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어협] 속타는 어민들 "살길이 막막하네요"

02/04(목) 18:18

“어업협정이 발효되어도 앞으로 3년간은 기존 조업을 인정해준다는 해양수산부 발표만 믿고 기다리다 이꼴이 됐습니다. 이렇게 일본 의도대로 끌려다니다 어민들만 밥숟가락을 놓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일어업협정 이행을 위한 양국간 실무협상이 결렬돼 일본이 22일부터 배타적 경제수역(EEZ)내 조업을 금지시키자 그동안 이곳을 생계 터전으로 삼아온 동해와 남해안 일대 수산업계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우리 어민들이 일본 근해에서 잡는 어획량은 연간 20여만톤(1,400억원)으로 일본 보다 배정도나 많아 사태가 장기화 할수록 우리의 피해가 훨씬 커진다.

그동안 우리측은 일본 관할수역에서 대형선망(고등어·꽁치), 북해도 트롤(명태), 저자망(게), 통발(장어류)등 10개 업종에 걸쳐 1,600척이 조업해 왔으나 22일부터는 동해안과 제주도 일대로 모두 빠져 나왔다.

일부 저자망과 통발어선들은 마땅한 어장을 찾지 못해 조업을 포기하고 아예 귀항해 버렸다.

◆저자망·통발조업, 어장상실로 200억원 손실

한일어업협정이 본격 이행되면 EEZ내에서 명태는 2년, 대게는 3년내에 어획이 완전 중단되고 나머지 어종도 향후 3년간 양측 어획량에 균형을 맞추도록 이미 합의해 어차피 엄청난 어민피해가 예정돼 있는데 이번에 돌연 어장 자체가 폐쇄돼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이번 협상결렬의 원인이 된 저자망·통발조업의 경우 현재 분위기로는 향후 서일본어장의 완전상실이 예상돼 연간 200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저자망수협 관계자는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서일본 오키군도 일대가 대게 골벵이의 성어기인데 조업중단으로 1항차(1주일 소요)당 약 2,500만원의 피해를 보게 됐다”며 “해양부에 피해보상 시위도 불사하겠다”고 분개했다.

부산시수협 임상봉조합장은 “최근 성어기를 맞이한 오징어채낚기조업의 경우 종전 하루 1,200~3,600톤가량 어획하던 것이 어장폐쇄 이후에는 1,000톤에도 못미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대형선망수협 천금석조합장은 “매년 1~4월까지 약 8만7,000톤을 어획하던 일본 대마도어장이 상실돼 연간 전체 어획고의 10%인 150억여원이 감소하게 돼 심각한 경영난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이수인조합장은 “쌍끌이업종(그물을 2척이 함께 끄는 어법)은 어장의 60%, 외끌이 및 트롤어업은 30% 정도가 사라져 사실상 조업할 해역을 찾기도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충격속에 국내 위판시장에서는 일부 어종의 어가가 하루 하루 떨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6일 국내 최대 규모인 부산공동어시장의 고등어 위판실적은 4만4,000상자로 전날 10만상자의 절반에도 못미쳤으나 가격은 전날 상자당 1만4,635원 보다 무려 4,000원이 급락한 1만657원에 위판됐다.

또 다음날인 27일에는 상자당 7,000원대로까지 추락했다.

26, 27일 어시장에 나온 고등어는 이른바 갈고등어로 불리는 새끼였던 반면 25일 나온 물량은 중치이상의 상품성이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연근해 어종고갈현상, 일본수역은 ‘황금어장’

우리 어선들이 일본수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 근해어장에서 빽빽히 몰려 고기를 잡다보니 씨알이 작은 것도 마다않고 우선 건지고 본 것이다.

근년들어 우리 연근해에서 잡히는 어종들은 중치이하가 주류인 반면 일본연안 쪽으로 갈수록 씨알이 굵어진다는 것이 어로현장의 정설이다.

우리 어민들이 일본 연근해를 황금어장으로 꼽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일본이 그 만큼 어장을 잘 보호하고 남획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한일어업협정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로 우리 어민들의 반발 못지 않게 일본측 어민들의 반발도 상당했던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엔해양법을 기초로 양국이 체결한 새 한일어업협정의 기조는 해양생물자원의 합리적인 보존과 관리 및 최적 이용이다.

선점식, 약탈식 어획시대의 종말을 고하려는 협정이다.

해양생물자원의 과도한 개발과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물론 중간수역에서도 어업종류에 따라 조업척수, 조업시기·기간 등을 제한하는 엄격한 자원관리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이다.

22일 양국간 세부이행사항 협상이 결렬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원관리와 어획방법을 둘러싼 의견차 때문이었다.

일본은 이미 십수년전부터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양식) 어업’으로 수산정책을 전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마쳐 당장 어획량의 적정관리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최근 우리나라 연근해의 어장환경을 분석한 결과 어선세력이 업종별로 22%에서 최고 47%까지 과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얘기인데 이는 곧 어장고갈과 남획의 원인이었다.

따라서 어선 수와 어획량을 줄여 어장을 보호하고 부족 수산물에 대해서는 수입을 확대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정부가 최근 ▲어선 감척사업 조기 추진 ▲신규어장 개척 ▲영어자금 지원 확대 등을 골자로한 ‘어업진흥 발전계획’을 수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배타적 경제수역내 조업, 우리피해가 더 커

그러나 저자망·통발조업의 금지여부 문제로 촉발된 일본측의 EEZ내 조업금지 조치는 그렇게 장기화하지는 않을성 싶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어민들의 조업도 제한돼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피해도 커질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수산업계는 조만간 본격화할 한일어업협정 이행시대를 더 걱정하고 있다.

실무협상이 타결되면 EEZ내에서는 종전 전혀 겪지 못한 새로운 환경의 조업을 해야 한다.

이미 합의된 시행지침을 보면 우리 어선이 일본 EEZ에 입어하려면 해양부등 5단계를 거쳐 24시간전에 일본 수산청에 신고해야 하고 일본측에 조업개시 및 종료시의 위도와 경도, 어구의 투망·양망시간 등은 물론 배의 점·소등시간까지 보고해야 하는등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물론 이같은 지침은 양측 공히 적용되나 그동안 우리 어선의 일본 수역 어획량이 월등히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피해가 훨씬 클 수 밖에 없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전혀 안된 우리 어민들로서는 이래 저래 고민이 쌓여 갈수 밖에 없다.

한일어업협정 자체가 ‘준비된 자(일본)’와 ‘준비 안된 자(한국)’간의 협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대형기선저인망의 한 간부는 “한일어업협정과 관련, 일본의 경우 어민들을 상대로 이미 상당 수준의 직·간접적 피해보상을 완료했으나 우리는 감척보상과 영어자금 확충 등을 이제야 계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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