돈맥경화'까지 겹쳤다. 앞으로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질 것이란 전망이 다수여서 한파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 기업 601개사의 연결 기준(종속회사의 재무 상황까지 반영) 3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은 39조 366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조 8000억원가량, 26%나 줄어들었다. 순이익은 27조 6733억원에 그쳐 감소율이 37%에 달했다. 

대표 업종인 전기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15조 23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조 2500억원가량, 32% 급감했으며 전기가스업의 영업손실은 7조 3916억원에 이르렀다. 철강금속 업종의 경우 영업이익이 61%나 떨어진 2조원 수준을 보였고, 화학도 8000억원 감소(12.7%)한 5조 6235억원에 그쳤다. 운수장비업은 25% 떨어진 2조 8535억원,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건설업도 19% 감소한 6777억원의 영업이익을 보였다. 

3분기 대기업 부채 286조 증가
재고자산 44조 늘고 64개사 적자 전환

재무 상황도 악화됐다. 올해 3분기 말 부채총계는 2155조원으로 지난해 말 1869조원에 비해 286조원, 15.3%가량 증가했으며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116.4%에서 120.1%로 높아졌다. 또 올해 1~9월 누적 흑자기업 수는 483개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개사 줄어든 반면 적자 기업은 118개사로 22개사 늘어났다.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선 기업은 LG디스플레이, 포스코홀딩스, 롯데하이마트, 넷마블, 지역난방공사, KCC, LG에너지솔루션, SK바이오팜, 한국가스공사 등 64개사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10조 8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줄었고, SK하이닉스의 경우 60%나 떨어져 1조 6500억원에 그쳤다. 포스코홀딩스는 3조원대에서 올해 3분기 9000억원 규모로 70%나 곤두박질쳤다.

실적 부진 속에서 재고는 쌓여간다. 기업분석연구소인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195개 대기업들의 재고자산은 지난해 말 121조 4922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165조 4432억원으로 43조 9510억원, 36%가량 크게 증가했다. 리더스인덱스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 되는 영향으로 풀이했다. 

특히 주로 수입하는 '상품' 재고보다 직접 생산하는 '제품'과 '반제품' 재고의 증가율이 가파르다는 점에서 수출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전기전자ㆍ유화ㆍ자동차 재고증가 심각
서막에 불과…반도체 등 경기 침체 우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의 재고가 지난해 말 25조 7542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36조 7204억원으로 42% 증가했고, SK하이닉스의 경우 같은 기간 174% 급증한 3조 4244억원을 기록했다. 전지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도 5조 7125억원으로 135% 증가했다.

재고 증가율이 높은 기업은 포스코에너지(287.5%), 덕양산업(271.5%), 삼성바이오로직스(245.2%) 등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 업종 외에 석유화학이 29조 7127억원으로 45%, 자동차 22조 4261억원으로 23.5%의 증가율을 보였다. 

재고 규모와 함께 관리 효율성을 나타내는 재고자산회전율도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말 4.5회였는데 올해 3분기에는 3.8회로 떨어졌고,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3.2회에서 2.4회로 낮아졌다. 재고는 더 쌓여가고 회전은 더딘 상황으로 악화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장 4분기 실적부터 하락세가 급격해지고 내년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전기전자 업종이 대표적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업종을 분석하면서 "팬데믹이 만든 버블이 사라지자 세상에는 역대급의 반도체 재고가 쌓였고 메모리 생산 캐파(CAPA, 생산능력)는 수요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까지 늘어났다"면서 "2023년 D램 시장 규모는 올해 대비 26% 감소한 600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이러한 시장 축소로 D램 업체들의 마진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팬데믹과 공급망 불안으로 재고 증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과 팬데믹 특수 종료로 IT 내구재 수요 급감 등이 반도체 산업을 휘청이게 하는 요인들이라고 짚었다.  

SK하이닉스 4분기 적자 전망
내년 성장률 1%대로 떨어질 듯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올해 4분기 영업이익은 달러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하고, 내년 매출은 2392억달러로 올해보다 오히려 2% 줄어들면서 영업이익은 40%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올해 4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이 회사가 4분기 5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내년에는 손실액이 1조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이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가 올해 4분기와 내년에 각각 7000억원, 2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더 비관적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전기전자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기업들이 향후 경기를 어둡게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3일 발표한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를 보면, 모든 산업의 업황 BSI(실적)는 75로 2020년 12월(75)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BSI는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산출하며 부정적 응답이 긍정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특히 비제조업 업황 BSI가 전월에 비해 3포인트 하락했다. 소비심리 위축 영향으로 도소매업이 5포인트 떨어져 하락세가 두드러졌고, 건설업도 4포인트 하락했다. 건설업의 경우 2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영애로 사항으로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 '내수 부진', '자금 부족' 등 순이었다. 

거시 경제 전망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2일 전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2.2%에서 1.8%로 낮아졌다. 내년 세계 성장률(2.2%)보다 낮으며,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수치와 일치한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7%로 더 낮다. 지난 8월 전망보다 0.4%포인트 내린 수치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2%에 못 미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인 2020년(-0.7%) 등이다. 

OECD는 한국에 대해 고물가와 고금리에 따른 가처분소득 증가세의 둔화와 주택시장 부진이 소비와 투자를 낮출 것으로 봤다. 더욱이 반도체 업황의 하강과 글로벌 수요 둔화가 수출의 부담 요인이라고 짚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긴장 고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다른 지정학적 긴장 등으로 인한 보호주의 강화가 한국의 공급망 재편을 야기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건설발(發) 롯데그룹 유동성 '비상등'
1.5조 긴급 수혈… 롯데건설 대표 교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본시장마저 급격히 경색됐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강원 '레고랜드'발 쇼크가 시장을 강타하면서다. 내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심화될 경우에 대비해 대기업들은 현금성 자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일부는 이미 재무구조 악화로 비상등이 켜졌다. 

롯데 그룹이 대표적이다. 롯데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 연장이나 차환이 막히자 계열사들이 모두 달려들어 급한 불 끄기에 나서고 있다.

롯데건설이 지난달 18일부터 그룹 계열사와 금융권에서 수혈한 금액은 1조 4500억원에 이른다.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등으로부터 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했고, 롯데케미칼(5000억원), 롯데정밀화학(3000억원), 롯데홈쇼핑(1000억원) 등으로부터 자금을 빌렸다. 롯데물산이 자금 보충 약정을 맺는 조건으로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에서 3500억원을 차입하기도 했다.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를 갖고 있으며 지분 구조가 얽힌 대기업 그룹의 선단식 경영 체제에서 으레 발생하는 일이다.  

ⓒ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자금난을 겪는 롯데건설의 유상증자에 사재 11억7000만원을 투입했다.
ⓒ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자금난을 겪는 롯데건설의 유상증자에 사재 11억7000만원을 투입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사재 11억 7000만원가량을 투입하기도 했다. 필요한 자금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지만 책임경영의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하석주 전 롯데건설 대표는 임기를 4개월여 앞두고 사임했고, 지난 23일 박현철 롯데지주 경영개선실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과거 롯데물산 사업총괄본부장과 대표 등 건설 부문에 종사했으며 그룹 내 전략통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특임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통상 11월 말에 전체적인 그룹 인사를 했으나 올해의 경우 건설 부문 외에는 미뤄졌다.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부동산 PF였다. 미래의 현금흐름을 상환 재원으로 삼아 자금을 조달하는 기법인데, 건설사는 통상 사업비의 30%가량을 PF 대출로 조달하고 이후 중도금과 잔금으로 공사를 진행한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 부실의 뇌관이 되곤 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채무 인수, 자금 보충 약정 등 PF 우발채무(미래 특정한 조건에서 채무가 되는 것)는 6조 7000억원 규모이며, 올해 말까지 3조 1000억원의 만기가 집중돼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향후 PF 우발채무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지 못할 경우 펀더멘털 측면에서의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롯데케미칼 1.1조 유상증자
롯데 "현금자산 15조… 일시적 어려움"

그룹의 주력이자 롯데건설의 지분 43.8%를 보유한 롯데케미칼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롯데케미칼 역시 어려운 사정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 상승과 수급 악화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올해 1~9월 영업적자가 3626억원에 이른다. 지난 9월 말 기준 순차입금은 2조 4000억원에 이르는데,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결정을 내리면서 2조 7000억원의 자금도 필요하다. 제 집 살림도 벅찬데 친척집까지 도와야 하는 형편이다. 최근 채권 신용평가기관들은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롯데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등급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결국 롯데케미칼은 지난 18일 1조 10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확보한 금액 중 500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6050억원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통상 대규모 유상증자는 주식 가치를 낮추므로 주주들에게는 악재로 통한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자회사 롯데건설 리스크 나비효과가 롯데케미칼 유상증자로 이어졌다"면서 "부진한 업황(연간 적자)과 올해 연초 대비 주가 증감률이 마이너스(-) 19.8%에도 불구하고 주주 배당 가이던스 충족 대신 자회사 현금 지원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주주가치 훼손 이벤트"라고 분석했다. 

롯데그룹은 일시적 유동성 어려움일 뿐이며 그룹 전체의 현금성 자산이 15조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그룹이 흔들릴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1일 유상증자 관련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롯데건설이 보유한 사업장은 대부분 우량한 사업이지만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일시적인 자금 경색을 겪고 있다"며 "상당한 금액이 올해 4분기를 포함해 내년까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는 롯데건설에 대해 "롯데 그룹의 직간접적인 지원 하에서 선제적으로 자금조달 방안을 추진하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금리 상승과 금융권 전반의 위험 회피 기조 하에서 PF 유동화 시장의 경색이 장기화될 수 있고 주택 및 분양시장의 경기 저하도 심화되고 있는 만큼 PF 우발채무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지 못할 경우 펀더멘털 측면에서의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박철응 기자 hero@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