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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서상록씨 "5년안에 최고웨이터 되겠다"

서씨는 틈만 나면 ‘장관자리를 줘도 내 자리와 안 바꾸겠다’ 고 떵떵거린다. 달리 가진 것도 없다. 전 삼미그룹 부회장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는 지금 틀림없는 견습웨이터다. 한달 월급이 100만원도 채 안되는 식당 종업원이다. 장관보다 나은 면이 있기도 하다. 웨이터로 출발하던 지난해 4월부터 지금껏 그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아왔다. 국내 일간지와 방송, 잡지는 물론 영국 BBC, 미국 CNN, 일본 NHK를 비롯해 싱가포르, 중국의 주요일간지 등 세계 각지 언론이 앞다투어 그를 만나고 돌아갔다. 삼미 부회장 시절에도 받아보지 못한 대접이다. 아마 국내 어느 장관도 이만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진 못했을 것이다. 단지 날이면 날마다 워낙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는 통에 웨이터 선배님들 보기가 면구스러운게 흠이다. 삼미 부회장 시절을 자꾸 들먹이는 기자들이나 ‘이것도 쇼 아니냐’ 고 빈정대는 이들에게 벌컥 화라도 내보고 싶지만 그조차 수습 10개월차의 ‘언행이 조신해야할’ 웨이터라서 맘놓고 내색하기도 어려운 처지.

◆모양만 베테랑, 주방·객실에선 하루종일 ‘구박’

식당에서 나비넥타이에 정장까지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를 보면, 견습이 아니라 수석웨이터쯤은 돼보인다. 듬직한 체구때문인지 혹은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묵직한 연륜때문인지 베테랑같이 보이는 초보다. 그러나 다른 웨이터들까지 그를 ‘선배님’ 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속으면 안된다. 그것은 인생의 선배라는 뜻이지, 실제론 주방에서나 객실에서나 그는 종일 구박을 받는 완벽한 신참이다. 일을 시작한지 두세달만에 자신을 보러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이 고마워서 직접 포도주를 대접한답시고 서빙을 하다가 그 사람 머리에 멋지게 잔을 엎어 포도주 범벅을 만든 일도 있다. 웬만하면 싫은 소리를 안하려던 지배인으로부터 ‘견습생 신분에 웬 포도주 대접에 서빙이냐’ 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머리를 수그리고도, 그의 실수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곧 견습 딱지를 뗄 수 있다고 지레 기뻐하는 요즘까지도 잊을만 하면 접시 하나씩은 꼭 깨뜨린다. 아무래도 그의 예상보다 견습기간이 더 길어질 것도 같다.

그가 맡은 일은 접시를 닦고, 빵을 썰고, 음식을 날라다 놓는 일 따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해서는 안된다. 객실에서 주문을 받아서도 안되고, 주어진 일 이외의 용무로 손님을 방해해서도 안된다. 작년 4월에 시작했으니 이 일도 벌써 10개월째. 그러나 빨리 객실로 나가고 싶어 그는 몸이 달아있다. 저녁 6시에 출근해 밤 10시 퇴근할때까지 근무시간외에는 온통 견습신세를 하루빨리 면할 궁리에 골몰해있다. 집에 돌아가도 내내 접시를 닦거나 컵 쟁반을 들고 다니는 연습으로 온 집안을 어질러놓는다. ‘이왕 깨는거 비싼 호텔접시보다는 내 집 접시가 백번 맘이 편하다’ 며 맘놓고 연습하다가 부인한테도 숱하게 구박을 당했다. 젊은 시절에 고생을 안해본 것도 아니지만, 정말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며 그는 다시금 혀를 내두른다.

◆재벌기업 부회장 따내기보다 어려웠던 자리

“보기엔 쉬워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잔 네 개 들고 나르는 것도 다 균형이 맞아야되고,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죠. 처음엔 배가 고픈 때가 많았습니다. 여기선 오후 네시반에 밥을 먹으면 그때부터 계속 일만 해야되는데, 처음엔 저녁 7시만 되면 그렇게 배가 고프더라구요. 원래 식사습관이 있으니까. 참다못해 주방에서 빵도 많이 집어먹다가 결국 지배인한테 걸려서 주의를 들었습니다. 나이든 사람이, 내가 이러면 안되지, 그땐 어찌나 미안하고 창피하던지…. 다행히 너댓달쯤 지나니까 식사시간에 적응이 돼서 괜찮아지더라구요. 이젠 별 문제 없습니다.…”

세간엔 ‘위선’ 이니 혹은 ‘부회장을 지낸 사람이 고작 웨이터냐’ 고 우습게 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이 자리 따내기가 재벌기업 부회장 자리 얻기보다 더 어려웠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삼미그룹의 부도로 사표를 낸 것이 97년 12월. 부도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으로 서너달 근신하다가 재취업 결심을 했다.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 차라리 이 참에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홀가분하게 시작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웨이터였다. 수십년동안 업무차 상담자들과 식당을 이용해오면서 종종 불친절한 웨이터들을 만날때마다 ‘내가 하면 저렇게 안하겠다’ 고 별렀던 일이었다. 결심을 하자마자 그는 몇몇 식당을 찾아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단번에 거절당했다. 체력도 걱정되고, 자칫하면 식당주인이 ‘나이 든 사람에게 궂은 일 시킨다’ 는 욕을 먹기 십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식당 뽀이’ 자리를 일단 포기하고 마음을 바꾼 것이 아파트 경비직. 그러나 비슷한 이유로 줄줄이 거절당했다. 병원 안내원, 골프장 보조일까지도 알아봤지만 한 군데도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찾아간 경영자총연합회 고급인력센터에서도 구직신청서 희망직종란에 ‘식당종업원’ 이라고 쓴 그를 기자들 취재감으로만 만들어놓았을 뿐 종내 믿지 않으려 들었다.

◆가족들이 든든한 후원자, 고개 돌린 친구들도 많아

하는 수없이 다시 직접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서울시내 유명한 음식점 십여곳을 더 뛰어다녔다. 다행히 채용의사를 밝혀온 몇몇 업소 중 택한곳이 바로 현재 근무지. 막상 일을 하려고보니 함께 있는 동료 웨이터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평균나이가 20대 중반인 웨이터들이다. 전직 재벌기업 관리자에 60대 노인인 자신을 껄끄러워할까봐 그는 입사하자마자 이들에게 ‘내가 전에 무엇이었든 내 과거를 다 잊어주시오’ 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빌자면, 처음부터 ‘알아서 기었다’. 눈치껏 접시도 먼저 달려가 닦고 다른 허드렛 일도 도맡아 하는 등, ‘잘 긴’ 덕분에 다른 웨이터들과의 관계도 이젠 아주 매끄럽다.

그의 가장 강력한 응원자들은 가족이다. 주위 짐작과는 달리 그가 이 일을 시작할때부터 지금까지 가족중 반대 표 하나 없었다. 재력가의 딸로 곱게 자라온 아내부터 ‘당신이 원하는 일이니 하고 싶을 때 원껏 하라’ 며 두말없이 그를 밀어줬다. 미국에 있는 세 아들도 오히려 일자리가 빨리 잡히지 않는 것을 걱정해 줄 정도였다. 대신 친구를 많이 잃었다. 전 대기업 부회장 서상록이 웨이터가 된다고 소문이 나자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라’ 며 전화를 걸어온, 절친했던(적어도 그렇다고 믿었던) 사업가 친구도 있고, 삼미 부회장이라서 한동안 그를 ‘상대’ 해주었던 사람들은 언론에 알려지기가 무섭게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젠 진심으로 그를 걱정해주는 사람들만 남아 조용히 그를 응원하고 있다. 새 친구도 많이 생겼다. 전국각지에 격려 편지를 보내오는 팬들도 있고, 벌써 그가 웨이터 명함을 돌리고, 홍보를 하면서 자력으로 확보한 고객도 솔챦다.

◆‘바이얼린 켜는 웨이터’ 되기 위해 맹연습

그는 유난히 꿍꿍이가 많은 사람이다. 접시닦이에 절 연습을 마친지도 채 며칠 안 됐는데 요즘은 바이얼린과 씨름이다. ‘한국 최초의 바이얼린 켜는 웨이터’ 로 떠 보겠다는 심산이다. 견습으로 들어온지 석달뒤에 벌써 이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배운지 여섯달이 지나 요즘은 ‘해피 버스데이’ 까지 발전했다. 올 10월에는 손님들 앞에서 팝송도 연주할 수 있을 거라며 나름대로 연주스케줄까지 세우는 모양인데, 웬일인지 당장 들어보고 싶지가 않다. 요즘에는 기업체나 관공서 등지에서 강연요청이 쏟아진다. 출근전 일주일에 두세차례는 강연장에 나가고, 바로 며칠전엔 <내 인생 내가 살지> 라는 제목의 자서전까지 펴 낸, 몹시도 바쁜 그가 바이얼린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을지, 시험 해보기가 조금 두렵다.

얼마전엔 이 10개월차 견습생밑에 더 ‘초짜’ 인 초짜도 들어왔다. 그의 ‘입지’ 가 더 넓어졌다. 자신도 이젠 후배가 생겼다며 못내 흐뭇해하는 그를 보니 그 후배의 시집살이가 걱정되기도 한다. 바로 조금전 그가 ‘알고 보니 웨이터들 군기가 해병대 군기보다 훨씬 더 무섭더라’ 고 한 말이 불현 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말 칼자루를 쥔 지배인 의중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그는 혼자서 이미 향후 5년 계획까지 다 짜놓았다. 올해 연말쯤엔 수습딱지를 떼고, 그때부턴 본격적으로 손님들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등, 보란 듯이 객실을 누빌 꿈에 부풀어있다. 그리고 빠르면 3년안에 늦어도 5년내에 ‘정상급 웨이터’ 로 자리잡겠다고 한다. 아무리 인기가 있다곤 하지만, ‘힘도 없는’ 견습생을 오래 붙들어놓는게 도리가 아닌듯해 마지막 질문만 던지려는데, 대책없이 그가 시간을 끌고 만다. ‘너무’ 를 연속 세 번, 그것도 서너차례나 거듭거듭 말한 탓이다.

“지금의 제가 ‘너무너무너무’ 좋습니다. 어딘가 캄캄한 굴에 갇혀있다가 환한 세상에 막 빠져나온 기분입니다. 더 이상 제가 ‘관리’ 해야 될 아랫사람도 없고, 어디가서 사정해야 될 일도 없고, 야단은 많이 맞지만 그것도 야단쳐야 되는 입장보다는 야단 맞는 입장이 훨씬 행복합니다. 피치못하게 거짓말해야 할 일도 이젠 더 없고, 등기상으론 내 것이 아니지만 이 호텔이 내집같고 내 사업체처럼 느껴집니다. 한눈에 서울이 내려다보이니 환경도 좋고, 정말 너무너무너무 좋습니다. 웨이터도 하나의 전문직인데 반드시 이 분야에서 성공할겁니다. 제겐 꼭 맞는 일이고, 이제야 제대로 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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