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중 은행에 대출금리 안내문 모습.ⓒ연합뉴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중 은행에 대출금리 안내문 모습.ⓒ연합뉴스

11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예상대로 기준금리가 기존 3.00%에서 3.25%로 0.25% 포인트 인상됐다. 지난 10월 ‘빅 스텝'(50bp) 인상에서 다시 통상적인 인상 폭으로 복귀한 것이다.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금리 결정만큼이나 통화당국의 입장 표명 역시 예상대로 이뤄졌다. 결정 직후 발표된 통화정책방향회의 의결문을 통해 금통위는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돼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 대응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는 증거가 확실한 이후 금리 인하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면 현재는 물가가 어떤 이슈보다 우선 순위에 있음을 명확하게 강조했다.

현재 한국 등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높아진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사이클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정점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운용 목표를 상회한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에 통화정책의 기조 측면에서는 물가가 최우선 과제임이 분명하며, 통화당국 역시 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채권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더욱 주목했다. 의결문에 언급된 ‘당분간’ 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내용에 대해 이창용 총재가 직접 “당분간은 3개월 전후 기간”임을 명시한 것이나, 내년도 성장률 전망을 2.1%에서 1.7%로 0.4% 포인트 하향하면서 경기에 대한 우려를 밝힌 것 역시 인상 사이클이 지속된다는 부담보다는 오히려 인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쪽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한국적인 스타일의 점도표 공개 역시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이 조만간 마무리된다는 기대 요인으로 해석됐다. 이 총재는 금통위를 구성하는 6명의 위원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3명이 최종금리를 3.50%로 지목했다고 밝혔다. 또한 3.75%는 2명, 3.25%는 1명으로 최소 1차례 이상 기준금리 인상이 추가로 진행될 것이라는 위원들의 분포는 5명에 이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중위값 3.50%가 실제로 구현된다면 이번 인상 사이클에서 남은 인상 횟수는 1회 밖에 없다는 쪽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결과 국채시장에서 국고 3년과 10년 금리는 금통위 당일에만 15bp 빠졌고, 전고점 대비로는 90bp 가량 크게 하락했다.

국채를 중심으로 한 채권시장의 랠리는 사실 미국 국채시장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10월 소비자물가 서프라이즈 이후 12월부터는 자이언트 스텝(75bp)이 아닌 빅 스텝(50bp)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른바 ‘긴축 속도 감속’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인상 사이클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압도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미국 국채 특히, 장기물 금리의 하락은 매우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레고랜드 발(發) 자금경색이 발생한 이후 크레딧 채권시장은 국채와 달리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있다. '50조원+알파(α)'와 같은 정책 당국의 적극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 참가자들의 크레딧 채권에 대한 접근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실제 최근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크레딧이 언제 안정될 수 있으냐'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자금경색 및 크레딧 채권의 위축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다음은 그 이유들이다.

첫째, 크레딧 채권시장이 이미 급격한 투자심리의 경색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 동시에 현 상황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경색된다는 것은 자금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무대인 시장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수요와 공급이 접점을 형성해 가격이 결정되고, 결정된 가격에 맞춰 총량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정책 당국이 보여준 일련의 지원책들은 수요와 공급(주로 공급)을 자극함으로써 접점 형성을 돕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하겠다.

반면 이러한 큰 자극이 실제 시장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항상 ‘상당한 시차’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 곡선 상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아예 수요나 공급 곡선을 새롭게 옮겨놓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그 시차 역시 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둘째, 현재 크레딧을 포함해 금융시장은 유동성을 축소하는 국면에 있다는 점이다. 보통 통화정책의 변화를 금리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한다는 것이 유동성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간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금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 셈법 만을 상기하더라도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곧바로 유동성을 축소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렇게 유동성이 줄어들 경우 채권시장에서 유동성이 투입되는 우선 순위가 상대적으로 밀리는 크레딧 채권시장에서는 금리가 상승하거나 스프레드가 확대될 수 밖에 없다.

셋째, 현재 통화당국이 진행 중인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통상적인 경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물가 안정과 경우에 따라서는 경기 위축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성격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기준금리 인상과 유동성을 줄이려는 상황은 보통 경기가 활황일 때 이뤄진다. 따라서 금리 인상(혹은 유동성 축소)을 통한 크레딧 스프레드의 확대 부담은 개별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활황에 따른 매출 확대나 영업이익 개선을 통해 상쇄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반면 현재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은 경기를 위축시키는 목적까지도 내포된 매우 강력한 긴축이다. 기업들이 매출을 늘리거나 이익을 개선함으로써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를 제어할 수 있는 여지 자체가 매우 제한적인 셈이다.

향후에도 크레딧 채권시장이 안정을 찾는 과정은 매우 험난할 뿐만 아니라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이미 통상적인 금리 상승이나 스프레드 확대를 넘어서 `경색` 단계에 진입했던 것만큼 정상적인 수준으로 복귀는 순탄치 않아 보인다. 따라서 크레딧 채권의 안정은 국채 등 채권시장 내에서의 안전자산이 먼저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하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주간한국편집부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