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저비용 고품격' 자연다큐멘터리 '논'

02/03(수) 13:17

EBS의 프로그램은 재미없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일 듯하다.그러나 편견이다. EBS에는 볼만한 프로그램이 많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제작에서 EBS는 KBS, MBC등 거대 지상파방송을 추월하고 주도권을 틀어쥔지 오래이다. 다른 방송사의 5분의 1에 불과한 제작비와 인력을 아이디어와 끈기로 극복하고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칭찬할만 하다.

1월30, 31일 연속방송된 특집자연다큐멘터리 ‘논’은 EBS의 성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의 달인 이의호특수촬영팀차장이 아예 연출까지 맡아 혼자 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카메듀서(카메라+프로듀서)시스템. 제작비 절감을 위한 아이디어의 하나이다. 두 편의 제작에 들어간 돈은 모두 2,000만원. 1년 4계절을 담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공짜로 만든 셈이다. 카메듀서시스템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싸구려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한 마디로 수작이다. 올해 몇 개의 다큐멘터리 관련 상을 예약해 놓았다는 평가이다. 논에서 사는 각종 생물의 한해살이를 추적한 이 다큐는 ‘논은 쌀경작지에 불과하다’는 일반인의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논은 수많은 생명체가 모여 사는 소우주’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제작진의 노력은 적중했다. 각종 동·식물들의 탄생과 죽음, 섭생, 투쟁등을 집약해 놓았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환희와 함께 ‘인간과 생물의 공생’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도 전했다. 화면의 색감도 여느 다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흙과 물, 벼만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논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을 능가하는 현란한 원색이 존재했다.

EBS의 성가는 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97년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거머쥔 ‘한국의 파충류’. 이 작품은 ‘물총새부부의 여름나기’등과 패키지형태로 독일 미디어재벌인 커치그룹에 팔려 지난 해 위성 다큐채널을 통해 독일 전역에 방송됐다.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수준에 대한 유럽방송계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이후 유럽의 방송사들은 EBS의 다큐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만만치 않은 수준이면서 값은 의외로 싸기 때문이다.

지난 해 시베리아에서 혹한과 싸우며 제작해 화제가 됐던 7부작 자연다큐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는 독일에서만 2개 방송사와 판매를 논의중이다. EBS에 따르면 독일의 영상물판매업체인 FJE사를 통해 독일시장에 내놓았는데 독일 공영방송 ARD의 지방네트워크인 헤센방송(HR)과 바이에른방송(BR)이 관심을 표명해 논의가 진행중이다.

둘 중 어느 곳에서 이 프로를 사더라도 ARD를 통해 독일전역에 방송되고 인근 오스트리아 지상파방송사인 ORF사와 스위스의 DRS사에서도 방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EBS의 설명이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다큐채널 디스커버리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디스커버리는 "세트가 아닌 진짜 자연상태에서 찍었다면 대단한 작품”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디스커버리가 구입하면 전세계에 지속적으로 방송된다.

EBS의 오랜 숙원이었던 ‘독립공사화’가 조만간 이루어질 전망이다. 교육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공사로 위상을 재정립하고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게 된다. 더욱 기발하고 우수한 다큐멘터리를 기대해본다.

문화과학부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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