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실] 경기, 봄날은 아직 멀다

02/02(화) 17:39

요즈음 우리 경제는 언제 위기를 겪었었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들뜨고 있다. 불과 1년전 IMF 체제가 시작될 때만해도 우리 경제는 모든 면에서 철저히 침체된 상태였다. 원화가치는 폭락하고 물가는 급등했으며 금융권에 돈이 있어도 기업과 가계는 돈가뭄에 시달리는 이른바 신용경색이 발생했다. 기업 도산은 급증하고 실업자는 단숨에 150만명을 넘어섰다. 사실상 경제 전체가 붕괴 과정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위기의 원인이 우리 경제의 구조 자체에 있었다는 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함을 의미했다.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구조조정이란 5년 이상의 시일이 소요되는 길고 긴 고통을 수반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구조조정은 아직도 언제 끝날지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것일까? IMF체제가 시작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고통의 끝이 의외로 빨리 다가오는 듯 했다. 주식가격은 98년10월 300포인트대에서 급등하기 시작했으며 99년 1월에 들어서면서 600포인트를 넘기도 하였다. 원화가치가 강세도 보였다. 98년 상반기 달러 당 1,300원대였던 원화 환율은 1,100원대로 하락했다.

여기에 더하여 사상 최초로 한자리수 금리 시대가 시작됐다. 금리의 하락은 채권가격의 상승을 의미한다. 주가, 원화, 채권 가격이 상승하는 이른바 트리플 강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실물지표 상승, 기본여건은 아직도 불안

경제 회복의 기운은 실물 경제에서도 나타났다. 산업 생산, 도소매 판매, 국내 기계 수주 등 실물 경제 활동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들의 하락세는 크게 둔화되거나 상승세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실물 지표들의 회복세에 힘입어 현재의 경기 상태를 반영하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년 8월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매우 희망적인 소식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금융 시장의 호전이 실물 경제 활동을 지속적으로 뒷받침 할 경우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금리 하락과 주가 상승은 기업과 가계의 금융 비용을 경감시키고 자금 조달 여건을 개선시켜 내수 경기를 부양하게 된다. 환율 하락은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하락시키는 측면이 있으나 해외 자본 유입 증대와 외채 부담 경감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심각하게 침체되어 있던 내수 시장 회복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 경제의 기본 여건이 아직 이러한 회복세를 뒷받침할 만큼 든든하지 못한 것이다.

첫째, 우리 기업들은 현재 구조조정 중이다. 금리가 내려 금융 비용이 감소한다는 이유만으로 투자를 확대할 상황이 아니다. 특히 5대 재벌의 경우에는 상호 지급 보증 해소, 부채비율 200%로 축소, 여신 규제 등에 묶여 투자를 확대할 여유가 없다. 정부는 중견 및 중소기업 투자 확대를 기대하고 있으나 이들 역시 구조조정 중인데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업종 상호 연계성이 높아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속되는 구조조정, 고용불안 가중

둘째, 고용 불안과 임금 감소 속에서 소비 증대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가계 소득의 약 85%는 임금에 의해서 충당되어진다. 이는 소비의 증대를 위해서 임금상승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99년에도 임금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속되는 구조조정으로 고용 불안은 가중되어 갈 것이다. 주가 상승이나 금리 하락이 소비를 부추기는 정도는 미미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고소득층의 경우에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소득 감소가 적었던 만큼 경기 회복세에 따라 소비를 확대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최근의 소비 증가가 고급품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반면, 대다수 중산층 및 하류층의 소비 여건은 별다른 개선이 없을 것이며 따라서 전체 소비의 본격적인 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금융 시장의 여건 또한 안정적이지 못하다. 갑작스런 트리플 강세는 사실 98년 4/4분기 중 호재가 집중된 데 따른 것이다. 갑작스런 엔화 강세, 1차 금융구조조정의 마무리, 국가 신용등급의 상향 등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금융시장의 심리를 크게 부추겼다. 여기에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의 지속과 정부의 강력한 금리 인하 의지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많은 불안정 요인을 발견할 수 있다. 금리하락은 여신 규제와 같은 인위적 시장 개입에 영향을 받은 바 크며, 원화 강세는 사실 대규모 경상 수지 흑자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엔화 강세에 따른 것이다. 남미, 러시아 등의 외환 위기 상황은 언제 어떠한 형태로 발전할지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금융시장의 안정이 흔들리면 신용 경색이 재발하고 경기 침체의 골은 다시 깊어질 것이다.

◆빠른 경기회복세, 침체가능성도 높아

경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우리 경제의 회복 속도는 완만하게 나타나는 것이 정상적이다. 따라서,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경기 회복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는 인상을 준다. 과거의 경기 순환을 통해서 볼 때 1,2차 오일 쇼크와 같은 경제 위기 이후에는 경기가 1년여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하락하는 특징을 보였다. 인위적인 부양에 힘입어 경기가 근본 여건 이상으로 회복되었다가 탄력을 잃고 다시 하락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정부 주도의 과도한 경기 부양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회복 심리가 지나치게 팽배할 경우 경기 회복세가 단기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뒤에 다시 침체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경제의 진정한 회복은 구조조정의 성패 여부에 달려있다. 구조적인 경쟁력 회복에 의하지않은 어떠한 경기회복도 거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구조조정은 이제 겨우 외형적인 기준을 맞추는데 급급하고 있다. 이제 낯익은 말이 되어버린 BIS 기준 자본 비율도 대표적인 외형적 기준이다. 과연 국민들의 의식,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의사결정 관행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그리고 구조조정을 솔선수범해야 할 공공부문은 과연 얼마나 변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짧은 시간동안 우리 경제가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고 그 결과로 우리 경제의 여건이 회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몇 몇의 긍정적인 현상에 자족하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보다 냉정한 시각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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