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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파괴시대] 푸대접. 설움 떨쳐낸 외길인생

“생을 다하는 날까지 전통문화를 지키고 전승시키겠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학력은 무학 국졸 중졸인데 ‘외길을 열심히 걸으면 학력이 없어도 괄시받지 않고 전문가로 대우받는 날도 있구나’ 생각하니 감격스럽습니다.”

작년 12월 29일 한양대 전통미술원 개원식에서 이 대학 교수로 위촉된 나전칠기 장인 이칠용(53)씨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이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속칭 인간문화재)를 선정하는 문화재 전문위원일 만큼 나전칠기 분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명인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날 소감을 밝히면서 목이 메였던 것은 30년 가까이 박사 학위는 물론 대학 졸업장조차 없어서 당했던 푸대접과 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설움은 이날 이씨와 함께 교수로 위촉된 각 분야 장인 57명 등 300여명의 동료 장인들의 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상고 중퇴, 나전칠기분야 최고의 명인

아직도 공예가들 사이에는 “박사 석사는 교수로 가는데 인간문화재는 강사로 간다” 는 자조 섞인 푸념이 적지 않다.

이 교수가 나전칠기에 입문한 것은 지난 70년. 우연히 서울 중곡동 판자촌에서 나전칠기를 하던 김평산(당시 63세)씨의 공방을 구경하면서부터다. 방에 널려 있는 작품에 매료돼 김씨와 동업으로 한미공예사를 차리고 기술부터 익혔다. 서울 대동상고를 중퇴하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왔을 무렵의 일이다.

기술을 다 익힌 80년부터는 원가 1만원짜리 나전칠기 보석함 1개를 일본에 1만엔에 수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는 이후 우리 나전칠기의 특징과 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비슷한 칠기 기술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사례도 같이 공부했다. 세계 무대에서 뭔가 다른 독특한 우리만의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실이 ‘한국옻칠용어사전’ 등 여러 권의 저서와 공예관련 잡지 발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도 각종 공예 관련 서적과 슬라이드 필름 등 자료 8만4,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기술과 함께 이론적 토대를 확고히 해주었다. 외국유학을 갔다 온 대학 교수들도 못해낸 일을 해낸 것이다.

◆독립운동하는 자세로 나전칠기에 매달려

이 교수는 “가족과 휴가 한번 못 갔을 정도로 독립운동 하는 자세로 나전칠기에 매달렸다”고 말한다. “나전칠기 분야에서는 이제 이룰 만큼 이뤘다고 봅니다. 청와대 장식용 나전칠기도 만들었고 클린턴 대통령이 왔을 때 선물한 보석함도 제가 만든 것입니다. 돈도 많이 벌어봤고 책도 냈고. 이제 교수까지 됐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저처럼 한 우물을 판 사람에 대한 대접이 형편 없습니다. 대학을 안나와도 얼마든지 여러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사회가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아직은 대학 졸업장 없이 살아가려면 장벽이 너무 많아요. 얼마전 신문에서 지난 1천년동안 인류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중에 금속활자를 발명한 독일인 구텐베르크를 꼽은 것을 봤습니다. 우리는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보다 몇백년 앞섰는데도 왜 뽑히지 못했을까요? 도대체 누가 금속활자를 만들었는지 이름도 없고 기록도 없습니다. 그만큼 장인들을 천시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기술 발전이 되겠습니까?”

그는 “대학 가는 공부가 하기 싫은 사람은 일찌감치 하나의 전문분야를 택해 외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강조한다. “대학을 나와 써먹지도 못할 바에야 일찌감치 자기 분야를 하나 잡아야지요. 학교에서도 어려서부터 학생의 적성이나 특기를 잘 관찰해 대학 공부에 맞지 않는다면 기술 분야로 진출하기를 권해주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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