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해결에 '쏟아진' 아이디어

02/02(화) 17:58

“사실 우리들은 왕따 문제가 언론에서 보도하듯 그렇게 심각하다고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언론이 설문조사 결과를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흥미위주로 보도하기 때문에 현상을 부풀리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서울 청담고2년 신은서양)

“지난해말 초 중 고교생 4명중 한명꼴로 왕따 피해를 입었다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조사 결과가 발표돼 저희도 의아해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활하는 반에서는 심각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거든요. 청소년들이 주로 접하는 언론은 사실 신문기사보다는 TV의 쇼프로나 오락프로입니다. 사회에서 왕따나 학교의 폭력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이런 오락프로에서 이 문제를 흥미위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서울 대원외고 2년 하대국군)

“물론 언론의 흥미위주 보도는 지양해야지요.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은 전 지구보다고 소중하다’라는 말처럼 실제로 왕따 문제나 학교폭력, 성적비관, 입시지옥 때문에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있는데 어떻게 언론에서 안 다룰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현상이 엄연히 있는데 언론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시키지 않았다면 교사나 학부모들도 잘 몰랐을 것이고 교육부나 검찰 등 관계당국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론에서 문제로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떻게 많은 의견을 종합해 올바른 대책을 세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서울 언남고 2년 정은주양)

“있는 현상을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예방대책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재의 반장, 부반장외에 반원들의 투표로 미국의 보안관 같은 ‘왕따해결사’를 한명씩 뽑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해결사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과 부모님과 같이 상의해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 학부모의 권위에 의한 해결방식은 마지막에 하고 ‘또래집단’만이 아는 방법으로 해결하는게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서울 숙명여고 2년 김용경양)

◆10명의 고교생들 기탄없는 원탁 토론

지난 1월26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제5회 고교생 ‘교육개혁 논술토론광장’에 참여한 10명의 고교생들의 기탄없는 토론내용이다. 원탁토론 보급사로 자처하고 있는 역사문화아카데미(원장 강치원 강원대교수)가 주최해 지난해 12월5일 200여명의 논술을 심사해 80명을 선발한 뒤 2달 가까이 합숙과 토론을 주재해와 이날 최종 토론을 벌인 것이다.

1차 논문심사에서 통과한 전국의 80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지도교사와 함께 지난1월9일_10일 숭실대 사회봉사관에서 집단, 분반토론을 거쳐 현재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핵심을 학교의 권위상실로 보고 학생들이 직접 뽑은 ‘왕따, 체벌, 폭력’문제로 최종 토론의제를 확정했다.

지난해 교육개발원의 ‘왕따연구’를 진행, 발표했던 박경숙박사(52)는 이날 토론의 심사위원으로 나왔다. 박씨는 전체심사평을 통해 “일부 학생들은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곤 한다. 물론 잘난체하기, 선생님으로부터의 편애등 흔히 공주병적 왕따의 경우는 그 현상을 고칠 수가 있다. 그러나 말이 어눌하고 내성적이고 피해의식이 많은 열등적 왕따의 경우는 피해학생이 자기가 왜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기성찰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들에 대해서는 가해학생들이 놀리면서 우월감을 얻기보다는 공동체적 관심으로 어루만지고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우수한 토론자로 뽑힌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이들은 왕따나 학교폭력문제보다 교사의 체벌문제를 더욱 심각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10명중 7:3의 비율로 체벌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학생들 “왕따보다는 체벌이 더 심각”

체벌을 인정하는 3명도 상황론을 들었다. 50명 이상의 과밀학급에서 수업을 하려면 교사들에게 최소한의 처벌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을 안듣는 상습범들’때문에 공부를 하려는 다른 학생들도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체벌의 당위성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하대국군)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마지막 수단’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경북사대부고 2년 이종관군) 흔히‘사랑의 매’라고 하지만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수업시간중에 떠드는 학생들에게 가볍게 주의를 주다가 계속되면 감정이 증폭돼 손발과 매로 마구 때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이미 ‘사랑의 매’도 아니고 ‘최후의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체벌의 효과는 단지 ‘그때만 모면하는 정도’이고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이 숙제를 안하고 “학교가서 선셍님한테 한번 맞으면 되지”라는 풍토에서는 체벌은 ‘내성’만 키우고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신은서양)

5회째 이 대회를 주최해온 강치원교수는 전체평에서 “왕따와 체벌에 관해 언론과 교사,교수들간에는 많은 문제제기와 토론이 있었지만 당사자들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는 처음”이라며 “한사람이 10권의 첵을 읽는 것보다 10사람이 한권의 책을 일고 토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원탁토론방식을 통해 학생들간에, 그리고 사제와 학부모간에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고 이를 통해 문제의 현상과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데 이번 토론회의 의미를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2월20일_22일 2박3일동안 ‘대안학교’수업을 토론방식으로 진행한 뒤 그간의 논술, 토론내용을 엮어 오는 3월말께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남영진 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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