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떠밀린 '퇴진', 다시 날 수 있을까

04/29(목) 15:34

사고뭉치 대한항공에 대한 김대중대통령의 ‘진노’는 3일만에 ‘오너 퇴진’으로 일단락됐다. 조중훈회장이 퇴진하고 조양호사장은 회장직을 맡되 전경련 등 대외업무만 관장키로해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형식을 갖췄다. 대한항공 중국 상하이 사고와 관련, 김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은 전문경영인이 나서서 인명을 중시하는 경영체제로 바꿔야한다”고 말한지 3일만인 22일 오너가 불명예 퇴진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통령의 사기업 경영권 간섭에 대한 비판여론에도 불구, 대한항공이 순순히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인명피해와 국가 신인도 추락을 더 이상 좌시할수 없다는 청와대의 초강경자세 때문이다. 최고 통치권자가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하는 데는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 시간을 끌어봤자 대통령의 미움만 더 사게 되고,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97년 8월 괌추락사고 이후 1년6개월동안 대한항공이 낸 항공사고는 모두 10여건. 이번 상하이사고 직후 미국 델타항공 등 일부 외국항공사가 대한항공과의 좌석공유(Code Sharing)협정 중단을 선언하고 독일의 한 다국적기업도 직원들에게 ‘앞으로 2년동안 대한항공기를 타지말라’는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또 최근 대한항공 내부감사에 참여했었다고 주장하는 한 전직 외국인 조종사는 인터넷에 띄운 ‘델타의 감사결론’이란 문건에서 “대한항공의 항공기 운용은 비행안전을 고려하기보다는 상업적인 쪽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급기야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8일자에서 국제 항공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대한항공의 회장과 사장이 사임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대한항공의 잇따른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경우가 많았다는게 중론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독점체제를 유지하며 정권과의 밀착관계를 지속시켜 외형으로만 세계 10대까지 올라섰다. 또 항공기 조종사들에 대한 상벌규정을 만들어 무리한 운항을 부추겼고 독점이라는 이름아래 서비스개선에는 뒷전이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대한항공의 문제점은 거듭되는 항공사고에도 불구, 최고책임자는 물러나지 않은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만 대처해왔다는데 있다. 이에 따라 사고가 나면 문제 해결보다는 문책을 두려워해 부서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업무방식이 굳어져 안전운항의 걸림돌이 돼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모든 일이 총수의 의사에 따라 처리돼야만 하고 이로 인한 일방통행식 지시로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오너회장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으로 회장직을 내놓기는 이번이 세번째. 60년대초 한비밀수사건을 일으킨데 대한 책임을 지고 당시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회장이 사임한데 이어 91년에는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으로 당시 박용곤 두산그룹회장이 물러난 적이 있다.

이제 초점은 ‘포스트(Post) 조중훈시대’의 대한항공 행로. 지금까지 조회장의 절대적인 영향력밑에 있던 대한항공이 전문경영인 체제 하에서 어떤 변신을 할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오너 퇴진으로 대한항공이 인명중시의 항공전문기업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오너퇴진과 동시에 상무급 이상 29명도 전원 사표를 제출한 상태여서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경영혁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심이택 신임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회장직으로 물러난 조전사장은 물론 어떤 오너경영진의 눈치도 보지않고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해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신임회장이 비록 대외업무만 관장키로 했더라도 대한항공의 지분 25.27%를 갖고 있는 만큼 심사장의 경영에 어떤 형태로든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심사장은 지금까지 조중훈회장의 최측근이었고 대한항공 개혁이 일정궤도에 오르면 다시 조신임회장이 경영권장악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대한항공이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따라서 대한항공의 개혁은 심사장 등 새로운 경영진이 조회장 일가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얼마 만큼 벗어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게 항공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남대희·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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