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달리고 뛰고 페달을 밝으며 물살을 가른다. 그들의 경쟁상대는 자기 자신뿐이다. 누가 앞서 나가는지 누가 뒤쳐져있는지 생각할 여유도, 힘도 없다. 오직 한발 한발을 떼는데 힘겨워하는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정신은 혼미해지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치열하게 맞설 뿐이다. 이들은 누구도 타고난 체력을 지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인경기는 체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경기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생활을 절제하고 매순간을 단련했다. 몸이 쓰러지려고 할때 정신으로 참았을 따름이다. 참고 참다보니 어느듯 그들은 처음에 두려운 마음으로 섰듯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오직 응원나온 가족과 친구, 친지들의 환호가 있을 뿐이다. 실오라기같은 기력도 남아있지 않지만 하늘을 날 것 같다. 나자신을 이겼다는 기쁨때문이다.

226㎞를 헤엄치고 뛰고 자전거로 달리는 3종경기. 이 경기를 정해진 시간내 완주한 사람들은 ‘철인’(鐵人)으로 불린다. 226㎞, 서울에서 추풍령까지 거리를 17시간안에 헤엄치고 뛰고 달린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비도 내린다. 최악의 기상조건이 이 경기 규정의 하나다. 이들이 철인일 수 밖에 없음은 우선 뛰어야하는 거리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생각과 행동이 별나야 철인

철인경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경기를 ‘자학의 경기’ 라고 말한다. 실제로 스스로를 자학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철인들이 꽤 있다. 건강을 위해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철인도 있다.

범인(凡人)의 말이 어떻든 간에 철인이 되기위해서는 별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생각과 행동이 별나지 않으면 철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몸은 상관이 없다. 나이나 신체적 조건은 철인이 되기위한 변수가 못된다.

60대 부부철인인 김용견(64·충남 온양시), 강점례(58)씨. 예순살을 못넘기는 집안내력 때문에 건강을 얻기위해 철인3종경기에 도전하게 됐다는 김씨. 매니저 역할을 하던 막내딸은 아버지의 연습을 볼때마다 울었다. 체력이 한계점에 도달하는 이른바 데드포인트(DEAD POINT)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이들어 운동을 시작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달리기 연습을 할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사내 대장부가 중간에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연습했다. 자신과의 싸움에 이기고나니 자신감이 생겨났다” 고 김씨는 말한다.

김씨 가족은 김씨의 6살된 손녀딸이 어린이 철인경기에 출전, 최연소 완주기록을 세웠다. 손녀딸이 완주하는데 자극을 받은 할머니 강씨도 지난해 철인경기에 출전, ‘예비철인’ 의 명예를 얻었다. 강씨가 ‘철인’ 이 아닌 ‘예비철인’ 에 그친 것은 규정시간을 12분 초과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올해 철인경기에서는 수영에서 기권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경기도중 지쳐 잠에 빠진 남편을 깨워서 끝까지 완주시키기 위해 자신의 경기를 포기한 탓이다. 교통사고로 연습을 제대로 못한 김씨는 같이 달려준 부인 덕분에 규정시간내에 들어올 수 있었다. 노부부는 요즘도 매일 아침 온양_천안간 30㎞를 사이좋게 달린다.

연세대 원주기독병원 흉부외과 오중환교수(44). 지난 92년부터 철인경기에 도전한 철인교수로 세계대회까지 출전한 관록파. 오교수는 지구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직업때문에 철인경기에 처음 도전했다. 흉부외과수술은 12시간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고 20시간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지구력과 자신감은 바로 환자를 위해 필요한 흉부외과의사의 기본자질인 것이다.

“달리고 나면 힘이 생깁니다”

오교수는 의대생들 사이에 팽배한 3D기피현상도 불만이었다. 편하게 돈벌 수 있는 전문분야만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철인경기가 자극이 되기를 바라면서 달리고 뛰고 물살을 갈랐다. “처음 수술에 들어가면 겁도 나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단련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지요.”

오교수는 “좌절하고 싶을 때 달리고 나면 힘이 생긴다” 며 “점점 더 힘든일을 기피하는 학생들이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고 말한다. 실제로 그를 좇아 철인경기에 도전한 제자도 두명이나 된다.

철인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궁극적 목표의식은 바로 자기자신에 대한 도전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 욕망을 바로 철인경기를 통해 성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감을 얻는다.

철인이 되고자 한다면 별나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 생활속에서 운동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91년부터 3종경기에 출전한 쌍용화재 차영기(42·차장)씨. 그는 25층되는 회사건물 계단을 매일 오전 오후 한번씩 오르내렸다. 아침과 저녁시간의 훈련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6분도 더 걸리던 시간이 나중에는 3분으로 줄어들더라고 했다. 이유를 알턱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당연히 그는 이상한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를 이상하다고 보는 회사직원들은 한명도 없다.

네트워크 전문업체인 (주)오픈 넷 영업부장으로 있는 이민석씨(39). 그는 95년부터 철인경기에 도전했다. 그는 사이클에 약점이 있다. 96년 그는 사이클에서 체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올해 이를 당당히 극복했다. 그는 자유로 갓길을 사이클 연습도로로 이용한다. 자유로는 자동차 전용도로. 당연히 교통사고의 위험이 크다. 간혹 교통순경에게 걸리기도 한다. 사이클 선수로 알고 용인해주는 경찰도 있지만 어떤때는 도중하차하는 일도 있다. 임진각을 지키는 초병들은 간혹 박수를 쳐주기도 한다.

성취감을 맛보고싶어 이 운동을 시작한 박재용(30·동아생명)씨는 시합을 앞두고는 집(송파구 잠실)에서 회사(강서구 염창동)까지 자전거로 출퇴근 한다.

철인은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철인은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나이가 완주나 기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직 자기 자신의 단련여하에 달려있다고만 믿는다. 이민석씨(39)는 자신이 철인의 중간연령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연세대 오교수는 “65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들보다 기록이 더 좋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며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운동이 아니며 심장과 심폐기능은 관리하기 나름” 이라고 설명했다.

차씨 역시 첫 출전인 91년 로얄코스(51.5㎞)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 마지막 마라톤 코스에서 70세된 노인이 자신을 추월하는 것을 보고 오기가 나 기를 쓰고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차씨는 “아마도 그런 자극이 없었다면 더이상의 도전은 없었을 것” 이라며 “나이를 먹을수록 기록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인간은 단련여하에 따라 영원히 발전한다는 생각을 했다” 고 말한다.

철인은 스스로 바랐던 바는 아니지만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인정이다. 매사에 의욕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든든한 가장의 모습이다. “남을 보지않고 자신을 보았으면 합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배우기를 바랍니다.” 철인경기 출전 전날 장남의 격려편지를 받았다는 차씨의 말이다.

철인들은 배우자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다. 절제된 생활로 회사와 가정에 충실하고 건강을 지키는 남편을 싫어할 부인은 없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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