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김성훈장관께

04/27(화) 18:02

김성훈농림부장관께 묻습니다. 도둑을 맞지도 않았는데 왜 물건을 잃어 버렸다고 발표했습니까. 장관께서는 도난당했다고 밝혔던 와당탁본 등을 찾아낸 뒤 ‘억울하지만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장관께서는 절도범 김강룡의 말에 온 국민이 헷갈린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도 일부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 두점을 잃어버렸다고 말함으로써 절도범의 주장을 국민들로 하여금 상당 부분 믿게 한 것입니다.

장관께서는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나 그간 협동조합 통합문제와 겹쳐 혹시나 하는심정으로 냉가슴을 앓았다”고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폭로한 야당이나 이를 보도한 언론 때문에 억울하게 당했지만 현재로서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장관의 그같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관에게도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채 그림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고 시인한 것입니다. 도난당한 사실이 없다고 했으면 혼란은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관께서는 한나라당이 절도범의 폭로내용을 발표하자 농림부 공보관을 시켜 도난당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당시 발표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성훈 농림부장관이 도난당한 물품은 그림 2점이며, 이중 1점은 중국여행시 입수한 와당(박새기와) 탁본으로 중국현지 화폐로 10위안 미만 상당이고, 다른 1점은 중앙대 부총장 재직시 중앙대 예술대 4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 그려서 준 그림으로 고서화가 아니며 현금이나 귀금속 등 금품은 전혀 도난당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혀드림.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김강룡이 경찰진술시 ‘농림부장관은 현정부의 청백리의 표상이더라, 집에 현금이나 귀금속은 없더라, 사모님 반지도 20~30만원짜리 3~4개 밖에 없어그림 2점만 가져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됨.”

일국의 장관이 공보관을 통해 배포한 자료는 공문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같은 발표를 접한 국민들은 우선 ‘장관 집에도 도둑이 들었구나’고 믿습니다. 유종근전북지사가 달러는 단 한푼도 없었으나 현금 3,500만원은 도난당했다고 시인했고, 김장관도 운보나 남농의 그림은 아니지만 그림 두점을 도난당했다고 밝혔으니 도둑의 말을 어느정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경찰서장들도 피해액수는 다르지만 도난당한 사실은 시인했으니 말할 필요도 없지요. 도둑이 지목한 피해자 네사람이 모두 도난사실을 시인한 것입니다.

장관께서는 도난당했다고 말했던 그림들의 소재를 밝혀낸 뒤 “지난 주말 국회에서한나라당측이 해명기회를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동료의원의 ‘피해자가 피해 보는 사회는 우리 뿐이니 거절하라’는 충고를 따랐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친구로부터‘돈벌 기회가 생겼다. 명예훼손 혐의로 제소하고 해당 언론사별로 5억∼10억원씩 받아내 친환경농업센터 기금을 만들어라’는 전화를 받았으나 웃어 넘겼다”는 말도덧붙였지요. 장관께서는 “도둑의 말을 더 믿는 병든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18일 축협노조의 협동조합 통합반대 집회장에 ‘앞에서는 청렴결백 뒤에서는 부정비리-김성훈장관의 진짜 모습’이라는 플래카드 등이 등장했었다”고 가슴아파했습니다.

장관의 억울하고 아픈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둑의 말에 놀아난 언론도 억장이 무너집니다.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장관께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장관께서 나는 도난당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면 이번 사건의 전개과정은 상당부분달라졌을 것입니다. 도둑이 마구 토해내는 말들에 대한 신뢰도가 처음부터 많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국민들도 덜 헷갈렸을 것이고요.

국민들은 장관이 도난당한 그림이 있다고 발표하게 된 경위를 알고 싶어 합니다. 국민들은 우선 장관 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기에 잃어 버린 그림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믿습니다. 또 도둑이 경찰에서 진술한 ‘청렴한 장관’이라는 말을 강조한데 대해서도 의심을 갖습니다. 국민들의 이같은 의심은 실제로 도난을 당한 고위공직자나 부유층이 도난신고를 아예 않거나 범인이 훔쳤다고 하고 장물이 나왔는데도 찾아가지 않는 사례들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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