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카스트로와의 '불꽃사랑' 아직도 가슴속에...

02/04(목) 17:53

섬광처럼 번뜩였던 혁명처럼 그들의 사랑도 시간 속에 흩날려 버린 것일까. 나탈리아 레부엘타(72)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라고. 혁명아 피델 카스트로와의 사랑은 한 순간이었지만 추억은 일몰의 풍경처럼 잔잔히 넘실거리고 있다고 그는 독백한다.

나탈리아 레부엘타. 일명 내티. 93년 미국으로 망명해 반 쿠바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카스트로의 딸 알리나 페르난데스 레부엘타의 친엄마. 쿠바혁명의 전야에 야심만만한 청년 변호사 카스트로와 동지로 만나 ‘금지된 사랑’을 나눴던 그 여인이 최근 카스트로와 연애시절 나눴던 편지를 ‘서간집’으로 묶어냈다.

카스트로가 53년 당시 바티스타 정부군에 대한 1차 무장공격을 모의하던 시절. 중산층까지 바티스타 정부를 혐오하던 세태에서 배우이자 의사의 아내였던 내티는 동지적 배려로 카스트로에게 자기집을 은거지로 제공했다. 내티는 그의 첫인상을 “언제나 좌중을 휘어잡는 힘이 있는 열정적 청년”으로 묘사하면서, 이 때 카스트로 역시 자신에게 눈길을 두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랑의 불꽃이 싹튼 시기는 카스트로가 1차 공격에 실패, 투옥되면서 둘 사이에 편지가 오간 2년간. 내티는 “이 시기에 나는 그에게 도스토예프스키와 프로이드, 아바나 해변의 모래와 음악회 프로그램 등을 감옥 속에 보냈다”고 회상했다. 내티를 통해 자유를 호흡한 카스트로의 가슴 역시 뜨겁게 달궈진다. 54년 1월 31일 카스트로는 “당신의 편지는 아무리 먹어도 목마른 꿀”이라고 했다가 9일 뒤에 또다시 “나는 격정에 사로잡혔소. 내게 편지를 써주시오. 당신의 편지 없이는 살 수 없소.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쓰고 있다.

마침내 두 사람은 55년 카스트로가 석방된 후, 본격적 게릴라활동에 앞서 2개월간 아바나에 머물 당시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눴다. 카스트로는 이미 끊임없이 스캔들을 일으켰던 아내 미르타와 이혼한 상태였다. 내티와의 사이에 알리나가 잉태됐다. 이 일을 눈치챈 내티의 남편 역시 후에 내티를 버리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혁명 와중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었고, 59년 혁명이 성공하자 카스트로는 이제 내티가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이 때부터 내티는 카스트로에게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카스트로는 독신이었지만 내티에 대한 사랑은 식어갔다. 카스트로는 70년대 중반 이탈리아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친밀한 관계를 갖기도 했다. 반면 알리나는 열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이름조차 알아서는 안됐으며, 카스트로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안 후에도 카스트로라는 성을 쓰지 못했다. 알리나는 황폐해졌고, 내티는 좌절과 고독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후 40년동안 카스트로 대신 공직자로서의 커리어를 추구한 삶과의 또다른 투쟁이 내티의 인생을 숙성시켰다. 세월이 내티의 오래된 편지첩을 열게한 것이다. 장인철·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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