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0일 실시된 수도권 3개지역 재·보선과 4월정국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선거결과 자체가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도 물론 크다. 그러나 더욱 주목할 것은 이번 재·보선이 그동안 흘렀어야할 일련의 정치흐름들을 억제하는 댐과 같은 기능을 했다는 점이다. 재·보선이 끝난 것은 그런 댐이 터졌음을 의미한다. 댐에 고여있던 ‘정치적 에너지’ 는 급류로 흘러내려 4월정국에 격랑을 일으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공동여당내부의 내각제논의가 소란스러울 것 같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재·보선에서 여여공조, 즉 호남표와 충청권출신표의 결합을 통한 승리를 위해 내각제갈등을 최대한 억제해왔다. 상대방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해대고 싶어도 여여공조표를 의식해 참았다. 3개지역의 연합공천이 그러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재·보선이 끝난 만큼 양당은 내각제에 관한한 할말은 하겠다는 기세로 나오고 있다. 특히 자민련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김용환수석부총재는 이미 “4월부터 내각제추진위를 확대보강해서 내각제논의를 본격화하겠다” 고 공언해놓고 있다. 그는 선거 다음날인 31일 제주 탐라대에서 특강을 갖는다. 특강의 핵심주제는 내각제문제다. 그는 이 특강을 ‘제주 거사’ 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제주로부터 내각제 불을 질러 서서히 북상, 전국에 내각제논의의 산불을 지르겠다는 심산이다.

김수석부총재 등 자민련 내각제강경파들은 6~7월 거사설을 공공연히 흘리기도 한다. 그때까지 국민회의와 김대중대통령이 연내 내각제개헌약속 이행을 확답하지 않으면 공동정부에서 철수하고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민련의 내각제 대오가 일사불란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선 김종필총리의 내각제 접근법과 자민련내 내각제강경파들의 강경공세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김총리의 내각제개헌추진 의지가 확고한 것은 분명하지만 공동정부의 틀을 깨는 극단적 방법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공동정부에서 철수하는 것은 김대중대통령과 국민회의를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나 내각제개헌 실현을 보장하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각제 해법 놓고 자민련 내부서도 ‘인식 차’

자민련내부의 인식차도 있다. 김수석부총재 등 충청권인사들과는 달리 박태준총재를 위시해서 한영수·박철언 부총재 등은 내각제 속도조절론을 펴고 있다. 정치는 현실인데 밀어부치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들 속도조절론자들은 그동안 당내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죽여왔지만 앞으로는 자신들의 주장을 보다 분명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회의측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자민련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판단하에 당내의 반내각제 목소리를 눌러 왔던 국민회의다. 그러나 자민련의 내각제공세가 일정한 수위를 넘어서면 이를 견제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얼마전 정균환사무총장이 합당론을 강하게 제기한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정총장은 공식적으로 얘기를 꺼낼 단계가 아니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양당간에 개별적 차원에서 합당얘기가 오고가고 있다” 고 말했다. 자민련내에도 일부 충청권 인사를 제외하면 생존을 위해 합쳐야 한다는 견해들이 많다는 얘기도 했다. 국민회의가 합당론을 거론하는 것은 내각제연기를 전제로 한다.

김대통령은 3월19일의 기자간담회에서 “2~3개월후 내각제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겠다” 고 말했다. 김대통령 나름대로 구상이 있겠지만 4월부터 거세질 양당간의 내각제 힘겨루기의 향방이 그 결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도 3·30재·보선이후 요동칠 정국격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론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간에 내홍이 깊어질 개연성이 높다. 이회창총재는 내년총선체제의 조기구축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려할 것이지만 비주류들이 순순히 따라줄지 의문이다.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정치개혁법 협상도 변수다. 한나라당측은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를 가미한 현행선거제도를 고수할 방침이다. 하지만 당내에는 중·대선거구제를 희망하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은 세를 형성해가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내에서도 중·대선거구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들 흐름이 합쳐질 경우 어떤 정국변화를 연출해낼지 자못 궁금하다.

이계성·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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