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천국’에서 ‘지옥’으로…‘은퇴=자영업’ 공식 깨진지 오래

서울 시내 식당가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시내 식당가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경기도 수원시에서 거주하면서 자동차 탁송·대리 일을 하는 백모(35)씨는 지난해 11월까지 중고 가구 및 생활가전 판매점을 운영했다. 백씨가 운영하던 매장은 2020년 말부터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대출 등으로 버티다 지난해 말 폐업했다. 백 씨는 “적자 폭은 계속 늘어나는데 매출을 회복하지 못해 결국 폐업했다”며 “일단 생활비를 충당해야 해서 탁송·대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당수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들은 영업을 지속하기 위해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다. 특히 대면서비스 위주의 자영업자들은 부채를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1년간 폐업한 자영업자가 3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자영업자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삼중고까지 자영업자들을 압박하면서 자영업 비중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다만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 등을 쓰지 않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오히려 증가세다. 자영업자들이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하자 고육책으로 버티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최근 1년 폐업한 자영업자 34만명
폐업 위험률은 20대가 가장 높아

연일 계속되는 추위 속에 자영업자들에게는 더 큰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심지어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는 한탄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산업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자영업자 비중은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그 속도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26일 본지의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최근 1년(2021년 12월 중순∼2022년 12월 중순) 안에 일을 그만두고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가 된 사람은 336만 4000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직전까지 자영업자로 일했던 사람은 34만 1000명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 수는 2020년 553만 1000명에서 2021년 551만 3000명으로 1만 8000명 감소했다. 이 중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해 136만 5000명으로 5만 8000명 늘어났다. 2019년 153만 8000명에서 2020년 137만 2000명, 2021년 130만 7000명으로 소폭 감소한 뒤 반등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 수가 계속 줄었던 코로나19 확산기에도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26만 7000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46만 7000명을 기록한 이후 가장 많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하거나 무인화 기계를 도입하는 자영업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아울러 2020년 이후 폐업 위험률이 가장 높은 자영업 대표자 연령대는 20대로 나타났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2022 코로나19 이후 서울시 자영업자 폐업의 특성 분석’ 보고서(이하 ‘2022년 자영업자 폐업 분석’ 보고서)를 살펴보면 가장 폐업 위험이 적은 연령대는 50대로, 20대 대비 0.79배였다.

20대는 심지어 60대 고연령층보다도 폐업 위험률이 더 높았다. 60대 폐업 위험률은 20대 대비 0.93배였다. 그 뒤로 30대 0.87배, 40대 0.8배 순으로 20대 대비 폐업 위험률이 낮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재창업 등 자영업으로의 재진입이 많은 점과 자본, 경험에 따른 노하우의 차이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더 안정적인 영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장기화되면 결국 서민경제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며 “최소 올해까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경제 위기 여파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밀한 정책적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의 폐업은 고용 등 서민 경제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의 순탄한 폐업을 돕고 재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자금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들은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폐업과 관련해 정책적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희망리턴패키지’를 통해 소상공인의 경영 정상화와 신속하고 안전한 사업 정리를 지원하고 있다. 폐업시 발생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원스톱 폐업지원, 경영 진단·개선 등도 지원한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서울형 다시서기 4.0 프로젝트’를 통해 성실실패자 및 재창업자의 교육, 컨설팅, 자금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 ‘희망대출’ 접수 방법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 ‘희망대출’ 접수 방법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자영업자 대부분 대출 낀 채무자 신세
기존 대출 감당 못해 일수 선택하기도

순탄한 폐업과 재기를 고민하기 전에 자영업자들은 일단 빚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 위기가 지속됨에 따라 폐업 후 재기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를 중심으로 각종 지원책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금리 여파로 빚을 더 늘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자영업자들의 선택지는 폐업일 수밖에 없다. 폐업의 순간까지 막대한 빚더미를 떠안은 자영업자들에게는 재기 의욕마저 어쩌면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대전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도모(43)씨는 ”인근에 폐업하는 매장이 너무 쉽게 목격된다는 것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며 “높은 대출금리 여파로 빚을 더 늘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려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감당해야 될 막대한 빚더미”라고 하소연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020년 말 1152조 4000억원에서 지난해 하반기 말 1480조 4000억원으로 28.4%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1014조 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높아진 금리도 자영업자들을 옥죄고 있다. 국내 은행의 대출 금리는 연 5~6% 미만이 전체의 37.1%, 6~7% 미만은 34.2%를 기록했다.

특히 저신용 자영업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일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받은 대출로도 감당이 되지 않아 일수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누적된 대출금이 많은 자영업자들은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급전을 빌리려다 벼랑끝까지 몰리는 자영업자들도 부지기수다. 급기야 지자체가 불법대부업체에 대한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시는 지난 12일 영세 자영업자 등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초단기 고금리 일수 대출 등 불법 사금융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2월 말까지 전통시장 주변 등 불법대부업체에 대한 집중 단속·수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주요 수사 대상은 ▲불법 고금리 일수대출(연이자율 20% 초과) ▲미등록업체 등의 불법 전단지 대부광고 ▲대부중개업자의 거래상대방에 대한 수수료(사례금, 착수금 등) 불법 수취여부 등이다.

그나마 저신용 자영업자들이 제도권 금융 내에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창구는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소상공인·전통시장 자금’ 정도가 있다. 하지만 소상공인·전통시장 자금도 자영업자의 업력과 부채 비율 등에 따라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지원 대상이 된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8~2021년 법정최고금리는 7.9% 포인트(27.9%→20.0%) 하락해 이자 부담은 1인당 약 62만원 감소했다. 반면 이 기간 중 대부이용자는 약 135만 3000명 감소했고, 이 중 약 64만∼73만명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이동(1인당 약 1700만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민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법정최고금리 인하의 득실을 보면 차주의 이자 부담 경감보다는 저신용·저소득층이 대부 시장에서 배제되는 부작용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현재의 고정형 법정최고금리를 금융 환경 변화를 반영한 시장연동형 법정최고금리로 전환해 취약 계층이 제도권에서 금융 접근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도미도 폐업’ 발생할 위험성 증가
폐업 지원금 1조원 육박…역대 최대

인근에 있는 가게가 문을 닫으면 일대에 ‘도미노 폐업’이 발생할 위험도 크다. 서울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22년 자영업자 폐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반경 250m 내 같은 업종의 매장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일대의 폐업 위험률은 1.67배로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동종업계의 인접 폐업이 한 개 늘어나면 도미노 폐업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률이 67%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추정치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면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 사이에 상승했다가 이후 다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기간에 도미노 폐업의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또한 동종업계의 인접 폐업에 따른 위험률은 2019년 하반기 1.39배에서 2020년 하반기 1.75배, 2021년 상반기 2.06배까지 상승하고 2021년 하반기에는 1.86배로 감소했다. 평균 도미노 폐업이 1.67배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 근처 상가에서 외식업을 운영하는 김모(29)씨는 “이곳은 유동 인구가 많은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지역이라 상권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간 시행되면서 지금까지 반 이상의 외식 매장이 폐업을 하거나 폐업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이어 “상가 입주 초에 식당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우려를 했을 정도였다”며 “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다수 매장이 폐업을 하고 심지어 새로운 입주자가 없는 빈 매장이 많이 발생하게 되면서 일상 회복이 거의 이뤄진 현재까지도 상권이 다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폐업 지원금도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생활 안정과 노후보장을 목적으로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한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에게 지급한 폐업공제금은 2018년 5462억원에서 4년 만에 77% 급증해 지난해에는 9682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에너지나 원자재 가격의 급등 여파에 취약한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금속을 가공하거나 표면 처리하는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2019년 407곳이던 회원사가 지난해 말 250곳으로 급감했을 정도다. 이미 폐업했거나 조합 회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자동차 표면처리업체를 운영하는 서모(54)씨는 “일감이 없어 주 3~4일만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 때는 물론이고 팬데믹 시기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겨울은 유독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한탄했다.

서씨는 이어 “에너지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보니 표면처리업계와 같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고전하고 있는 것”이라며 “보통 자동차 표면처리업체들은 비슷한 지역에 몰려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겨울 들어 폐업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업체들이 많아 한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