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맞은 올 대학가의 ‘취업전쟁’ 은 치열하기 그지없다. 당사자인 대학생들은 물론 대학본부와 교수, 동문까지 총동원돼 한 사람이라도 더 취업의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구직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숙연하다 할 정도.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이라는 속담처럼 소수 학생들은 ‘취업대란’ 속에서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문’ 을 속속 뚫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학과별 특성을 살린 적극적인 구직활동과 이색 아이디어로 취업에 성공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야간). 35명의 미취업학생들이 함께 CD롬을 제작했다. 학생 개개인의 프로필과 실습장면, 교수추천서 등을 동영상으로 담은 이 CD롬을 학교측은 300여개 기업체에 배포, 8명이 취업하는 성과를 올렸다.

학과특성살린 구직과 이색 아이디어로 성공

건국대 부동산학과는 이색(?) 산학협동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닭갈비 체인사업체인 ‘춘천골 닭갈비’ 에서 부동산 컨설턴트로 근무중인 졸업생 장원석(28)씨가 후배들을 ‘입지 선정 도우미’ 로 선발, 체인점 개설에 적합한 입지선정 작업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로선 이론을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인턴’ 기회로 활용하고, 업체는 적은 비용으로 부동산 컨설턴트를 고용할 수 있어 누이좋고 매부좋은 방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대학생 벤처 사업에 도전,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한 학생들도 있다. 유동균(고려대 3년) 이우수( 〃3년) 염기원(〃1년)씨 등이 주인공. 이들 경영학과 학생 3명은 ‘신시야’ (新視野·SINSIYA)라는 이름의 할인카드 벤처기업을 5월 창업했다. 이들은 벌써 가맹점 120곳과 2,000명의 회원을 확보한 상태. 이들은 ‘고객 욕구 파악’ 이라는 경영학의 기초를 토대로 1,5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우선 설문조사를 실시, 가맹점을 확보했으며, 할인카드에 단순할인 기능뿐 아니라 서비스 개념을 포함시켜 불과 2주만에 2,000명이 가입하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가입비 수익만으로 무려 1,000만원을 챙겼다.

서윤득(32·KAIST 전자공학과 박사과정) 한국 대학생 벤처창업연구회 회장은 “대학생 벤처의 가장 큰 애로점은 뛰어난 아이템을 상품화할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며 “대학생들의 참신성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앤젤 캐피털’ (Angel Capital: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기업이나 자본)이 절실하다” 고 말했다.

여대생들 경찰·군인등 특수신분직에 몰려

IMF이후 직장에서 더욱 거세게 불고 있는 ‘남존여비’ (男尊女卑)속에 여대생들의 구직전쟁은 그야말로 눈물겨울 정도. 지난 6월 이화여대 등 5개대 여학생모임 대표 40여명은 ‘여대생 먹고살기 대책위원회’ 를 결성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선적인 정리해고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라” 고 주장했다.

여대생들이 새롭게 눈을 돌리고 있는 분야는 여경, 여군 등 특수신분직. 다소 거칠다는 이미지때문에 지금까지 외면돼 왔지만 여성들에게만 제공되는 독점적 기회라는 점이 새로운 매력으로 작용, 인기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6월 마감했던 여자 경찰관 채용시험 원서접수에선 125명 모집에 8,933명이 지원, 무려71.5대 1의 폭발적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많은 여성들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취업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 공무원으로서 누리는 확실한 신분보장과 다른 공무원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때문이다.

10월5일 여군학교입학설명회가 열린 숙명여대 행정관은 80여명의 여대생들이 몰려 30장에 불과한 원서가 금새 동이 났을 정도였다. 육군에 따르면 96년말 15대 1이던 여군경쟁률이 지난해 말에는 22.3대 1로 크게 높아졌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대 출신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 관계자는 계급사회인 군대가 일반사회보다 성차별이 적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매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취업전산망 구축사업으로 구인·구직 연결

기업들의 채용방식이 ‘그물식’ 에서 ‘낚시식’ 으로 바뀌면서 기업과 학생, 학교를 하나의 사이버 공간으로 묶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취업 전산망 구축사업’ 도 사립대학에서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한양대는 10월말 ‘취업 종합전산망’ 을 개설했다. 두달 간의 준비 작업 끝에 선보인 취업종합전산망은 인터넷으로 동문들이 운영하는 3,000여개 중소기업과 3만여명의 졸업·재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구인·구직해결사’. 학생들이 취업 또는 부업 희망카드를 인터넷 상에 작성, 신청하면 기업들은 이를 직접 검색, 채용하게 된다.

건국대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동문기업들과 학생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식의 취업전산망을 준비중이며 경희대와 아주대는 전산망 구축을 이미 끝낸 상태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기업과 학생 간의 쌍방향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바야흐로 졸업생은 검색어만 컴퓨터 상에서 클릭하면 자신의 조건에 맞는 다양한 구직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기업들은 단 한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데이터베이스에서 수만명 학생들의 이력서와 성적을 검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졸업생을 인턴사원으로 채용할 경우 몇달치 임금까지 대신 주겠다는 대학이 나올만큼 모든 대학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지만 ‘취업난 무풍지대’ 를 자랑하는 곳도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단국대 전산통계학과. 올해초 졸업한 44명중 42명이 취업에 성공했으며 내년 2월 졸업하는 50여명중 이미 7명이 삼성SDS에 취업이 확정됐으며 20여명 정도도 자신만 원한다면 언제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처지다. 이같은 실적은 타대학이 한학과에서 한명도 취업이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할때 놀라운 취업률이다.

인턴 사원으로라도 들어가지 못해 애를 태우는 학생들도 많은 요즘 단국대 전산통계학과 취업담당 유해영(47) 교수는 오히려 제자들에게 “조금 느긋하게 기다리라” 며 말리고 있다. “아직 대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끝내지 못해 구체적인 인력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어요. 좀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제자들에게 일단 기다리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유 교수가 이처럼 느긋할 수 있는 것은 13년동안 취업담당 교수로 일하면서 쌓아온 독특한 노하우 때문. 우선 그는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마당발’ 이다.

매년 각 기업체 관계자들에게 200여장이 넘는 연하장을 보내고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만나고 전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맺은 인연 덕분에 웬만한 명문대보다 훨씬 많은 추천장을 받아낸다. 또 온 정성을 기울여 작성하는 취업기록카드도 유 교수의 독특한 비법. 이를위해 취업을 원하는 학생과 학기초부터 10여차례 이상 꾸준하게 만나면서 학생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유 교수의 취업기록카드에는 취업대상 학생이 원하는 직업분야와 적성, 성격, 가족환경, 학점, 자격증 취득상황, 외국어실력, 특기 등 개개인의 신상명세가 꼼꼼하게 적혀있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단국대 전산통계학과는 IMF 한파 이전에는 매년 100% 가까운 취직률을 자랑해왔다. 96년 2월 졸업자 34명 전원이 삼성, LG 등 대기업에 취직했으며, 97년에도 40명중 39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유 교수가 꼽고 있는 가장 중요한 취업비결은 무엇보다 실력과 인성. “당장 인기 좋은 직장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실력을 냉철하게 따져 좀더 멀리 볼 수 있는 직장을 찾다보면 취업대란을 이겨낼 수 있을겁니다.”

박천호·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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