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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미국 어린이들‘숙제와의 전쟁’

몰리 베네딕트는 11세 여자 어린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스쿨 6학년이다. 몰리의 하루일과를 살펴보자. 그녀의 하교시간은 오후 3시30분. 귀가하자마자 곧 바로 컴퓨터를 켜고 한 페이지짜리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약 1시간반에 걸친 작업이 끝난 후 그녀는 이 페이퍼를 엄마에게 검토해달라고 요청한다. 엄마가 리포트의 잘못된 점을 체크하는 동안 몰리는 바삐 오렌지 차를 곁들여 베이글을 먹는다. 그러면서 엄마의 지적을 듣는다. “이것은 내가 이제껏 읽은 책중 가장 좋은 책이다라고 쓰면 어떨까? 선생님들은 강한 의견을 좋아한단다”

다음 순서는 수학 숙제. 몰리는 무려 100문항 이상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숙제가 끝나면 중동지역 지도에 여러 나라와 바다, 강을 표시하는 숙제를 시작한다. 이것으로 숙제가 다 끝난건 아니다. 다음 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순환계에 대한 과학 숙제.

오후 5시30분. 2시간에 걸친 숙제를 끝낸 후 몰리는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리고 1시간 가량 피아노 연습을 한다. 저녁 먹을 시간도 부족할 정도다.“숙제가 좀 줄어든다 해도 제가 요즘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자신의 숙제가 늘 너무 많다고 여기는 몰리만 숙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43세인 그녀 엄마도 시달리기는 마찬가지.“30대까진 스트레스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요즘은 힘들어요. 11살 짜리 딸이 숙제로 스트레스 받는 것을 지켜봐야 하니까요.”

태권도 레슨, 도자기 워크숍, 바순 레슨등 이밖에도 아이들의 일과를 바삐 만드는 과외활동은 수없이 많다. 아이들은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숙제를 하기 전 이메일을 체크할 시간 조차 낼 수 없다.

요즘 미국 어린이들의 숙제량은 전보다 훨씬 늘고 있는 추세. 미시간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6~9세 어린이들이 숙제에 소비하는 시간은 주당 81년 44분에서 97년 2시간 이상으로 늘어났다. 또 9~11세 어린이의 경우엔 81년 2시간49분에서 97년 3시간 반으로 역시 크게 늘었다.

20세기동안 미국‘숙제’의 역사는 변화무쌍했다. 금세기 초 많은 진보교육자들은 숙제가 학문에 대한 열기를 앗아간다며 초등학교에서 숙제를 아예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특히 57년 러시아(구 소련)가 스푸트니크호를 먼저 우주로 쏘아올리자 입법가들은 소련의 무서운 아이들에 필적할 만한 어린이들을 키우기 위해선 수학과 과학교육의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아이들의 숙제량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도 잠깐. 60년대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숙제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80년대 초 미국의 경제 상황과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일면서‘미국 학교 교육의 실패’에 대한 의견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학교 교육도 빡빡해지기 시작했다. 또 우수대학 입학 경쟁이 점점 심화되면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보다 강력한 교육을 받도록 학교측에 요구하게 됐고 이에따라 교사들은 더 많은 숙제를 학생들에게 부과하게 됐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과로, 지금 학생과 학부모들은 톡톡히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숙제 때문에 서너시간 밤을 허비하기도 하고, 4시간이 넘도록 도서관을 헤매며 눈물을 쏟기도 한다. 단조롭고 평화롭던 ‘피난처’였던 가정이 이젠 매일 숙제와의 전쟁을 치루는 고통스런 장소로 변한 것이다. 오레곤주에 살고 있는 학부모 린 오칼레한은 “우리집 분위기는 요즘 너무 우울해졌다. 8살짜리 딸이 매일 밤 두시간 넘게 숙제를 한다. 숙제와 씨름을 하는 딸을 보며 과연 누가 이런 형태의 숙제를 원했던가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뉴저지주에 사는 세자녀의 엄마 로라 만델도 비슷한 감정을 토로했다. “아이들이 귀가해서도 내내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숙제해야 하고, 이때문에 더이상 가족들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가들이 가족의 가치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쓴 웃음을 짓는다.

◆ 숙제가 많은 이유

이제 ‘숙제와의 전쟁’은 미국내에서 점점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무가치한 교육재료들과 자격이 부족한 교사로 채워진 열악한 여건 속에서 90년대 들어 점점 증대되고 있는 학교 역할에 대한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집에서 해야 할 숙제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베이비 부머’ 학부형들에게 아이들에게 부과된 숙제량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강도높게 교육받고 있는지 가늠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됐으며, 이를 만족스럽게 여기는 부모들도 많다. 특히 아이들 교육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지 못하는 맞벌이 부모들의 증가도 숙제가 많아지고 있는 이유중 하나다. 그러나 미국의 교사, 학부형, 정책 수립가들은 어린이들의 숙제에 대해 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배우길 원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이?

◆ 숙제의 양면성

일부 교사들은 아이들의 과도한 숙제가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빼앗아버렸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자식들의 두각을 나타내기를 원하는 미국의 중산층, 중상위층 부모들은 특히 어린이들의 과도한 숙제에 짜증내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교사는 산더미 같은 숙제를 어린 학생들에게 안겨주면서 자신들의 학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고 믿고있다. 5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일리노이 주 초등학교 교사 지나 콘시딘은 “가족과 즐길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부모들조차 자식들의 성적이 혹시 나쁘게 나오면 화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밤에 두시간은 숙제를 하는데 보내는 4학년 어린이의 아빠이자 페퍼다인 대학 학장이기도 한 데이비드 데이븐포트는 “자식이나 학생을 우수대학에 진학시키려는 압박감이 고등학교 뿐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과도한 숙제를 부과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시간중 무엇을 가르치는 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들에게 숙제는 직접적으로 부모가 자식의 가능성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숙제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마음이 약한 부모들에게 그 부작용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숙제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숙제가 해결되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수잔 설로먼씨. 그녀는 지난해 자신이 아들의 언어학 리포트를 대신 써주었다. 좋은 고등학교 진학에 도움을 줄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나중에 엄마가 쓴 리포트를 대신 베껴쓰는 일만 했다. 설로먼은 “우리 애는 어떻게 숙제를 하는것인지 잘 알고 있어요. 단지 시간이 없을 뿐이죠.”부모들이 자녀의 숙제를 도와주는 이유는 물론 교사로부터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런 숙제가 과연 효과적일까.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 조교수 줄리안 베트는 지난 5년동안 6,000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숙제 습관에 대해 조사했다. 결과 그는 7학년때 다른 학생보다 30분 더 수학 숙제에 투자했던 학생들은 실력이 11학년 학생의 실력과 맞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베트는 숙제가 학급의 크기나 교사의 질보다 훨씬 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연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학생들에 제한돼있어 실제 이보다 어린 국민학생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지는 미지수다. 89년 미주리대 심리학교수 해리스 쿠퍼는 숙제에 대한 100건이 넘는 연구결과들을 검토한 후 숙제로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저학년 어린이들에겐 숙제로 건질 수 있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양의 숙제는 아무런 소득을 거둘 수 없다. 오히려 아이들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해가 될 수 있다”

시카고 근처 레이크대학 교육학 캐롤 헌칭거교수는 중국계 미국 어린이와 유럽계 미국 어린이의 학문적 성취도를 비교했다. 이 결과 저학년의 경우, 중국계 어린이들은 수학이나 어휘 완성도에서 같은 학년 백인 어린이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났다. 이외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을 조사한 후 헌칭거 교수는 숙제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모들로부터 밤에 20분 이상 수학숙제를 풀도록 강요받는 1학년 중국계 미국 어린이들에 비해 같은 또래 백인 어린이들은 평균 5분 정도밖에 수학 문제 푸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몇 케이스만 조사한 헌칭거의 연구 결과를 일반화 하기는 물론 무리가 있을 것이다. 또 전문가들은 수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많은 양의 숙제는 학생들의 자존심이나 배움에 대한 열정을 손상시킬 것이라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적정량의 숙제는 학생이 어느 학년에 속하건 확실히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숙제의 장점은 학교에서 받고 있는 수업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숙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관리해야 하며 배움에 대한 능력을 자발적으로 어떻게 개발해 나가고, 기술을 연마해 나가야 할지 터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숙제는 어느 정도가 적정량일까. 쿠퍼박사는 1학년에 10~20분으로 시작, 매 학년마다 10분씩 늘려가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나 숙제에 할애하는 시간의 적정선을 정하기란 사실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포트랜드 학교 교장이자 과거 1학년을 맡았던 교사이기도 한 미쉐랑 오트오프는 “연습장에서 몇 문제를 골라 숙제를 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 제안한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비실제적인 숙제를 강요하고 이로인해 학생들은 좌절하고 부모들이 숙제에 개입하도록 만들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최선의 숙제는 문제를 푸는 훈련을 강화하면서, 교실에서 자신들이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도록 하거나 축구 규칙을 통해 통계의 기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방법이다.

교육전문가들은 또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숙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훨씬 효과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 물론 많은 이들은 부모가 자녀의 숙제를 대신하는 사실엔 난색을 표명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자녀 숙제에 관심을 갖고 모니터하는 것, 즉 자녀들이 도움을 청할 때 답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5~6학년 어린이들의 언어학 강의를 맡고있는 교사 게일 블록는 숙제가 학교에서 시간상 제한받을 수 밖에 없는 강의내용을 보충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게일 블록은 앞에서 소개한 몰리 베네딕트를 지도하고 있는 교사다. 그는 몰리가 매일밤 숙제하는데 3시간 가까운 시간을 쓴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때때로 교사들은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자신이 내 준 숙제를 완성할 수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 어린이들은 지구 반대편 즉 중국이나 일본 어린이들에 비하면 훨씬 적은 시간을 공부하고 상대적으로 많이 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숙제에 투자한다. 대만의 1학년 어린이가 숙제에 쓰는 시간은 미국 미네아폴리스의 같은 학년 어린이가 이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거의 7배가 넘는다. 물론 그들의 지식이나 실력이 월등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그러나 미국의 학부모들이 숙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문제는 숙제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니라 숙제의 내용에 대해서다.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얼마나 많은 양의 숙제를, 어떤 목적에서 아이들에게 내줄 것인지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는 학교는 미국 전체 학교 중 3분의 1도 안된다. 숙제에 대한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 학교라 할지라도 위생법칙과도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일리노이주 힌스데일 학교의 경우 어떤 부모는 숙제가 너무 많다고, 또 어떤 부모는 적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 실정이다. 모든 학년마다, 나이에 맞는 의미있는 숙제 가이드라인이 요구되는 것이다. 국가적 기준을 만드는데 따른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이드 라인이 마련된다면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숙제를 낼때 좀더 신중해질 수 있을 것이며 부모 역시 자녀들의 숙제가 과도하건, 아니면 너무 미약하건 이에대해 고뇌하는 시간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숙제가 가져다 주는 것

많은 숙제가 성공적인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당하게, 현명한 형태로 주어진 숙제는 성공적이고 공부 잘하는 어린이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제니 벰페쳇 교수는 꾸준히 숙제를 해 나가간다면 아이들은 인내과 근면, 또 희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몰리처럼 숙제에 잘 적응해 나가는 어린이들은 숙제를 통해 이 세상이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랴?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숙제에 지금보다 약간 덜 관심을 보인다면 아이들이 아이들다울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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