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증권 투자정보팀의 신삼찬과장은 얼마전 택시기사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증시가 급등세를 나타내던 12월초 동료 개인택시 기사 하나가 택시를 팔아서 주식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기사는 이름도 생소한 증권주를 사서 2배이상 올랐다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신과장은 속으로 ‘증시가 꺾일 때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방 증권사 객장이나 서울 변두리 증권사 객장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들끓고있다. 주식투자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 퇴직금, 명퇴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과거 증시를 움직이던 3대축 가운데 가장 세력이 약했던 개인투자가들이 증시를 쥐락펴락하며 장을 선도하고 있다.

개인투자가들의 반란

이달초까지만 해도 고객예탁금은 3조원 안팎에 머물렀다. 고객예탁금은 주식을 사기위해 개인투자가들이 맡긴 자금이기 때문에 증시의 매수에너지를 측정하는 좋은 기준이 된다.

12월 19일 현재 고객예탁금은 5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20일 남짓 동안 무려 2조2,000억원이 넘는 돈이 증시로 몰려든 것이다.

개인투자가들은 시중 금리가 10%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기점으로 증시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개인들은 저가 증권주, 건설주를 무차별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종합주가지수는 이달초 445포인트에서 단숨에 500선을 뚫고 상승행진을 계속했다.

증시가 한창 깃발을 휘날리며 상승하던 지난 14일 정부는 한국통신의 주식시장 상장을 전격 발표했다. 대부분의 증권전문가들은 한통주 상장이 상승증시에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주식시장은 15일 20포인트나 폭등했다. 개인투자가들의 주력 종목인 증권, 건설주가 일제히 상승한 반면, 기관투자가들과 외국인들의 종목인 대형 우량주들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증권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개인투자가들의 반란’ 으로 규정했다.

과거에는 주가가 올라도 외국인 선호 종목만 올랐기 때문에 개인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주가가 올라도 개인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여전히 한겨울인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이같은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관, 외국인이 소극적 매매로 일관하고 있는데 반해 개인들은 공격적인 매매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택시를 팔아 주식에 투자하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농협에서 융자받은 영농자금으로 주식을 사는 농민들도 있다.

무서운 개인들의 반란에 기관과 외국인은 숨죽이고 지켜볼 뿐이다.

기관투자가들의 딜레마

투자신탁 회사들은 요즘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주가가 오르면서 주식형 수익증권이 날개 돋힌듯 팔리는 것은 기쁜일이다. 지난 여름 한남투신 부도때 투신업계가 겪었던 참담함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아무리 주식이 오르고 수익증권이 팔려도 통 신이 나지 않는다. 손님돈으로 주식을 살 수는 있지만 투신의 고유계정으로는 주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투신사들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고유계정에 있는 주식을 팔아 빚을 갚기로 금융당국과 약정을 맺었다.

기관들은 연초이후 지금까지 주식을 계속 팔기만 했다. 장이 오르건 내리건 할 수 있는 일은 주식을 파는 것 뿐이다.

이같은 사정은 투신, 은행, 보험이 모두 마찬가지다. 모증권사의 법인영업부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은행이 주식을 사기 시작하면 장이 끝났다” 며 “투자 결정이 느린 은행마저 주식을 사기로 했다면 주식시장은 그때부터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19일 미국의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사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발표를 했다.

투신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은 이번에도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을 했다. 기관들은 사실 개인투자가들의 겁없는 주식투자를 위험스럽게 바라보고 기회있을 때마다 주식을 팔았다.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올린다면 지금부터 증시는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기관들이 부랴부랴 주식을 사모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느긋한 외국인 투자가

외국인 투자가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한국증시를 바라보고 있다. 외국인들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국내 주식의 19%를 보유하고 있다.

연말연초에 각 펀드들은 자신들의 투자방향과 투자규모를 결정한다.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기로 결정할 때인 99년 3월쯤이 펀드의 자금을 재분배할 시기와 겹친다.

만약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높여주면 투자비중을 따라서 높이면 된다. 한국의 주요종목들은 값이 싸기 때문에 그때 가서 사도 큰 무리는 아니다. 신용등급을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손해는 없다. 한국에 대한 투자비중도 현재 수준으로 묶으면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실제로 한국증시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주식을 사줘야 대기업들이 내년도에 퍼부을 유상증자 물량이 소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명수·서울경제 증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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