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억... 초고액 연봉시대

02/10(수) 19:26

지난 2월4일자 일간 신문을 펼쳐든 사람들의 눈길은 단연 ‘36억원’이라는 숫자에 머물렀다. 나이 채 마흔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남들은 평생 걸려도 벌기 힘든 이 돈을 1년에 받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연봉 36억원이면 하루 8시간·월25일 근무로 계산할 때 일당 1,200만원, 시간당 15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

서울증권 사장으로 취임하는 강찬수(39·미국명 토마스 강)씨. 지난주말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입국한 그는 국내 언론에 자신의 연봉 액수가 소개된데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협상이 끝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36억원이라는 액수도 결정된 적이 없다는 게 강찬수씨와 그를 서울 증권 사장으로 발탁한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측의 입장이다. 연봉은 수억원 수준에서 결정되고 스톡옵션 등 추가 보상을 통해 전체적인 보수가 결정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어떤 형식이 됐든 강사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봉급을 받는 샐러리맨이 될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정인직 서울증권사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강사장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게 될 것이며 회사측으로선 그만한 돈을 내놓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씨는 몸뚱아리 하나만 믿고 미국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전형적인‘아메리칸 드림’형은 아니다. 그보다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최고학부와 최고직장을 거친 전형적인 ‘이민 엘리트’세대라고 할 수 있다.

대구에서 살던 강씨 가족은 피아노를 전공한 강씨의 형이 뉴욕 줄리아드 음악학교로 유학을 떠난 것을 계기로 미국이민을 떠났다. 강씨의 부모는 고국에서 다진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식품점을 운영하면서 4남매를 모두 하버드 예일 등 명문대 졸업생으로 키웠다. 강씨 역시 부모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하버드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제임스 울픈슨 세계은행(IBRD)총재,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전의장 등 거물들이 경영을 맡았던 인수합병(M&A)전문 금융기관 BT울픈슨에 입사하면서 강사장은 월가에 입문했다. 86∼87년 한국개발연구원(KDI)객원연구원으로 일한 기간을 빼곤 줄곧 BT울픈슨에서 일하며 금융전문가로 성장했다. 강씨가 ‘금의환향’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찾아왔다. 경영난에 직면한 쌍용증권이 해외인수자를 찾으면서 조지 소로스와 김석동 쌍용증권 회장간에 다리 역할을 해준 것. 연배가 비슷한 김회장과는 미국에서 알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쌍용증권 인수가 무산되고 대신 서울증권을 인수한 소로스회장은 강씨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자신을 대변할 사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제2, 제3의 ‘강찬수’가 줄줄이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준호대우증권 국제영업팀장의 말. “이제 시작이다. 국가간 자본흐름을 가로막는 벽이 허물어지면서 국제 금융전문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당장 외국 금융기관과 겨룰만한 전문가를 찾기가 힘들다. 국내 대학을 마치고 외국유학을 통해 MBA를 따온 친구들로도 부족하다. 일찌기 이민을 떠나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대학 졸업후 곧바로 월가에서 성장한 ‘코메리칸’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 것이다” 이들은 월가보다 나은 대가를 받게 될 것이고 결국 금융권 경영인의 몸값이 한 단계 비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까지 최고 연봉 기록 보유자는 윤윤수 휠라코리아 사장이었다. 윤사장은 지난해초 18억원의 연봉을 받게 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윤사장에는 못미치지만 1억원을 넘는 연봉을 받는 샐러리맨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지 않다. 특히 일찌감치 구조조정이 실시됐고 업종 성격상 성과급제도의 정착이 쉬운 증권업계에서 초고액 연봉자들이 속출했다. 외국인이긴 하지만 스티브 마빈 자딘플레밍 증권이사는 10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뮤추얼펀드열풍을 일으킨 미래 에셋 자산운용의 경우 기존 투신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을 스카우트하면서 성과급과 별개로 1억5,000만∼2억원씩의 연봉을 제공했다. 대신증권 목포지점의 장기철차장은 연봉은 아니지만 40억원대의 성과급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IMF시대에 이처럼 초고액 연봉이 등장한 것은 경제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능력한 사람은 ‘퇴출’시키고, 회사에 돈을 잘 벌어다주는 직원은 아무리 많이 줘도 아깝지 않다는 사고를 거부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초고액연봉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한 금융기관 직원은 “그 돈이면 수십명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을 텐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윤윤수 휠라코리아사장은 연봉이 알려진 뒤 스토킹단계에 이를 정도의 시달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맞춰 지난해 국내 제조업체 근로자들의 월급여(상여금제외)가 사상 처음으로 전년대비 1.9% 깎였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연봉삭감이 상여금을 중심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일반 봉급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할 수밖에 없다.

싫든 좋든 또 대책이 있건 없건, 쪼그러드는 월급봉투라도 매달 받는데 감사해야 하는 월급쟁이들이 초고액연봉의 ‘스타’들과 더불어 ‘비교 체험, 극과 극’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준형·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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