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위메이드 사옥 모습.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위메이드가 만든 가상화폐 위믹스의 거래지원 종료(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위메이드 사옥 모습.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위메이드가 만든 가상화폐 위믹스의 거래지원 종료(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역사적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궁리 끝에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주식 시장이 대표적이다. 최초의 주식회사는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라고 한다.

16세기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로 가는 항로가 발견되면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다. 향신료나 면직물 등 희귀한 물자를 실어오면 대박을 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원거리인 데다 험준한 바다를 건너오다 보니 중간에 침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이 조금씩 공동으로 출자해 위험을 나눈다. 주식을 발행해 지분을 보유하고 그만큼만 책임을 지는 것이다. 수익이 생기면 지분에 따라 배당을 준다. 중간에 돈이 필요해지면 거래 시장에서 팔아 자본을 회수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배당보다는 차익을 노리는 투자가 많아지고 주식 시장은 투기장처럼 변모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주식 시장은 기업의 중요한 자본 조달처다.

가상화폐도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돈을 시중에 퍼붓는다. 시장의 경색을 막기 위한 비상 조치였지만 이렇게 풀린 돈은 장차 인플레이션의 화근이 된다.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나카모토 사토시는 인터넷에 공개한 논문을 통해 이를 비판한다. 통화의 작동은 신뢰에 뿌리를 두는데, 중앙은행이 신뢰를 깨뜨리고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중앙은행이 발행과 유통에 관여할 수 없는 화폐를 만든다. 컴퓨터를 이용해 문제를 푸는 과정인 채굴을 통해 비트코인이 만들어지고, 이는 인터넷을 통해 화폐처럼 거래된다.

비트코인을 모방한 수많은 코인이 탄생해 뒤를 따른다. 전담 거래소가 만들어져 고객의 코인을 맡아주기도 하고 거래를 주선하기도 한다. 비트코인이 전자화폐라고 한다면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실물자산과 연계된 증권형 가상화폐도 존재한다.

대체불가능토큰(NFT)은 사진, 음악, 동영상 등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 거래 수단으로 사용된다. 달러와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도 출현했고, 이를 발행한 기관은 현금과 회사채 등을 담보자산으로 보유한다. 심지어 중앙은행에서도 자체적인 가상화폐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는 엄청난 투기 붐을 일으켰다. 2010년 0.00008달러에 불과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10월 6만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2만달러 밑에서 거래되고 있다. 중앙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념과는 달리 수많은 기관들이 자체적인 코인을 발행해 이익을 추구하고 있고 이들 코인의 가격은 급등락하며 투기의 온상이 되고 있다.

엄청난 돈이 가상화폐 시장에 몰리면서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책이나 규제는 애매한 상황이다. 아직 진화 중인 시장이라 실체를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우며 섣불리 제도권에 받아들이면 실물시장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미비 때문에 대형 사고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스테이블코인을 구현하려던 테라·루나는 가치가 영에 수렴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을 파산 지경에 몰아넣었다. 최근에는 가상화폐거래소인 FTX가 파산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FTX는 세계 제2위를 차지하는 미국의 가상화폐거래소로서, 자체 코인인 FTT를 발행해 자금을 조성했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알라메다 리서치라는 가상화폐 투자회사를 만들어 FTT를 매입하게 한다. 일종의 자전거래를 일으켜 FTT의 가치를 띄운 것이다.

알라메다는 FTT를 담보로 다른 가상화폐에도 투자했다. 그러나 알라메다의 재무제표에 의문을 품은 투자자가 이를 지적하며 FTT를 매각하자 가치가 폭락한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알라메다를 구출하기 위해 FTX는 고객이 맡긴 돈까지 투입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FTX로부터 자금이 빠지는 뱅크런이 일어난다.

FTX 사태는 일파만파 전 세계로 파장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투자자 상당수도 FTX에 돈이 묶이며 큰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협의체(닥사, DAXA)가 가상화폐 위믹스를 상장 폐지시킴으로써 새로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위믹스는 게임회사인 위메이드가 발행한 가상화폐다. 게임 회사들은 게임 내 사용을 목적으로 가상화폐를 발행한다. 문제는 위메이드가 위믹스를 사전에 예고 없이 대량 매도함으로써 가격을 폭락시켜 다른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점이다.

더구나 위메이드는 이렇게 얻은 현금을 지난해 4분기 매출로 한꺼번에 재무제표에 반영함으로써 실적 뻥튀기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유통량 허위 공시 논란까지 일어나자 닥사가 위믹스 상장 폐지를 결정한 것이다. 주식으로 치면 공시된 발행 주식 수와 유통된 주식 수가 일치하지 않은 셈이다.

일련의 사태는 가상화폐 규제 공백 상황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는 가상자산을 이용한 범죄 방지, 소득에 대한 과세, 소비자 보호 및 금융 안전성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이 중 범죄 방지를 위한 조치는 지난해 초에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의해 이뤄졌다. 이 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는 실명계정을 발급하고 자금세탁방지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고객 정보를 파악하고 의심 거래는 금융정보분석원 등에 보고해야 한다.

과세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가상 자산에 투자해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얻은 이에게 20%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결정됐는데, 다만 과세 시점을 미루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전성은 여전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소비자 보호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고 금융 안정성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기존 금융 시스템과 가상화폐의 연결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방침이다.

현재 가상화폐 규제와 관련해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가상자산규제안(MiCA)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법은 가상화폐를 몇 가지 종류로 나눠 차별적인 규제를 적용한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실물자산과 연결되는 증권형 토큰은 현행 증권 시장 규제 법률에 따른다. 특정 플랫폼 내에서만 사용되는 유틸리티 토큰에 대한 규제는 최소화된다. 비트코인, NFT,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는 다루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만 10건에 이른다. 소비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보면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고 금융위원회에 감독·처분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가상화폐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포괄적 접근은 부족해 보인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의 기술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현상이다. 미래의 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블록체인 기술발전을 촉진하면서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입법을 서두르다 규제에 너무 치우치면 보석으로 가공할 수 있던 원석이 하찮은 돌멩이로 남게 될 수도 있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