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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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2022년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야 할 중추 세대를 대변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는 희망을 포기한 세대로 스스로 낙인을 찍었다. 대한민국이 부동산 투기의 열풍에 잠길 때 그들은 투기를 쫓아갈 여력조차 없었다. 빚을 내면서까지 내집 마련에 뛰어든 사람도 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사람은 상실감을 덜기 위해 주식과 가상자산 등의 투자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빚덩이만 떠안게 됐다. 정규직 취업은 '언감생심'이 된 지 오래고 비정규직 취업이 일상화됐다. 결혼은 물론이고 비용이 부담돼 연애마저 거부하며 혼자만의 삶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희망'은 사라지고 '좌절'만 남은 그들에게 과연 무엇이 남았을까. 20~30대 청년 세 명을 만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들어봤다.

기껏 취업준비를 했지만...
경기 침체로 '바늘구멍' 취업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4학년 김건우(25)

김건우 씨(25)가 지난 18일 풍산역 인근 카페에서 주간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윤성우 인턴기자)
김건우 씨(25)가 지난 18일 풍산역 인근 카페에서 주간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윤성우 인턴기자)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는 작년 정시 입학 기준으로 수능에서 387점(표준점수)를 받아야 입학 가능한 최상위권 학부다.

이 학과 4학년 학생인 김건우 씨는 평점 4.0이 넘는 우수한 성적으로 지난 학기에도 성적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기업 재무 및 경영 분석 등에 특화된 전공을 살려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그가 쏟은 세월은 5년이나 된다.

하지만 막상 고학년이 되자 생각보다 어려운 취업시장 상황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만점에 가까운 학교 성적을 등에 업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우수한 인재들이 선호하는 직장 중 하나가 증권사다.

하지만 최근 자금시장 경색 등 업계에 닥친 불황으로 중소형 증권사들은 감원에 나서고 있다. 하이투자증권과 다올투자증권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절차를 진행한 데 이어 대형 증권사인 KB증권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케이프투자증권은 법인부와 리서치사업부를 폐지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힘든 증권사 취업마저 바늘 구멍처럼 좁아지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업계에 계신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증권사 중에서도 애널리스트 직군은 감원 압박이 더 크다고 합니다. 정직원이 아니라 인턴사원도 부서별로 한 명만 뽑는다고 하거든요. 그나마 고객들을 만나 영업하는 펀드매니저 등 직군은 퇴사 압박이 덜합니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과 유튜브에 잘 정리된 투자 자료가 넘치는 상황이다보니 애널리스트를 포함한 리서치 부서는 감원 우선순위로 몰린 것 같아요.”

증권사 등 회사가 입주한 서울의 대표적인 고층빌딩 랜드마크 풍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증권사 등 회사가 입주한 서울의 대표적인 고층빌딩 랜드마크 풍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최근 경기 둔화로 취업 시장은 한기가 감돌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0.4%를 기록, 2년 반 만의 역성장이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오는 2월 BSI 전망치는 2020년 8월(81.6)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저치인 83.1을 기록했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그만큼 얼어붙었다는 의미다. 

이에 올해 신규 취업자수는 지난해 80만명의 8분의 1 수준인 10만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대적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공공기관마저 정규직 신규채용을 줄이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상위권 대학 인재들이 의사 등 전문직으로 빠져나가는 러시도 계속되고 있다. 종로학원이 대학알리미 공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자퇴한 학생이 1874명에 육박했다. 이중 자연계열 자퇴생만 1421명으로 75.8%를 차지해 대부분 의·약대에 진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직업이 안정된 학과로 이동하는 현상은 청년 세대의 위기감을 방증한다. 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명문대 진학의 관문을 통과해도 원하는 직장을 얻는 과정 자체가 험난해졌기 때문이다.

인문계열 학생들의 경우 취업이 좀 더 보장된 자격증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도 보인다고 한다. 건우씨는 “현재 학과 분위기를 보면 학점이 좋은 학생은 로스쿨로 가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 같다. 사실상 진로가 두 개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보니 경쟁자가 몰리는데, 자칫 자격증 합격에만 목매는 '고시낭인'이 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라고 덧붙였다.

회사 도산으로 다시 무직자 '악순환'
건설·부동산 관련 종사자 위기감 커져

#‘금녀의 벽’ 건설업에 출사표 던진 강다솜(26·여)

건축회사 재직 당시 건자재를 옮기는 트럭에서 사진을 찍은 강다솜 씨(26). (사진=강다솜 씨 제공)

어렵사리 일자리를 잡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경기 불황에 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은 고질적인 고용 불안의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인천에 거주하는 강다솜 씨는 건설업계 취업을 위해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직업학교를 다니고 있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아침 9시에 등원, 오후 5시까지 건축 설계에 대해 배운다. 지난해 10월 시작해 올해 7월까지 총 9개월간 진행되는 해당 과정은 실내건축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필요하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인천지역의 한 중소 건축사에서 인테리어 설계 업무를 담당했었다. 인천 송도에 오픈한 대형 피부미용샵도 자신의 손을 거쳐 완공했다. 그랬던 그가 퇴사 후 실업수당을 받으며 다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다니던 회사가 지난해 10월 경영난 끝에 폐업한 탓이다. 

그는 입사한 지 10개월 만에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당시 회사 대표는 "다시 회사를 만들면 채용하겠다"고 제안을 했지만 다솜 씨는 자립하겠다는 각오로 기사 자격증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사실 다솜 씨가 건설 업계에 발을 들인 기간은 오래되지 않았다. 당초 다솜 씨는 전문대 항공서비스학과를 졸업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카지노’의 배경인 영종도 파라다이스카지노에서 일했다.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외국인 VIP들을 상대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감이 늘 존재했다.

건축회사 재직 당시 강다솜 씨(26)의 도면 설계작업 중 모습. (사진=강다솜 씨 제공)   
건축회사 재직 당시 강다솜 씨(26)의 도면 설계작업 중 모습. (사진=강다솜 씨 제공)   

 

다솜 씨는 “카지노에 방문한 고객을 게임장으로 안내하는 등 서비스 업무를 맡았는데 3교대로 근무하다보니 야간 근무에 체력이 많이 달렸습니다”라며 “게임이 잘 안 풀린 손님에게 폭언을 듣는 등 심리적 스트레스도 컸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솜 씨가 직업을 바꾸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지속가능성이었다. 커리어를 인정받아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전문 직업을 갖고 싶었다. 결국 스물네 살이던 2021년 카지노에서 나와 건축일을 바닥부터 배웠다.

다솜 씨는 “전기도면, 설비도면, 목공도면 등 각종 도면을 마스터하고 현장에서 공사도 해봤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하면서 배웠죠. 모르는 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작업반장님들에게 물어 도면을 그렸습니다. 매일 야근에 주말 근무도 불사하다가 손목을 다쳤지만 붕대를 한 채 계속 일하기도 했어요”라고 했다.

올해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중소기업계의 자금 유동성 위기는 여전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은행권의 중소기업 평균 대출 금리는 5.93%로 6%에 육박했다. 전년 동월(3.30%)과 비교해 1년만에 2.63%포인트 치솟았다. 중소기업의 경영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특히 건설업계는 부동산 경기 악화로 사업성도 악화한 상태다. 지난해 9월 충남지역 종합건설업체 6위인 우석건설이 부도가 난 데 이어 경남 창원의 중견 종합건설업체 동원건설산업이 지난해 총 22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되는 등 리스크가 커진 상태다. 건설과 부동산 관련 기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위기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공기업 취업해도 내집 마련은 '꿈'
투잡 뛰어들고 사업 투자도 고민

#'대박' 꿈꾸는 공기업 직장인 장민석(30세·가명)

그렇다면 안정적인 직장은 답이 될 수 있을까.

지역의 공기업에 재직 중인 장민석 씨는 언뜻 보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삶이다. 2019년 수도권 지역의 문화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관리하는 지역 공기업에 입사해 올해로 직장생활 4년차를 맞았다.

정년 걱정 없이 안정적이고 '워라벨'이 가능한 직장을 원했던 그는 수도권 4년제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공기업에서 인턴을 거치며 스펙을 쌓아 꿈꾸던 공기업 직장을 꿰찼다. 공기업 경영평가 등으로 바쁜 기간을 제외하면 정시 퇴근이 보장된다.

하지만 민석 씨도 원초적인 고민에 빠진 상태다. 그는 “공부와 취업까지는 내 힘으로 할 수 있었지만 결혼에서 벽에 부딪혔습니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재산이 있을 때”라며 “집이 있어야 결혼이 가능한데, 내 봉급으로는 40살까지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못삽니다. 흙수저는 연애, 결혼, 출산을 잠정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라고 좌절감을 토로했다.

민석 씨의 세후 수입은 월 250만원가량. 최근 몇 년간 집값이 무섭게 오르면서 월급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보였다. 결국 2021년 9월 그동안 모은 돈과 대출금을 보태 총 6000만원을 나스닥 종목에 투자했다. 하루 상승 폭의 3배만큼 수익이 나는 레버리지 상품인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일명 TQQQ)’에 배팅했다. 서학개미에 동참한 것이다.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그는 '라오어의 미국 주식 무한매수법'이라는 책을 읽고 솔깃했다. 미국 주식이 우상향한다는 전제로 10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이론이다. 문제는 3배 레버리지만큼 떨어질 때도 3배로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2021년 10월부터 미국 증시가 본격적으로 낙하를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에 나서자마자 그가 보유한 종목은 35%가 떨어졌다. 민석 씨가 매년 1000만원씩 어렵게 모은 돈은 그렇게 ‘산화’했다.

자산가격이 폭등하면서 상대적 가난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결혼 등 가정을 꾸리려면 직장 수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주식, 코인 등의 투자가 희망이 되기도 했지만 자산가격이 폭락하면서 큰 손해를 입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2년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5∼29세 남녀 1인 가구 2000명 대상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42%가 '복수의 직업 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알음알음 주변 지인을 통해 사업에 투자하려는 사례도 비교적 많다. 동학개미 투자에서 실패했으니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업 수익을 통한 수익금을 배분받겠다는 기대심리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은 형태의 사모펀드 방식은 자칫 피해를 입을 경우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쉽게 간과하기도 한다.


이재형 기자‧윤성우 인턴기자 silentroc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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