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보험료율 9%→15%, 건보료 월 1인당 2만원↑, 실업급여 지급↓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정부가 서민의 노후와 복지를 책임지는 사회 보장제도의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국민연금의 재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입연령을 59세에서 64세로 늘리고 보험료율은 종전의 9%에서 15%로 6%포인트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건강보험도 지난해 일몰이 된 국민건강보험법(건보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국민 1인당 월 2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또한 고용보험의 재정 안정을 위해 실업급여 지원금도 줄어들 전망이다. 이 같은 일련의 개혁 조치들은 결국 국민 공감대를 얻는 것이 관건이다. 한참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입장인 청년 세대에서 '더 내고 못 받는' 정책이라는 반발감이 거세다. 마찬가지로 납입 기간을 늘리는 식의 연금 정책을 폈던 프랑스에서 수백만명이 시위를 벌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 동의를 이끌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국민연금 가입 64세 상향은 동의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은 의견 엇갈려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가입연령 상향 등 일부 안건에 대해 가닥이 잡혔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민간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의무가입연령은 59세에서 64세로 상향될 전망이다.

대신 특정 조건 충족 시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크레디트 제도 혜택을 확대할 전망이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거나 입양할 때부티 인정되던 출산 크레디트는 첫째 아이부터 전액 국고로 지원하고, 군복무 크레디트는 복무 전 기간까지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외에도 임시 일용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및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사업장 가입자 포함, 저소득 지역 가입자 보험료 지원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민간자문위 소속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은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민공감' 주최 세미나에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양쪽이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여기 나오는 대책들은 대부분 동의하는 그런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민공감 3차 회의에서 권문일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장이 '연금개혁의 방향'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하지만 월 납부액과 수령액을 결정하는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자문위 내부에서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보험료율을 15%로 각각 인상하는 '소득보장 강화론'과 현행 40%인 소득대체율은 유지하고 보험료율은 19%까지 인상하는 '재정안정 강화론'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소득보장 강화론은 국민연금 기금고갈 시점을 10년 정도 연장하고 재원은 가입상한연령 및 정년 연장과 국고 투입 등으로 마련하자는 것이다. 재정안정 강화론은 19% 보험료율에서 국민 부담은 15%까지 올리고 나머지 4%는 기금운용 수익 등으로 벌충하는 방안이다.

찬성보다 반대 많은 연금개혁
청년층 불만 세대갈등 '산 넘어 산'

현재 국민 여론은 납부액 및 수령액 조정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넥스트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 개편 방향에 대해 ‘보험료 월 납부액을 늘린다’로 응답한 사람은 13.6%, ‘연금 수령액을 줄인다’는 10.5%에 그쳤다. ‘수급 연령만 늦춘다’는 응답은 30.2%이었고 가장 많은 응답은 35.2%가 선택한 ‘현행 유지’였다.

여당은 향후 500명의 국민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숙의 절차를 거칠 계획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논의되는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두고 '노령층 복지 비용을 젊은 세대가 짊어지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제기되면서 세대간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그동안 납입금이 여러차례에 걸쳐 증가했지만 고갈 위기는 계속된 점을 들어 국민연금을 이른바 '폰지게임'으로 빗대기도 한다. 또 국민연금 납입금의 월 소득 상한이 550만원이다보니 수억원을 버는 고소득자도 납입금이 같다는 역진성 문제를 안고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샤를르(15) 양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오후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리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샤를르(15) 양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오후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리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던 프랑스도 최근 국민연금 개정 문제로 수백만명이 시위에 나서는 등 범국민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프랑스 정부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고 연금 100% 수령에 필요한 보험료 납부기간을 현행 42년에서 43년으로 연장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A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프랑스 250여개 지역에서 280만 명이 거리에 나와 정부안에 대한 반대 시위에 동참했다. 앞서 첫 번째 시위 때인 지난달 19일의 인파(200만명) 보다 불어난 것이다.

건보료 충돌로 국민연금 이탈자 늘어 
사회보장제도 대격변 곳곳에서 '삐걱'  

한편 우리나라 연금 개혁 논의 와중에 건강보험료 제도와의 충돌로 국민연금 재원이 이탈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작년 9월부터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얻는 총 수입이 연간 2000만원을 넘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보험료 부담이 큰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생긴 문제다.

원래 국민연금에 가입할 의무가 없더라도 연금액을 늘리고자 스스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연금 일부를 충당해왔는데, 이런 문제로 국민연금을 탈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30일 오후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설치된 건강보험 정부지원법 개정 관련 배너.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민연금공단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 기준 국민연금에 자의로 가입한 임의가입자와 임의계속가입자를 합한 수는 88만 3960명으로 같은 해 1월말(94만 7855명)과 비교해서 6.74%(6만 3895명) 줄었다. 제도 변화로 피부양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변경돼 지역건보료를 내는 인원도 지난해 11월 기준 23만1843명에서 12월에는 44만 9450명으로 21만명이 늘어났다. 소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피부양자에서 빠져 건보료 부담이 늘어난 개인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문심명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형평성 도모 차원에서 일정 소득이 있는 공적연금 수급자에게 건보료를 거두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이지만 과중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산정할 때 재산 비중을 더욱 축소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건보노조)에 따르면, 건보료는 건보법 개정 불발 시 내년부터 약 17.6% 인상될 전망이다. 국민 1인당 월 2만원 정도 더 내야 한다. 

고용보험도 보장폭이 대폭 줄어든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에서 실업급여 액수는 줄이고 대기 기간은 연장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고용장려금 사업은 17개에서 5개로 줄이는데 정부는 이같은 고용보험사업 제도 개선을 통해 올해 고용보험 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