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생명체 있나?] 우리식 'ET 문화'를 만들자

04/29(목) 08:23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6년 2월 5일자 커버 스토리로 ‘Is anybody out there?’(거기 누구 없소?)를 택했다.

이 말은 누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묻는 말이 아니라 천문학자들이 우주에다가 대고 묻는 말이다. 이제 천문학자들의 ET(Extraterrestrial·외계생명체) 탐색작업이 매스컴에서 다뤄질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많은 천문학자들은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Yes, we are here!’(네, 여기 있소이다!)라고 믿는다. 대답을 할 수 없는 벙어리들은 아마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ET 탐색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이 시도는 최근 태양계가 아닌 다른 별 주위에서 행성(‘혹성’은 일본말이니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쓰지 않기 바란다)을 잇달아 발견하면서부터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는 물론 ET가 있다면 행성에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특히 최근 3개의 행성을 거느린 ‘제2의 태양계’가 발견된 일은 정말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칼 세이건의 SF를 각색한 영화 ‘콘택트’ 에서 주인공인 주디 포스터가 천문대를 찾아온 아이들에게 해 주는 말(“이 우주에 우리만 산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가 아니겠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발견이었다.

이러한 천문학의 발전에 발을 맞추어 ET를 소재로 한 SF 연속극,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1세기가 되어도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신세대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이러한 ET SF에 ‘감’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진국에 가면 서점 벽 한면에 빽빽이 꼽혀 있는 SF서적이 어떻게 우리나라 서점에서는 겨우 몇 권 돌아다니고 있느냐 말이다. 그러다 보니 ‘ET는 백인 아이들이나 만나야 한다’는 식의 절망적 고정관념이 우리들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됐다. 즉 우리는 ‘ET문화’가 없는 것이다.

또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는 SF를 꼭 ‘공상과학소설’ 이라고 부르고 있다. SF, 즉 Science Fiction에는 ‘공상’ 이라는 말이 없다. 공상이란 말은 다분히 ‘실현불가능한 것’,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는 꼭 시정되어야 한다.

사람이 달에 가는 것이 왜 공상인가. 선진국에서는 이미 우주공간에 호텔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받겠다고 나서고 있는 판이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나라의, 우리나라 주인공에 의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ET SF물이 나와야 한다. 처음부터 먼 은하계에서 레이저 검을 휘두르는 작품을 만들어봐야 외국 작품의 각색물이나 아류로 느껴질 뿐 우리 국민의 공감대 형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엄청난 특수효과 비용까지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KBS에서 5월 3일부터 방송할 계획 아래 제작중인 ‘어린 왕자’는 비록 어린이 연속극이라 하더라도 우리 고유의 ET 문화 구축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랄 아이들은 밥상 들고 다니며 전화로 싸움이나 하는 연속극밖에 만들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10년 뒤, 20년 뒤에는 ET 문화가 형성되어 한국판 ‘X파일’도 방영되고, ET와의 전쟁을 담은 만화와 컴퓨터 게임이 넘쳐날 것이며, 한국판 ‘스타 워즈(별들의 전쟁)’도 극장에서 상영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계는 이미 문화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한 국가의 문화가 그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어 문화수준이 곧 국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 문화수준이 낮아 훌륭한 문화상품을 가지지 못한 국가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결국 문화전쟁에서 패해 망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ET 문화는 후진국들의 그것과 별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과학기술과 대중문화는 있지만 과학문화가 거의 없는 풍토이고 보니 과학문화의 한 분야인 ET 문화가 형성될 수 없었던 것이다. 21세기는 수백 개의 TV 채널에서 하루 종일 방송하는 시대다. 검은 머리를 한 우리나라 어린이가 ET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어색하게 느낄 정도로 바보가 된 우리가 그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모두 수입된 외화로 때우지나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ET’와 같은 훌륭한 SF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이 훌륭하다기보다는 ET 문화의 꽃이 우주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활짝 피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SF 대작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영화인들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간접자본이란 도로, 항만 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문화수준도 그중 하나인 것이다.

어린이 ET 드라마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 1999년 우리나라 ET 문화의 현주소라면 이는 슬픈 일이기에 앞서 심각하게 걱정할 일이라는 사실을 독자 여러분은 유념해주시기 바란다.

박석재 국립천문대 책임연구원

1957년생

서울대 천문학과 졸업

미국 텍사스대 천문학과 연구원(Ph.D.)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초대 회장

저서 ‘재미있는 천문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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