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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풀피리 소리엔 민초들의 한이 담겨있어요"

50년전에는 한 나무꾼의 아들이었고 30년전에는 목수였다가 4년전부터는 국내 유일의 풀피리 연주자로 이름을 바꿨다. 초금 연주의 명인 박찬범(51).

풀피리에 관한 한 그는 예의상으로라도 겸손할 줄을 모른다. 뒤늦게나마 국악인으로 우뚝 선 자신이 아주 자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다. ‘자화자찬같지만….’으로 시작되는 어김없는 자화자찬은 그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

“자화자찬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정통으로 초금 연주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습니다. 내 연주를 한 번 들어보세요. 나같이 음계가 정확한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청하기도 전에 바로 아리랑 한 소절 연주) 음계면 음계, 떨림이면 떨림 안되는게 없다니까요. 남이 알아주든 말든, 나는 내가 우리 풀피리 음악을 제대로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삽니다.”

그의 콧대가 나날이 높아가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는 얼마전부터 뻔질나게 방송도 타고, 큼직한 국악행사가 열릴때마다 빠짐없이 초청되는 단골 손님이다.

97년 10월엔 ‘세계피리축제’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98년 9월에는 ‘국내 사상 최초의 풀피리 연주회’라는 타이틀로 서울 정동극장에서 정식 공연도 가졌다. 가장 최근에는 바로 1월29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청소년을 위한 국악공연’에서 중앙국악관현악단 70여명과 협연을 한 화려한 이력도 있다.

또 교수들이나 서는 대학강단에도 한 때 서봤고, 벌써 7개월째 자신의 이름을 건 풀피리 강좌도 열고 있다. 그를 스승님으로 떠받드는 제자들만도 내외국인을 통틀어 2,000여명. 한편에선 ‘그를 풀피리 인간문화재로 만들어야 마땅하다’며 가뜩이나 겸손치 않은 그를 더 의기양양하게 만드는 국악인들도 여럿된다.

◆풀피리 연주는 ‘뼈대 있는’ 궁중음악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그가 들려주는 풀피리 연주는 ‘뼈대 있는’ 궁중음악이다. 족보도 있다. 조선조 악학궤범에 조선시대 궁중음악으로 반듯이 이름이 올라있다. 일제시대까지도 인기가 있었는지 당시 강춘섭이라는 명인의 이름도 남아있고, 그가 만든 4분짜리 음반도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다. 적어도 1995년 박찬범이라는 사람이 어느 술집에서 우연찮게 풀피리 솜씨를 자랑하다가 한 방송기자의 눈에 띄기 전까지는.

그리보면 자랑할 게 있으면 도무지 가만있지 못하는 그 성미 때문에 그는 결국 세상에 알려진 셈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손님 자격으로 무대에 나가 장기자랑을 하다가 결국 예의 기자의 눈에 띄어 방송가까지 불려가게 됐고, 이후 국악계에 서서히 알려지게 된 것.

당장 부를 수 있는 곡만도 수백곡에 이른다. 전통 국악은 물론, 그의 말로는 재즈나 가요까지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요즘은 정통 초금 연주자로서의 위신도 있고해서 ‘자중’하고 있을 따름이다.

주가가 올라서 이제는 ‘공연료’나 ‘출연료’란 것도 받는 몸이지만, 여전히 맘만 내키면 밥상의 상추잎을 들고도 피리를 부는 기분파다.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몇시간이고 혼자 얘기하고 혼자 연주도 하는 그에겐 그래서 가장 요긴한 것이 나뭇잎. 그의 집 거실 한편엔 이런 ‘초금악기’들로 빼곡하다.필요할 때마다 손 가는대로 한 잎씩 따서 쓸 양으로 그가 키운 것들이다.

◆동백잎이 소리엔 최고, 귤·유자나무 이파리도 그만

소리가 잘 나기론 동백잎이나 귤, 유자나무 이파리를 따를 게 없지만, 재료가 좋다고 해서 누구나 만만하게 불 수 있는 풀피리가 아니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대금같은 악기야 소리 구멍이 따로 있어서 정해진대로 조절하면 되지만, 나뭇잎은 아무 것도 없다. 믿을거라곤 본인의 입 뿐이다. 윗 입술과 아랫 입술을 얼마나 이파리에 붙일 것이며 호흡은 어느 정도로 깊고 얕게 조절할 것인지 오로지 경험과 육감으로 짚어서 부는게 유일한 요령이다.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만한 경험과 육감을 쌓자면 입술이 수백번은 터져야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도 어려서부터 한시도 입술이 성치 않은 아이었다. 잠시 아물었다가 다시 터지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 드디어 단단한 살이 잡히고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을 때가 되면 그때가 비로소 ‘득음’한 때라고 보면 대충 맞다. 다른 음악도 마찬가지지만 초금 분야 역시 시간과 인내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요즘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가장 아쉽고 답답한 점도 바로 이것이다.

“도무지 끈기가 없어요. 끈기가. 이게 하루 아침에 되는게 아니거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최소한 6년은 해야 기본은 불 수 있는 거지요. 처음엔 너도 나도 배우겠다고 몰려왔다가 처음 몇번만 다녀보면 다들 달아나부러. 입술에 피가 나니까 잔뜩 놀래가지고 그만두는거지요. 얼마전 중앙대 음대생들에게 특강도 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예요. 나이가 어리든 많든 쉽게 포기하는 건 비슷하지요. 가르쳐주려고 해도 아직 좋은 재목이 없으니 걱정입니다.”

◆할아버지때 부터 대이은 풀피리의 명인

요즘은 여늬 석,박사가 안 부러운 그라도 실제로 내세울 학력이라곤 달랑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다. 초등학교를 마친 것도 어머니 성화가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지 모른다. 가라는 학교는 가지 않고 여덟살 때부터 나무꾼인 아버지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아버지 박폰성씨는 할아버지인 박한태씨의 대를 이어 당시 풀피리의 명인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신 아들이 풀피리를 배우는게 그리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걸 배워봐야 나처럼 상놈 소리만 듣고 멸시만 받으니 너는 절대 배우지 말라’며 곁에선 흉내도 못내게 했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어린 아들 다리에 매를 대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아들 고집에 져서 정식으로 자신의 연주법을 물려줬다고.

목수이던 시절엔 고생도 숱하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고향인 전남 영암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힘겨운 목수일을 시작했다. 생활고는 말할것도 없고, 스물일곱살 되던 해엔 문짝을 짜다가 왼손 집게손가락 한마디를 기계에 잘리는 사고도 당했다. 연탄가스 사고로 죽을 뻔 한 경험도 여러번.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던 해엔 연탄 살 돈이 없어 한겨울 냉방에서 자다가 다음날 일어나보니 밤새 떠다 둔 물그릇이 통째로 얼어버린 것을 보고 몹시 참담했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그 와중에도 풀피리를 놓지는 않았다. 공사장에서도 틈만 나면 막간을 이용해 풀피리로 온갖 민요며 가요 등을 불러서 동료들의 땀을 식혀주었다. 가족들 밥벌이도 신통찮은 판에 걸핏하면 동료들 위로한답시고 비번날에도 술이며 안주를 챙겨 ‘위문공연차’ 나서다가 아내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은 날도 한두번이 아니다.

갖은 고생 끝에 15년전엔 직접 독립해 조그만 건축사업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돈도 제법 벌었다. IMF 때문에 하던 사업도 중단하고 풀피리 연주회다 뭐다해서 온통 돈 쓸일만 있는 요즘도 “먹고 살만큼은 있으니 풀피리로 돈 벌 생각은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것도 다 그 덕분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계기로 방송에 출연하게 됐고, 그후 국립국악원과 인연이 맺어져 갖가지 행사와 공연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 혹은 그쯤만해서 가만 내버려뒀어도 그는 그저 방송이나 연주회에나 이따금씩 나오는 ‘취미가 별난 사람’ 정도로만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4년전 민족사관학교 전임강사인 김기종씨가 찾아왔다. ‘알고보니 역사책에도 나와있는 귀한 음악’이라며 악학궤범을 보여준 것도 김씨였다. 그때부터 직접 고서도 뒤지고 제자를 키울 궁리도 하면서 본격적인 초금 연주자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풀피리 보급시키고 싶어”

얼마전엔 기존 곡을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성에 안 차 직접 작곡도 했다. ‘청산유곡’‘강산풍월’등 모두 4곡으로 저작권협회에 국악작가로 어엿이 등록했다. 그중 ‘시나위’는 정말 애간장을 녹인다며 또 동백 이파리를 문다.

얼핏 들으면 대금 소리 비슷한 듯도 한 무반주 풀피리 하나로 사람 마음을 마음대로 죄었다 풀었다 한다. 조금만 황홀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더 흐뭇해 가만있지 못한다. 하던 이야기도 접고 생각나는 곡들을 총동원해 연이어 불러댄다. 시간만 있다면 종일이라도 그렇게 손님을 붙잡아두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를 여유있게 만날 수 있는 것도 2월까지다. 3월이면 대학 강의도 다시 맡을 듯 하고, 자신이나 국악계의 기대처럼 정식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것인가 여부를 두고 난생 처음 문화재관리국의 ‘자격 심사’도 받게 된다.

워낙 많은 수강생들이 잡아뜯은 탓에 거의 ‘사망 직전’이 된 남산골 한옥마을 7만원짜리 유자나무도 조만간 새로 사다놔야하고, 자신이 사는 동네 연세 든 어르신들도 틈틈이 찾아 뵙고 ‘정기 공연’을 해야한다. ‘오라는 데는 억수로 많아도 가고 싶은 데는 공연무대나 구청회관뿐’이라는 그는 ‘내가 내 가치 안 알아주면 누가 알아주냐’며 비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이걸 어떻게 버리겠어요. 내 생명 다 하도록 나는 풀피리를 지킬거고, 사는 동안 이 일을 잘 해서 어린애들부터 어른들까지 온 국민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풀피리 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열심히 보급시키고 싶어요. 될란가 안될란가 몰라도 내 소원은 그것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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