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영화사 2세들 '예술보다 돈이 먼저'

02/02(화) 17:51

이 땅에 ‘2세’라는 낱말은 부정적이다. 부모의 후광을 업고 아무 노력없이 힘있고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땀과 눈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철부지들. 아마 이런 이미지는 일부 재벌2세들이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사에도 2세는 있다. 늘 가난하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도제식의 충무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배급구조를 부모들이 쌓아놓은 땀과 눈물을 타고 뛰어넘어 곧바로 자신의 생각대로 영화를 만들수 있는 대물림의 영화인들. 그들은 분명 행운아다.

그들에겐 몇가지 특징이 있다. 한때 한국영화에서 화려한 이름을 남겼던 아버지. 지금은 시대의 변화를 타고 등장한 젊은 제작자나 대기업에 밀려 주춤하고 있지만 옛날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에 하나같이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장소가 모두 미국이란 점, 지금 30대란 점도 같다. 대부분 영화가 아닌 경영학이나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그들은 이미 유학중에 아버지의 외화 수입을 도왔다. 그 역할을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하다 아버지의 회사가 직배사와 대기업에 밀리는 것을 보면서 그만두고 직접 한국영화 제작과 배급에 나섰다.

동아수출공사(회장 이우석)의 이호성(35)이사. LA 페퍼다인대학을 나왔다. ‘늑대와 춤을’‘원초적 본능’ ‘클리프 행어’ 수입에 성공해 아버지 영화사에 막대한 이익을 챙겨주었다. 91년 계열사인 영성프로덕션 기획실장으로 돌아온 그가 만든 첫 한국영화는 96년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다. 비록 흥행에 실패했지만 새로움과 작품성으로 ‘수입공사’란 빈정거림을 받던 동아수출공사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번 뿐이었다. ‘일팔일팔’ ‘똑바로 살아라’ ‘바이준’은 ‘신인으로 돈 적게 들이고 흥행에 성공하자’는 그의 전략을 드러내 주긴 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대동흥업(회장 도동환)의 도건호 역시 2년전 ‘오디션’이란 엉성한 영화를 내놓았다.

삼영필름(회장 강대진)의 강승완(37)이사는 지극히 관습적인 영화를 반복했다. 스타시스템에 상업적인 소재의 멜로드라마. 지난 추석‘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이 그렇다. 그 역시 실패. 캘리포니아 USC대학을 다녔던 태창흥업(회장 김태수)의 김용국(30)이사도 같은 방법으로 승부를 건다. 97년부터 영화일을 시작한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올 설연휴에 개봉할 ‘화이트 크리스마스’. 박신양을 기용한 10대 취향의 멜로드라마다.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의 차남 이효승(35)도 2세 영화인이지만 길이 조금 다르다. 보스턴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87년부터 태흥영화사 국제부에서 수출과 국제영화제 관련업무를 맡았으며 지금은 배급사 ‘용진’을 설립해 경기, 강원 지역에 영화를 공급하고 있다. 영화제작사 2세중 정통코스를 밟은 유일한 인물은 그의 동생 지승(33).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오고 뉴욕대에서 영화전공으로 석사까지 받았다. 한양대 동신대에 강의를 하면서 작년부터 아버지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 3월부터 촬영할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도 기획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20세기 폭스코리아 사장인 김정상은 원로 시나리오작가로 최근 김수용 감독의 ‘침향’을 쓴 김지헌씨의 아들이다. 역시 미국유학파로 경영학을 공부한후 미 영화 한국직배의 선봉에 섰다.

영화연출보다는 제작자나 배급자로 나선 2세들. 그들은 돈을 번저 배웠다. 문화와 예술이 아닌 상품으로써 영화를 만들고 유통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버지들은 그들이 영화인이 아니라 경영자가 되길 바랐다. 어쩌면 그들에 대한 영화인들의 곱지않은 시선과 외면은 당연한지 모른다. 영화에서도‘2세’란 말은 안타깝게도 아직은 부정적이다.

이대현 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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