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옌코] "회화작품같은 음악회 하고 싶다"

02/03(수) 13:19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카리스마는 종종 도마에 오른다. 인터넷에 떠 있는 음악유머 중 하나. 오케스트라 단원이 사무국에 전화를 했다. "지휘자 있어요?" "없는데요. 돌아가셨습니다" 잠시 후 또 전화해서 있느냐고 물었다. 같은 대답. 그러고도 몇 번이나 같은 전화를 걸자 저 쪽에서 짜증이 돌아왔다. "죽었다는데 왜 자꾸 걸어요?" "그 말이 듣고 싶어서요"

푸르트벵글러나 첼리비다케 같은 거장들의 시대에는 죽을 때까지 한 오케스트라에 헌신하며 음악을 다듬는 지휘자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철새처럼 대륙과 대륙을 바쁘게 날아다니는 경우가 많아 지휘자가 죽어버리기를 바랄 만큼 미운 정 들기도 힘들어졌다.

올해부터 3년간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은 러시아 태생의 거장 드미트리 키타옌코(59)는 지난 해 처음 KBS교향악단을 지휘했다. 88년 서울올림픽때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에 온 뒤 10년만이었다. 지난 해 9월 KBS교향악단의 500회 정기연주회에서 그는 단원의 신뢰와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서로 크게 만족, 상임지휘자직 수락으로 이어졌다. 온 국민의 기대 속에 지난 해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왔던 정명훈이 넉 달이 채 안돼 도중하차한 뒤끝이라 키타옌코에게 거는 기대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그는 76~90년 모스크바필을 이끌었고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거장이다. 현재 모스크바음악원 교수이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도 맡고 있다.

그는 KBS교향악단이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 그렇게 만들고 싶어 맡았다고 말했다. 단원들의 기량이 뛰어나고 부지런하며

무엇보다 즐겁게 음악에 임하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요새 많은 오케스트라들은 그저 직업적 임무로 연주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서는 감동이 없다며 현수막처럼 내거는 음악회 말고, 매번 청중에게 기념이 되는, 훌륭한 회화작품같은 음악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멋진 은발이 인상적인 이 거장의 손끝에서 KBS교향악단은 다양한 색채감을 지닌 오케스트라로 다듬어질 것같다. "중요한 건 음향의 질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목적은 섬세하게 뉘앙스를 살리는 데만 있지 않고 음색에 다양한 색채를 담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서는 탐미주의자의 향기가 풍긴다. 어려서부터 박물관 구경을 즐겼고 산책, 동물과 놀아주기, 여행, 독서를 즐기는 평화주의자이다. 자신은 독재자스타일의 지휘자가 아니라며 물론 자신의 원칙을 요구하겠지만 모든 것을 단원, 행정파트와 협의해 오케스트라를 꾸려가겠다고 했다.

취임 첫 해인 올해를 그는 `리허설'로 표현했다. "일단 오케스트라의 개성을 파악하는데 치중하고 단원 이름부터 다 외울 작정입니다. 내일 당장 오케스트라가 달라질 수는 없지요. 지금까지는 나빴지만 이제 곧 천국이 온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차츰 레퍼토리를 늘리고 1년간 오케스트라 조율이 끝나면 외국 초청연주도 다녀야지요"

그는 한국의 지휘자와 젊은 작곡가들에 관심이 많다. "한국은 뛰어난 솔리스트가 많다. 이제 작곡가를 키울 때"라며 "개인레슨, 마스터클래스, 젊은 지휘자들에게 KBS교향악단 지휘를 맡기는등 여러 방법으로 한국의 지휘자를 키우겠다"고 했다. 또 "방송교향악단으로서 KBS교향악단은 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청중을 개발하는 것 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잘 몰라서 올해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에는 넣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들의 작품을 연주하겠다고 했다. 작품을 써봤자 아무도 연주해주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는 한국작곡가들이 이 말을 들으면 반색을 하겠다.

오미환 문화과학부기자

취임기념 특별연주회/11일 오후7시30분 KBS홀. 차이코프스키 `예프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즈'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쇼스타코비치 `발레모음곡 3번' 차이코프스키 `이탈리아기상곡'. 바이올린 레이첼 리. 문의 (02)781-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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