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과목 비정상적 과락 대거 탈락...퇴직 공무원엔 시험 면제 자격 부여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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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자격인을 선발하는 시험이 또다시 공무원 특혜 논란에 휘말렸다. 작년 치러진 행정사 시험에서 일반 수험생들은 비정상적인 과락률을 기록하며 대거 불합격했다. 반면 퇴직 공무원들은 전문 경력을 인정받아 시험 없이 행정사 자격이 주어진다. 이를 두고 일부 수험생들은 불공정 논란까지 제기하고 있다. 특히 특정 과목에서 점수가 지나치게 낮게 나오자 출제자가 일괄적으로 채점을 잘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험을 관리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산인공)은 작년에도 세무사 시험에서 출제 및 채점 부실로 감사를 받고 시정하기로 했는데, 불과 수개월 만에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난이도 낮은 행정사실무법 과목
충격의 ‘70% 과락’에 정부 민원

최근 행정안전부와 고용노동부에는 지난해 실시한 제10회 행정사 시험에서 오류가 있다는 내용의 민원이 각각 제기됐다.

행안부의 경우 산인공을 대상으로 해당 시험에 대한 특별감사청구가 접수됐다. 해당 시험을 시행하는 산인공이 문제 출제와 평가 등 시험 운영 과정에서 관리 부실이 있었고, 이로 인해 수험생들이 잘못된 평가를 받아 행정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행정사는 일반인이 행정기관과 관련된 각종 사무를 진행할 때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접수하는 등 행정적·법적 전문 지식이 필요한 업무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직업이다. 세부 직무에 따라 일반행정사, 해사행정사, 외국어번역행정사 등 세 종류로 구분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경우는 일반행정사 2차 시험이다. 2차 시험은 ▲민법 ▲행정절차론 ▲사무관리론 ▲행정사실무법 등 총 4과목인데 한 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의 점수를 받으면 과락으로 자격증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일 2차 시험을 실시한 결과 행정사실무법 과목에서 유례없이 높은 70.35%의 과락률을 기록, 수험생들이 대거 탈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민법 과목의 과락률은 18.38%,  행정절차론은 14.65%,  사무관리론은 30.17%인 것과 비교하면 과락률이 곱절에서 많게는 5배까지 차이가 난다. 전년도 행정사실무법의 과락률(42.98%)과 비교해도 많다. 행정사실무법의 최근 5년간 과락률은 평균 31.39%이다.

민원을 통해 제기된 문제는 답안 평가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지난해 10월 법률저널이 행정사 2차시험 응시자들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번 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을 묻는 질문에 사무관리론이 응답자의 47.1%의 선택을 받아 가장 많았다. 이어 민법이 29.4%였고 행정사실무법은 13.2%로 3등, 행정절차론이 10.3%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체감 난이도는 다른 과목보다 낮은 편인데 과락률이 높게 나타나면서 예상 밖의 과락을 받은 응시자가 속출했다는 점이다. 이는 2021년 세무사 2차 시험에서 세법학 1부 과목이 무려 82.13%의 과락률을 기록해 부실 채점 의혹이 일었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공무원 출신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과도하다는 논란도 세무사 시험 때와 판박이다. 정부는 근무경력 등 일정 요건에 충족되는 퇴직 공무원에게 시험 없이 행정사 자격을 주거나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고 있다. 작년은 이 제도를 통해 퇴직 공무원 8520명이 시험을 거치지 않고 행정사가 됐다.

최근 5년간 시험을 면제받아 자격을 취득한 공무원 출신 일반행정사는 ▲2017년 4만 5802명 ▲2018년 2만 5126명 ▲2019년 2만 2713명 수준이었다가 ▲2020년 1만 7310명 ▲2021년 1만 5934명 등 1만명 대로 낮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시험을 통한 합격자는 ▲266명 ▲210명 ▲233명 ▲257명 ▲257명으로 비중이 압도적으로 적다.

되풀이된 산인공 시험 관리 부실
행안부 "산인공 내부 개입 권한 없어"

행정사는 원래 퇴직 공무원들이 경력 인정을 통해 독점적으로 자격을 취득해 왔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후 일반인들에게도 행정사 자격증을 취득할 길이 열리게 됐다. 하지만 시험 관리 부실로 이런 취지가 무색해 지면서 학원가에서는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한 행정사 시험 학원 강사는 “2021년 과락률이 40% 정도였던 행정사실무법 과목이 이번에 갑자기 70%가 넘은 것은 명백한 출제 및 채점  관리 실패”라며 “자격시험 관리에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행정사 시험을 실시하는 행안부는 산인공에 주의를 요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행안부는 행정사 시험 관련 사무를 산인공에 위탁하고 있는데, 산인공이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이다보니 시험 운영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다.

행안부 행정제도과 관계자는 “일부 수험생이 작년 시험 결과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건 사실이다”라며 “행안부도 그 부분에 대해서 관리를 잘해주고 이런 논란이 안 생기도록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세무사 시험 논란으로 감사를 받은 뒤 산인공에서 이사회를 개최해 자체 자정작용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산인공은 행안부가 직접 관리하는 공단이 아니다보니 위탁 사무에 대해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고 어필은 하지만 내부적인 부분까지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산인공의 국가자격시험 관리 책임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산인공은 세무사 시험에서 불 붙은 공무원 특혜 논란 이후 시험문제 유출('2년 만에 또 세무사 시험문제 유출 의혹…수험생들 집단 불복 소송'. <주간한국> 2021년 12월 10일 보도 ) 의혹이 불거졌고 검토위원회 부재 등 추가 의혹이 속속 제기돼 국정감사, 고용노동부 감사 등을 받았다.

당초 산인공은 단순한 출제 난이도의 조절 실패라고 주장했지만 감사에서 출제와 채점 부실이 인정됐다. 이에 따라 앞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수험생 75명이 추가 합격자로 정정됐다.

현재 세무사 수험생들은 산인공을 상대로 불합격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시험 출제위원 위촉 업무를 담당한 산인공의 직원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형사고발을 준비 중이다.

특별감사청구를 제기한 행정사 시험 민원인은 청구서에서 “(작년 행정사 시험은) 산인공이 세무사 시험 이후 자가 개선 노력을 해태했거나 동일한 위법 부당한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라며 “감사원 처분 이후에도 또다시 산인공이 세무사 시험과 같이 합격자 수 조정과 난이도 조절 문제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이제는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