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썰렁한 바둑가 "나는 두고 싶다"

02/10(수) 19:30

“김사범, 올해 몇판두었죠?”

“두판요. 그런데 그중 한판은 승단시합이예요”

“어이쿠! 그럼 어떻게 먹고살아?”

“전 약과예요, 아직 한판도 못둔 기사도 수두룩해요.”

최근 삼성화재배 결승이 열렸던 한 대회장에서 필자가 모 프로기사와 나눈 대화의 한토막이다.

한마디로 요즘 바둑가는 몹시 썰렁하다. 시합이 없다. 따라서 구경꾼도 모이질않아 더욱 썰렁하다. 벌써 2월의 중순. 1년의 15%센트가 흘러갔는데도 바둑으로 밥을 먹는 프로기사가 한판도 두지못한 경우가 수두룩한 형편이다. 썰렁하다못해 차갑다는 얘기가 꼭 옳다.

불과 2~3년전만 하더라도 이창호나 조훈현 등 내로라하는 강호들에게 따라다니는 얘기중 하나가 대국수를 줄이라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돈도 좋지만 몸이 성해야 장수한다는 애정어린 충고였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얘기다.

가장 잘나간다는 이창호가 지금까지 둔 시합이 총 9차례. 상당한 대국이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일년에 1백판을 넘길만한 ‘위험수위’. 그러나 아홉차례의 대국중 국제대회가 다섯차례나 되니 이건 지나친 ‘가분수’. 얼핏 생각하면 국제전은 대국료도 상당하니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생길 수도 있는데, 얼마 안되는 대국이 연초에 몰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삼성화재배 결승이 이제 끝났고 동양증권배는 격년제로 열리고 올해 남은 대회는 후지쓰배와 춘란배 LG배가 남아있는데 혹시 전부 이창호가 우승한다고 해도 12~15판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제전 다섯차례는 상당히 많은 일정소화라 할 수 있다. 즉, 국내대회에서 네판을 두었다면 이창호의 입장에선 그저 ‘논다’ 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잘 나가는 이창호의 입장이 이럴진대 나머지 기사는 보나마나. 조훈현은 2월까지 세판을 두었다. 2월의 나머지 기간 동안 예정된 대국이 두판 더 있다. 따라서 총 2개월간 조훈현은 다섯판을 두는 셈이다. 그럼 1년에 30국을 둔다는 계산이다.

더 웃기는 일도 있다. 올해 가장 주목받는 기사가 될 전망이라던 유창혁은 지금껏 고작 한판이요, 서봉수는 그나마 한판도 소화하지못해 손이 근질근질하다. 이들은 링에 올라보기는 커녕 남의 바둑, 또는 옛날 기보를 놓아보면 ‘줄넘기’ 만 실컷하다 힘이 빠질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해있다. 이들은 9단진이라 승단시합도 참가하지않아 더더욱 시합이 없다.

작년 가장 많은 대국을 가졌던 목진석은(77국) 현재까지 다섯판. 신예최강 최명훈은 한판. 그리고 3분의 2 이상의 기사가 아직 한판도 두지못했다. 딱하여 성적표를 뒤지기 겁날 정도다.

갑자기 바둑가에 찬바람이 부는 건 순전히 경제한파 탓이다. 기전의 활성화는 아무래도 일선기업들이 그 키를 쥐고있다. 그들이 기업홍보수단으로 기전을 개최하는데 요즘은 경기가 불황이라 돈을 대려는 기업들이 줄어들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둑계의 적극적인 활동이 미진한 것도 큰 문제점이다.

여전히 기업으로서는 작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수 있는 기전개최를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기전규모를 축소해서라도 기전을 운영하려는 묘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없는 것보다는 아쉬운 것이 낫기 때문이다. 푼돈 무서운 줄 알아야 재산이 모이듯이, 세계대회에만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수천만원대의 기전이라도 계속 수명이 이어져야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이 다시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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