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가수들 "싹부터 바로 키우자"

02/10(수) 19:34

‘어린 가수 길들이기’가 시작됐다. 90년 댄스음악이 우리 음악계를 강타하면서 부작용의 한가지로 지적된 ‘버릇없는’ 어린 가수들에 대한 제재가 여러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프로덕션 연합체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가 터보의 김종국에 대해 무제한 협조거부로 음반제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A.R.T의 갑작스런 해체는 이런 맥락이다.

사실 국내 가요계는 어린 가수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금전 문제로 가수와 프로덕션간의 불화가 끊임없었고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다소 해괴망측한 의상과 모습때문에 방송국에 항의가 잇달았다. 심지어 몇몇 가수들은 자신을 발굴하고 스타로 키워준 매니저를 고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매니저는 어린 가수를 등쳐먹는 ‘모리배’로, 가수들은 핍박받는 ‘아티스트’로 부각되면서 동료의식이 강했던 가수와 매니저간에 틈이 갈라지고 신뢰의 벽이 깨져갔다.

결국 매니저들은 가수에 대한 불만이 높아갔고 자구책을 세워야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일었다.

연제협의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존경받는 매니저란 직업이 왜 우리나라에서만 나쁜 이미지로 비춰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계약에 의해 일을 하는데 가수들 등처먹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사실 우리 가요계만큼 가수들을 잘 대우해주는 나라도 없다. 정말 회의를 느낀다. 가수들에게 잘해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명확한 계약에 의해서만 움직이기로 했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김종국과 A.R.T문제가 불거진 것. 예전같으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매니저들의 위기의식 때문로 극단적인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일본 음악개방을 앞두고 국내 어린 가수의 자질향상과 가수로서의 소명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어야한다는 입장이다.

인기절정에 있는 터보의 김종국은 어린 가수들에게 일침을 가해야한다는 분위기때문에 ‘희생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종국의 행동은 어찌보면 한번정도 ‘경고’로 넘어갈 수도 있는일이 확대된 경우다.

사건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31일 KBS 1TV ‘한중일 콘서트’ 때다. 이날 한국대표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김종국은 공연전에 작가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던 김종국은 화장실까지 쫓아와 “빨리 준비하라”는 작가의 채근에 욕설이 섞인 대꾸를 했고 분을 삭이지 못해 무대에 올라가서도 공연내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 팬들의 비난을 샀다. 김종국은 이날 ‘립싱크’를 맞추지 않고 댄스가수로서 춤을 추지도 않았으며 공연이 끝난후 인사도 없이 퇴장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특히 이 공연은 일본과 중국에도 생방송이 되었던 터라 최선을 다하는 일본, 중국의 가수들과는 비교가 됐다.

김종국의 무성의한 모습에 팬들이 화가 났다. PC통신에 즉각 김종국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왔고 가요관계자들 사이에도 더이상 어린 가수들의 무성의한 행동을 이대로 묵과해서는 안된다는 말들이 돌았다.

이에 연제협은 비상회의를 통해 김종국에 대해 무기한 협조를 거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무기한 협조 거부’란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음반을 제작하는 프로덕션 연합체가 김종국의 음반제작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로 사실상 김종국이 가수로서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뒤이어 터져나온 A.R.T의 해체 역시 어린 가수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멤버중 한명인 박성준이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입건된 사건이 발생하자 소속사인 진아음반 대표 태진아가 ‘연예인으로서의 품위를 잃었다’는 이유로 해체를 선언해 버렸다. 당시 A.R.T는 ‘러브 스토리’로 각종 인기차트 1위 후보였던 까닭에 충격이 더했다. 태진아는 “어린 가수들이 인기를 등에 업고 제맘대로 행동하고 공인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 작금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위해 결심을 했다.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지만 가요계 전체를 위한 가슴 아픈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어린 가수들 길들이기인 이 두 사건에 대해 찬반 의견이 반반이다. “뭔가 짚고 넘어가야할 때에 잘한 일”“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힘의 논리를 내세운 무리한 결정”이라는 상반된 의견이 팽팽히 맞서있다.

기성세대가 주축이 된 찬성론은 어린 가수들이 가수로서의 ‘소명의식’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선배가수들에 비해 천직의식이 부족하고 가요발전을 위해 뭔가 일조를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돈만 밝힌다’는 얘기도 한다. 돈을 위해 신의를 헌 신짝 처럼 버린다는 주장이다. 가요관계자들은 국내 가수들이 일본 가수들에 비하면 호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10년이 지나도 월급을 받는 일본 가수들과는 달리 국내 가수들은 한곡만 히트해도 거액의 계약금과 로열티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 음반제작자는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음악과 싸울 수가 없어요. 제작자들의 잘못도 있지만 음악성보다는 외모와 춤에 치중하는 국내 가수들은 분명히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할 때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가수 길들이기를 반대하는 입장은 “가수가 왜 모든 멍에를 뒤집어 써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단지 무성의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불구속 입건됐다는 사실만으로 가수의 길을 막을 수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가수는 프로인데 금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스타가 되기위한 의식은 선배가수들에 뒤질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한 댄스가수는 “세대 차이로 볼때 선배들이 다소 서운한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버릇을 고치겠다는 차원의 제재가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이제 일본 음악이 들어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7월께면 개방될 전망이다. 내부단속도 중요하지만 빨리 힘을 합쳐 일본음악에 대처할 힘을 키워야한다.

정교민·일간스포츠 연예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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