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 항명파문... 개혁의 채찍으로 삼아야

02/02(화) 18:03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항명 파문’ 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을 단숨에 ‘정치검찰’ 의 문제로 옮겨 놓았다. 법조비리 척결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심고검장이 던진 정치검찰의 문제가 그만큼 더 민감하고 핵심적인 주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검찰 고위간부가 던진 ‘폭탄발언’ 은 평소 검찰을 곱지 않게 보아 온 정치권과 많은 국민에게 검찰 공격의 호재를 제공한 셈이 됐다. 검찰 내부에서도 애초부터 대전 사건을 ‘잘못된 관행’ 정도로 치부하는 견해가 많기는 했지만, 검찰 수뇌부의 ‘정치적 판단’ 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수뇌부가 원칙과 법에 따르지 않고 여론의 압력과 청와대의 지시에 ‘굴복’ 해 무리한 처리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었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 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현정부 들어서만 해도 DJ비자금 사건이나 정치인 사정, 총풍(銃風), 세풍(稅風), 국회 529호실 사건 등 일련의 정치인 관련 사건에서 비난이 제기됐다. 때문에 검찰 고위간부가 던진 정치검찰의 문제가 공감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심고검장 파문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반개혁 세력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심고검장의 주장에 대한 검찰내부의 동조 움직임도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검사들의 기득권 집착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여권과 검찰 수뇌부가 심고검장 파문에 강도높게 대응하는 것도 이러한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 수뇌부로선 자신들을 ‘정치검찰’ 로 비난하는 것을 수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번 사건으로 법조비리 척결의 의지가 후퇴해선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떡값이나 향응에 연루된 검사들의 처리에 대해서도 “이제는 그것도 용납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는 말로 처벌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소 억울한 점이 있겠지만, 검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심고검장 파문은 ‘법조비리 척결’ 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 라는 검찰의 해묵은 과제를 다시 한번 전면에 부각시킨 셈이다. 검찰 안팎에선 이번 심고검장 파문을 검찰개혁의 중요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제도와 인사개혁을 통해 근본적인 수술을 가하지 않으면 검찰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고검의 한 검사는 “이번 사건을 단지 누가 잘하고 잘못했느냐는 식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며 “사태의 원인과 배경을 철저히 따져 다시는 법조계에 비리나 정치검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일부 법조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기회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 제도와 재정신청제도 확대, 특별검사제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법조비리 척결과 관련해서도 법조인 양성제도의 전면 재검토와 전관예우 금지규정 마련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심고검장 파문으로 법조비리 척결의지가 후퇴해서는 안되지만, 여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반개혁 세력의 반발로 치부되어서도 안된다” 며 “그가 검찰에 던진 개혁의 화두를 의미있게 새겨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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