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사법개혁 어디까지] 대전에서 부는 칼 바람

법조계 비리가 터질 때마다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고질적’ 또는 ‘관행적’이란 말이다. 대전 이종기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에서도 똑같은 말이 모든 언론에서 되풀이 됐다. 그러면서 결국은 ‘근본적’‘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뒤따랐다. 옳은 지적이다. 법조계 비리는 정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리 내용도 관련자 이름만 다를 뿐 과거나 지금이나 그 유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브로커 고용, 전관예우, 급행료 등 전형적인 비리에다 최근에는 판·검사들의 촌지나 향응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관행으로 치부돼왔던 촌지나 향응이 지난해 의정부지원 사건이후 본격적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문제는 이러한 비리가 특정 개인이나 특정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법조계 전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데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건 수사와 관련자 처벌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수술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기변호사는 대전지검에서 구속되면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담은 메모를 남겼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우리나라에서 소개비라는 원죄적 관행과 제도가 타파됐으면 한다.…” 브로커를 고용해 소개비를 주고 사건 수임을 하는 변호사업계의 오랜 관행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같은 관행적 법조비리는 그 원인이 매우 복합적이다. 제도개혁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지 단언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비리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제도개혁과 함께 법조계 종사자들의 의식 개혁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변호사 사건이후 대전의 한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들에게 자성을 촉구하는 글을 띄워 화제가 됐다. “왜 개업한 지 1년 안에 10억~30억원을 벌지 못하면 자존심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는지 답답하다.… 다시는 사건 수임과 관련해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지 말자.” 변호사 개업만 하면 일확천금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토를 지적한 것이다.

아무튼 이변호사 사건은 법조계 안팎에서 사법개혁의 여론에 불을 붙였다. 원인이 복잡한 만큼 처방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또 법조계 내부와 시민단체 등 외부 여론의 시각차도 매우 크다. 그만큼 제도개혁이 구체화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당장 전관예우 금지 문제만 해도 재조와 재야 법조계, 시민단체 사이에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기존 변호사 단체와 시민단체들은 판·검사출신 변호사들에 대해 직전 근무지에서 2년간 형사사건 수임을 못하도록 하는 형사사건 수임제한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직 판·검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법무부는 이 조항이 검사나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에게 특별히 불리한 조항으로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법무부는 현재 진행중인 변호사법 개정안에 이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을 방침이어서 법 개정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국회에 직접 청원, 형사사건 수임제한을 골자로 하는 전관예우 금지규정을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관예우를 둘러싼 이같은 입장차는 이변호사 사건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른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이변호사 사건의 핵심은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전관예우가 아니라 브로커 고용을 통한 수임비리이다. 이변호사가 개업후 2년동안 브로커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사건 수임을 못했다는 얘기는 이번 사건이 전관예우와 무관함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브로커 고용을 엄벌하는 쪽으로 법개정을 하면 이같은 수임비리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판·검사 출신 전관들에게 사건이 몰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연수원 출신보다는 실력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재야 변호사업계의 주장은 다르다. 결국 전관 변호사들에게 사건이 몰리는 것은 변호사로서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전관이라는 실력 외의 프리미엄에 의해 사건을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관예우 관행이 사라지면 전관들의 형사사건 독식 현상과 브로커 관행도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변호사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전관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과 해결과정에서 과거 재조 시절의 인맥을 최대의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검사출신 변호사의 경우 정식으로 변호사 선임계를 내기 전에 ‘전화 한 통화’로 사건을 해결하고 수백만원의 수임료를 챙기는 경우도 많아 전화 한 통화 값이 그렇게 비싸냐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전관예우와 관련해서는 변호사들 보다도 변호사 사무장과 법원·검찰 직원간의 유착이 오히려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은 이변호사 사건을 계기로 검찰 일반직들의 사건 알선을 제한하고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전관예우의 문제도 따지고 보면 학연과 지연을 중시하는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고교, 대학, 연수원, 판·검사로 이어지는 동기 또는 선후배의 끈끈한 관계가 유착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판·검사·변호사의 배타적인 동료의식이 경쟁 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매달리도록 부추기고 있다. 현재 사법시험으로 일원화돼 있는 법조인 양성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식 로스쿨 제도 도입이나, 변호사와 판·검사 시험 분리, 사법연수원 제도 개선 등이 논의의 골간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법조계 안팎에서 이견이 너무 많아 뚜렷한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김영삼정부 초기에도 이같은 제도개선을 논의하다가 좌절된 경험이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한편 이변호사 사건으로 검찰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고되고 있다. 검찰 수뇌부는 사건 관련 검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어렵다 하더라도 엄중한 징계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이번 사건으로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3~4명이 옷을 벗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또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고검장급 일부가 용퇴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아 검찰내부는 이래저래 뒤숭숭한 분위기이다. 검찰 고위관계자도 “이변호사 사건에 연루된 검사들에 대해 일반 국민이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해 관련 검사 상당수의 사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11월 제2854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11월 제2854호
    • 2020년 11월 제2853호
    • 2020년 11월 제2852호
    • 2020년 11월 제2851호
    • 2020년 10월 제2850호
    • 2020년 10월 제2849호
    • 2020년 10월 제2848호
    • 2020년 09월 제2847호
    • 2020년 09월 제2846호
    • 2020년 09월 제2845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순천…갈대, 노을, 그리움의 향연 순천…갈대, 노을, 그리움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