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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어디까지] 무작정 외면하기 힘든 '공생관계'

“변호사를 소개시켜준 것 자체가 그토록 죽을 죄가 됩니까.”

대전 지역 이종기변호사의 수임비리 사건으로 법조계 전체가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힌 요즘 검찰내 분위기는 몹시 뜨악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 비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공감하면서도 ‘마녀사냥’ ‘여론몰이’ 식으로 이뤄지는 수사 자체에 상당한 불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정의 수호의 최후 보루자’ 라는 검사들이 졸지에 조사 대상자로 전락,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대검청사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에 치욕을 느끼는 모습이역력하다.

지난 93년 슬롯머신 사건으로 당시 이건개대전고검장이 조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처럼 단일 비리사건으로 수많은 현직 검찰간부와 평검사들이 한꺼번에 수사대상이 된 적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결국 검찰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끼리끼리’ 봐주는 식의 검찰_변호사간의 썩은 환부가 결국은 곪아 터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감춰진 검사_변호사들간의 실상은 뭘까.

◆학교 사시 선·후배로 얽힌 관계

일반인들이 쳐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는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위풍당당한 건물과 삼엄한 경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 곳에는 하루에도 말쑥한 옷차림에 검정색 서류가방을 든 중장년 신사 20~30명이 분주하게 오고 간다. 서초동 주변에 개업한 검사출신 변호사들이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사전에 전화로 예약하고 검사실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수사중인 검사실에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경우도 많다. 서울지검 한 부장검사의 말. “정말 귀찮을 때가 많아요. 그러나 대다수가 학교및 사시 선·후배들이라 거절하기도 힘듭니다. 사건과 관련된 청탁을 할 때는 무작정 외면할 수도 없어 정말 곤혹스러워요.”

최근 변호사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법원과는 다른 풍경이다. 이들은 특히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채 수사가 진행중인 특수부나 강력부 검사실도 마치 제집 드나들 듯 출입한다. 또 피의자와 면담할 수 있는 장소가 별도로 마련돼 있지만 굳이 검사실을 고집한다는 게 한 검사의 귀띔이다. 아직까지 수사과정에 변호사 입회권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검사를 만나 사적인 청탁으로 사건을 해결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검사들 역시 변호사들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관행에 익숙해져 변호사 출입을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담당사건 변호사와 만나 서로 의견조율을 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솔직히 피의자를 조사할 때 변호사와 상의하는 검사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미국처럼 ‘플리 바겐’(Plea bargain)이라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변호사를 만나 피의자가 일정 부분 혐의사실을 시인토록 서로 협상을 벌이죠. 그러면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요.” 형사부에 근무하는 한 검사의 항변이다. 하지만 이처럼 전관출신 변호사들의 잦은 검사실 출입은 결국 이변호사 사건의 경우처럼 법조계 비리를 잉태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떡값은 보통, 룸살롱서 정기 술대접도 받아

검사들 스스로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관행은 명절때나 휴가·인사철, 연말때 친분 있는 변호사들로부터 받는 떡값이다. 보통 ‘직원 회식비’ 명목으로 20만~50만원선의 돈이 건네진다. 부장검사 등 간부들은 100만원 안팎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경력 7년차인 한 검사의 솔직한 고백. “서울은 주변의 시선이 많은데다 검사들 숫자도 수백명이라 변호사들이 돈을 갖다줄 엄두를 못내죠. 그러나 지방에서는 거의 관행으로 굳어져 있어요. 내가 지방에서 근무할 때도 연수원 동기 등 친한 변호사들로부터 명절 때 한번에 20~30만원씩 받았어요. 대부분 직원 회식에 보태쓰라며 건네주는 돈이죠.” 청렴하고 강직해야 할 검사들이 별반 죄의식없이 변호사들로부터 무심코 떡값을 받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 돈은 모두 사건 의뢰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쌈짓돈이다.

이변호사 사건에서 드러나듯 검사들에 대한 향응도 제공되기 마련이다. 룸살롱 단란주점 등 일부 단골업소를 정해 정기적으로 술자리를 갖는 것은 기본. 골프, 도박도 함께 한다는 것이 검사들의 고백이다. 검사들은 특히 도심과 떨어진 지방에 근무할 경우 변호사들과 어울려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는 경우가 많다. 또 포커 등 도박의 경우 변호사들은 수십만원씩 일부러 돈을 잃어준다고 한다. 이후 사건과 관련된 청탁이나 민원을 위한 ‘적금’ 성격이다.

◆쉬쉬하던 ‘검은 밀착’ 수면위로 떠올라

검사들이 친인척및 친구들로부터 부탁을 받고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수사중인 사건을 소개해주거나 알선료 등 검은 돈은 전혀 오가지 않는다는 것이 검사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오히려 변호사에게 사건 부탁을 하기 때문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주장은 약간 다르다. 한 변호사는 “현직 검찰 간부가 사건을 소개해줄 경우 대충 처리할 수 없다. 보통 사건보다 배나 기록을 꼼꼼히 살피고 상담도 서너시간씩 해준다. 수임료도 되도록 다른 사건보다 적게 받는다” 고 말했다. 검사들이 소개한 사건 자체가 변호사들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번 이변호사 사건도 결국 이처럼 지금껏 쉬쉬하며 이뤄져온 검사_변호사간의 검은 공생 관계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에 불과하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 을 감수하고서라도 법조비리를 완전히 뿌리뽑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또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검사장 등 검찰 간부들에 대해서는 다가오는 2월 중순 검찰 인사에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것이 검찰 수뇌부의 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검찰 인사는 의외로 대폭적인 물갈이인사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청렴하고 개혁적 성향의 간부들이 전면에 포진할 전망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법조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몇몇 검사들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보다는 잘못된 관행을 끊겠다는 검사들 각자의 강력한 자정의지가 필요한 때라고 법조계 주변에서는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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