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비용 반영해 금리 올려야 대출 숨통 vs 취약계층 이자 부담 낮춰야

우리나라는 대출 최고 금리를 법으로 제한한다. 금융회사는 대부업법에 따라 27.9%이며, 사인 간 거래는 이자제한법상 25%다. 이 법적 한도 내에서 두 법률의 시행령으로 정한 실제 한도는 이보다 낮은 20%를 적용하고 있다. '국민 경제 생활의 안정'을 위함이다.

2002년에 정부가 음지에 있던 대부업을 양성화시킨다는 취지로 대부업법을 처음 시행했을 당시 최고금리는 66%에 이르렀다. 이때도 대부업자들은 지나치게 낮다고 반대했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7차례에 걸쳐 꾸준히 인하해 2021년 7월에 현재 금리까지 내려온 것이다. 국회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경기 침체와 국민 고통을 감안해 법정 최고 금리를 더 낮추려는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 행위를 2월 말까지 집중 단속·수사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연합뉴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 행위를 2월 말까지 집중 단속·수사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부가 법정 최고 금리를 오히려 상향하는 쪽으로 검토한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면서 금융회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커졌는데도 금리 상한선 때문에 이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게 되자, 저축은행과 대부업계 등에서 대출 취급 자체를 아예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목적은 같지만 방향은 정반대인 대책들이 동시에 거론되는 것이다. 시행령을 바꿔 법적 한도인 27.9%까지 높이거나 인상된 기준금리와 연동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금융위원회는 신중한 반응이다. 

금융위, 해외 사례 연구 중
"유럽은 시장연동 최고금리"

금융위 관계자는 "대출 중단 등 사례에 대해서는 정책 서민 금융을 적극적으로 공급하고 불법 사금융 단속과 모니터링 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법정 최고 금리와 관련해서는 해외의 사례들을 연구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신중하게 해외의 제도들을 보고 있다. 일단 파악한 바로는 유럽은 시장연동형 제도를 많이 시행하고, 미국의 경우 단기 대출에 한해 예외적으로 최고 금리보다 높게 적용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융위는 최근 "금융당국이 법정 최고금리를 최대 27.9%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서민들의 금융 비용 부담과 금융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사안"이라며 "제도 변경 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결정된 바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와 관련할 질문을 받고 "고민을 하고 있다"며 "취약 계층에 대한 정책금융을 더 많이 공급하는 방식으로 막아본 후에 금리 쪽으로 무언가 해야 한다고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최고 금리 제도 변동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으나 워낙 파급력이 큰 사안이라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신호탄은 지난해 7월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내놓은 '금리 인상기에 취약 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 최고 금리 운용 방안' 보고서였다. 김 연구위원은 "법정 최고 금리가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조달 금리가 상승하면, 법정 최고 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을 받던 가구들이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면서 "법정 최고 금리를 시장 금리와 연동함으로써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 계층의 롤오버(roll-over. 채무 상환 연장)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고 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대출을 취급하는 고금리 업권(카드, 캐피털, 저축은행)의 조달금리는 기준금리에 비해 더 빠르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기준금리는 1.25%포인트(0.5%→1.75%) 인상됐지만, 카드채와 기타금융채(AA+, 3년물)의 금리는 같은 기간 기준금리 인상폭의 2배가 넘는 2.65%포인트(1.8%→4.45%) 상승했다. 

김 연구위원은 "고금리(18~20%) 신용대출 이용 가구의 84.8%가 취약가구이며, 48.6%가 다중채무자이다. 따라서 이들의 롤오버가 제약되면 다른 금융권까지 연체가 파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2021년 말 대비 조달금리가 약 2%포인트 상승함에 따라 69만 2000명가량의 차주(빌려쓴 이), 6조 3000억원 규모의 2금융권 신용대출이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것으로 예측했으며, 해당 차주들의 롤오버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면 최대 35조 3000억원까지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금리 연동형 최고 금리 제도를 도입하면 이 같은 취약차주 배제 현상을 대폭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70만명 안팎 불법 사금융 이동"
국회엔 10%까지 낮추는 법안도

서민들에게 이른바 '돈맥경화'는 심화되고 있다. 대부업계 1위 업체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는 지난해 말 신용대출을 포함한 모든 신규 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대부업계의 조달금리는 8%대까지 급등했으며, 경기 악화로 저신용자들의 연체율도 증가세를 보인 영향으로 전해졌다. 저신용자들에게는 대부업이 마지막 창구인데 막히게 되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지난 4일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법정 최고 금리가 7.9%포인트 하락하면서 이자 부담은 1인당 약 62만원 감소한 반면 대부 이용자는 약 135만 3000명 줄었다"면서 “이 중 약 64만∼73만명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이동해 1인 평균 약 1700만원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신용·저소득층을 제도 금융권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시장 상황에 맞는 유연한 금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일본은 최고 금리를 20%로 하고 대출 이용액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다. 영국에서는 금융회사 일반에 적용되는 금리 규제는 없으나 초고금리·단기대출에 한하여 288% 상한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미국은 주(州)별로 금리를 달리 규제하되 초단기·소액대출에 한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금리를 용인하며 대출액 제한 등의 영업 규제로 보완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법정 최고 금리를 더 낮추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개정안들을 수십건 발의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8월 최고금리를 12%까지 낮추는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공동 발의자에는 같은 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20%를 제시한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의 대부업법 개정 대표 발의안에는 '친윤'(친 윤석열)의 주자로 당권에 도전 중인 김기현 의원이 함께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문진석 의원과 김남국 의원이 각각 10%까지 낮추는 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용준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서 의원 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2021년 3월 기준으로 은행은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이 84%를 차지하고 저신용자 대출은 2.9%에 그치는 반면, 비은행 금융기관(여신전문회사, 상호금융, 저축은행, 대부업, 보험회사)의 경우 중신용자(56.9%)와 저신용자(15.8%)가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또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3% 수준이나, 상호저축은행과 대부업의 가계대출 금리는 13% 이상이며 특히 대부업 신용대출 금리는 18% 이상이라고 한다. 그만큼 저소득·저신용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2020년 말 신용도를 기준으로 저신용자(신용점수 700점 미만)는 317만명가량에 이른다. 이들은 고신용자에 비해 3배 수준의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고 있다. 2021년 6월말 기준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12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4% 수준이다. 

이 전문위원은 "이자율 인하를 통해 저소득‧저신용 취약계층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경감해 무분별한 연체자 양산을 방지하고, 대부업자도 상환 능력을 중심으로 대출 심사를 강화하여 건전한 대출 관행을 정착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21년에 법정 최고 금리가 인하됐을 때 저축은행과 카드, 캐피탈사에서 20% 초과 금리 대출을 이용하던 326만명의 대출 금리가 20% 이하로 일괄 자동인하돼 3590억원의 이자 절감 효과가 발생한 바 있다. 무엇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최고 금리 인하 법안을 적극적으로 다룰 공산이 커보인다. 

불법 사금융 금리 68%
시민단체 "시장 아닌 복지로"

하지만 이 역시 대출 창구가 아예 막히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 전문위원은 "대부업체들은 손실 가능성이 큰 저신용자들에게 고금리 대출을 함으로써 수익성을 보전하므로, 법정 최고 금리 인하로 받을 수 있는 이자가 줄어들면 수익성 보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상환능력이 낮은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2020년말 기준 상위 20개 대부업체에서 20% 초과 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차주가 93만명, 대출 잔액이 4조 5000억원으로 전체 차주의 93%, 대출 잔액의 94%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불법 사금융 확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2019년 기준 불법 사금융 시장 규모는 8조 4000억원, 이용자 수는 56만명으로 추정되는데 평균 금리는 67.8%에 달한다. 고금리일뿐 아니라 불법 채권 추심 등 이용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시민단체들은 결국 정부의 정책 금융 확대가 대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대회의(금융정의연대·민변민생경제위원회·주빌리은행·참여연대·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는 지난 6일 논평을 통해 "법정 최고 금리 인상은 저신용 서민 보호를 위한 정답이 될 수 없다"면서 "자칫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비율에 더해 다중·취약채무자 리스크에 불을 붙이는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민 금융 배제를 막는다는 구실로 고리대를 정당화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법정 최고 금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 생계가 곤란해지는 이들은 금융 '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탈시장적 방식으로, '복지'로서 짐을 덜어줘야 하는 계층"이라며 "'빚 내서 빚 갚기'로 연명해야하는 이들을 서민 금융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계속 빚의 늪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되며, 채무 조정 활성화와 재기 지원 시스템 구축으로 빚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박철응 기자 hero@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