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소탈하고 애잔한 '우리의 소리'

서양음악이 과학적이면 우리 음악은 자연적이다. 그 대표적인 것중 하나가 풀피리 음악이다. 우리 땅 어디나 풀과 나무가 우거진 곳이면 풀피리 소리가 들려왔고, 모진 배고픔속에서도 나뭇잎 한 잎 뜯어 풀피리를 불 줄 아는 여유있는 민족성이 우리의 초금연주를 탄생시켰다. 한때 일제 강점기에 강춘섭이라는 명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나, 이후 거의 명맥이 끊겼다가 최근 박찬범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다.

초적 또는 초금이라고도 불리는 풀피리는 이 땅에 자연이 생긴 것과 그 역사를 같이 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 문헌상으로는 성종 24년(1493)부터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성현이 중심이 되어 만든 궁중음악서 악학궤범에 7종의 향악기와 함께 풀피리 재료와 연주법이 상세히 실려있다. 초금에 대한 해설은 물론, 연주에 쓰이는 재료의 그림도 자세히 나와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궁중음악 악사 명단에 초금 연주가의 이름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초금이 궁중음악의 하나로 총애를 받았다는 증거. 또 서거정(1420-1488)의 필원잡기에는 지중추인 융일동이 거나하게 취하면 피리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비장하다고 서술돼 있다. 두 문헌에서 琴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여 초적이니 초금이니 하는 말로 표현한 것은 당대의 고유한 향악기이자 음악으로 당당히 인정받았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자연소재를 이용했다는 특색으로 더욱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초금 보존의 걸림돌이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점은 또 한편의 아이러니. 전통국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 대금, 피리 등과는 달리 풀피리는 겨울에는 그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연주가 뜸했다. 따라서 봄, 여름으로만 잠시 성행하다보니 초금연주자도 늘지 않고, 급기야 명맥이 끊어질 위기까지 간 것이다.

풀피리 소리는 민초들의 삶과 한이 녹아있는 소리다. 화려한 치장도 없고 풀피리 특유의 소탈한 맛이 듣는 이의 마음에 애잔한 느낌를 더해준다. 남도씻김굿, 남도 다스레기 등과 잘 어울리며, 특히 시나위 음악과 궁합이 잘 맞는다.

뜻만 있으면 직접 배워볼 수도 있다. 초금연주자 박찬범은 매 일요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직접 풀피리를 가르친다. 장소는 남산골 한옥마을, 무료다. 누구든 참가 가능하며 특히 끈기있는 사람, 장기전에 강한 사람은 도전해 볼 만.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4월 제2822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2020년 03월 제2820호
    • 2020년 03월 제2819호
    • 2020년 03월 제2817호
    • 2020년 02월 제2816호
    • 2020년 02월 제2815호
    • 2020년 02월 제2814호
    • 2020년 02월 제2813호
    • 2020년 01월 제2812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