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탐욕과 타락에서 벗어나야"

02/10(수) 16:28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가 올들어 미국 자본주의의 탐욕의 문화에 대한 비판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교황은 올해 1월말 첫 해외순방지인 멕시코에서부터 미국방문에 이르기까지 5일간 미국자본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기위한 세상 만들기를 꿈꾸는 교황의 지난한 노력 앞에선 78세라는 고령도 병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황에 즉위한 뒤 첫해외 순방지였던 멕시코를 1월22일 20년만에 다시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도착하자마자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일정을 시작했다.

교황은 도착 다음날에는 멕시코시티 과달루페성당에서 4만2,000여명의 신도가 참석한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더 이상의 폭력과 테러리즘, 마약밀매는 종식돼야 하며 사형제도도 폐지되야한다”며 죽음과 폭력의 문화를 준엄히 꾸짖었다.

교황은 이어 에르네스토 세르요 멕시코대통령과 만나 수년동안 피흘림의 투쟁이 계속되어온 농민반란사태인 ‘치아파스 문제’를 해결하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곧바로 열린 멕시코주재 외교사절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도 치아파스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교황은 가장 빈곤지역인 치아파스 인디언 주민들이 배고픔과 정부 탄압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교황은 소외의 고통을 봉기로 표출하다 숨져간 치아파스 농민들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교황은 놀라운 발표 하나를 했다.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앞두고 발표한 ‘밀레니엄 권고문’이 바로 그것이다. 미주지역 가톨릭 주교들의 건의문을 바탕으로 해 작성한 이 권고문은 미국 자본주의 착취성과 사악성에 대한 경고가 주내용이다.

교황은 24쪽 분량의 권고문에서 “사제들은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가진자와 권력자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교리를 전파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가진자들이탐욕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교황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미주지역에서 이윤과 시장법칙을 최우선시 하는 경제적 인간의 개념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세계화한 경제는 사회정의의 원칙에 따라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을 포함한 미주지역에서 권력자가 피지배층을 소외시키거나 심지어 탄압하면서 지배하는 사회가 등장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최근 들어 세계화가 약소국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온 교황은 중남미 국가 사제들이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부패와 외채문제 해결에도 앞장서라고 강조, 사제의 사회적 활동에 무게를 실었다.

교황의 이날 권고문은 중남미지역에 대한 우려가 당초의 마르크스시즘이나 해방신학이 아니라 이제는 거칠 것이 없는 자본주의에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그는 1월26일까지 계속된 멕시코 방문에서 미사와 접견을 통해 신자와 멕시코 국민들에게 사형제도나 낙태, 안락사등 죽음을 강요하는 제도에 대해 결연히 맞설것을 당부했다.

4일간의 멕시코 방문을 마친 1월26일 교황의 발길은 자본주의의 맹주국 미국으로 향했다. 31시간의 짧은 미국 방문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미국의 자본주의, 외교정책, 사회제도 등에 대한 강도높은 질타가 이어졌다.

1월 26일 미국 세인트루이스공항에는 빌 클린턴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여사등 2,000여명의 저명인사들이 마중을 나왔다. 공항 귀빈실에서 20분간의 교황과 클린턴대통령과의 회담이 열렸다. 가장 도덕적으로 깨끗한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교황과 전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 섹스 스캔들로 도덕적 상처투성이가 된 정치지도자 클린턴대통령과의 ‘성속(聖俗)의 만남’이었기에 세계의 이목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클린턴대통령은 교황의 모국인 폴란드어로 “우리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내려주신데 대해 감사합니다. 백수를 누리십시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교황은 느린 어조로 “100세라구요? 미국인들은 가난한 자와 빈국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여십시요”라고 답해 교황의 방미목적의 일단을 드러냈다.

교황과 클린턴의 네번째 만남이었던 이날의 회담은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채 끝이 났다.

교황은 “미국은 세계에 영향을 줄 새로운 시련의 시기인 21세기를 맞고 있다”고 운을 뗀뒤 미국의 잘못된 제도와 이념을 통렬히 비난했다.

교황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공격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갈등과 긴장만을 고조시키고 불쌍한 시민들만을 희생시키므로 즉각 중단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형, 낙태, 안락사를 과감히 거부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많은 국민들의 배고픔만을 초래하는 쿠바의 고립을 조성해선 안되며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쿠바를 도와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클린턴대통령은 이라크가 국제적 의무를 준수해야한다는 원칙론만 밝혔을 뿐 사형제나 낙태법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다.

클린턴을 만난후 카이엘센터에서 가진 ‘청년과의 만남’행사에서 “세인트 루이스에서 빅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 두젊은이가 홈런 신기록을 깨기위해 노력했듯이 여러분도 사랑의 복음을 전하기위해 노력해 주십시요”라며 사랑실천을 당부했다.

교황은 센터에 모인 2만여명의 청소년들에게 어둠(사악)으로 물들고 폭력, 마약, 섹스로 얼룩진 세계에 빠지지 말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교황은 어둠의 실례로 굶주려 죽는 어린이들, 일자리도 없고 치료도 받지 못하는 무주택자들, 난무하는 폭력사태등을 열거한뒤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10만여명이 운집한 1월27일의 트랜스월드 돔에서의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거짓말하도록 하거나 책임을 피하도록 하고 순결은 낡은 시대의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을 믿지 말라”며 미국의 도덕적 타락을 꾸짖었다.

이어 생명을 경원시하는 낙태법과 사형제도에 대해선 철저한 반대와 거부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랑과 평화의 사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멕시코·미국 방문은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고 생명의 문화를 주창하는 자리였다.

교황의 비판은 분명 인간이 인간을 짓밟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닥칠 수 있는 자본주의와 미국의 불행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던 것이다.

배국남·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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