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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요리의 중원'을 평정한 '고수'

요리사 경력 30년의 베테랑 후덕죽(50)씨. 신라호텔 조리이사이자 국내 중식부에선 손꼽히는 일류 요리사인 그는 최근 동료 요리사 8명와 의기투합, 호텔요리의 노하우를 전격공개하는 ‘집에서 만드는 호텔요리’ 라는 책자를 펴냈다. 호텔업계 요리사들이 집단으로 책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 동·서양식을 막론, 20여년의 노하우를 미련없이 털어넣었다. 발행 한달만에 벌써 3만8천부나 팔렸다며 좋아하는 그에겐 요즘 독자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일도 즐거운 일중의 하나. ‘가르쳐 준 대로 해보니 정말 그대로 되더라’는 감사 인사부터 ‘하라는대로 했는데 왜 난 안되냐?’는 끈질긴 실패담까지 다양하다.

“솔직히 처음엔 걱정이 많았습니다. 우리 노하우를 알려주면 다른 호텔이나 음식점도 따라하지 않을까, 또 아무리 잘 가르쳐준들 우리 전문요리사들 솜씨를 주부들이 과연 흉내나 낼수 있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그래도 우리 호텔 음식을 즐기고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에 대한 보답의 뜻으로 결단을 내렸는데 기대이상 반응도 좋고해서 참 뿌듯합니다.”

권외(券外)의 히트작도 많다. ‘불도장’ ‘샥스핀찜’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데 이어 얼마전엔 ‘된장짜장면’ ‘빨간짜장면’ 으로도 이름을 알렸고, 직접 요리강좌를 열었던 주인공. 또 중식부 조리사 출신으로선 처음으로 임원자리에 오른 기록도 갖고 있다.

주방장 몰래 만든 탕수육에 설탕 대신 소금

화교출신인 그는 부유한 가정의 6남매중 넷째로 자랐다. 6.25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시절 돌아가셨다. 68년 화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햄과 소시지’를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얘기에 솔깃해 유엔센터호텔에 취직했다. 아버지 친구분이 운영하던 그곳은 당시 미8군부대 사람들을 주로 상대하는 양식 레스토랑이었다.

일은 밑바닥부터 시작됐다. 청소와 설겆이는 물론, 선배들 심부름에다 양말 빠는 일까지 그의 몫. 처음엔 그저 닥친 일이니 잘 해보겠다는 생각에 불과했지만, 우연히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어 빵을 구워 본 뒤 생각이 확연히 달라졌다. ‘아무것도 아니던 밀가루를 이리저리 주물럭거려 구우니 빵도 되고 과자도 되는게 너무나 신기해’ 요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두해쯤 고생하고서야 직접 조리할 기회를 얻었다.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등 양식만 하다보니 그것도 답답해졌다. 그래서 옮긴 곳이 반도호텔. 훨씬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겠다 싶어 71년 입사했다.

반도호텔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많은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곳. 가끔은 조리팀이 청와대에 불려가 특선요리를 올리기도 했고, 남북적십자회담때엔 영빈관에 머물며 1주일이나 출입통제하에 식사를 전담하기도 했다. 특히 정일권 전 총리와 김종필 현 총리는 당시 반도호텔의 단골고객. 그때 막 선보인 사천요리를 아주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처럼 각국 요리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라 한정식외엔 중국요리가 주종을 이루었고 그중 사천요리는 고추와 마늘을 많이 써 맛이 매콤해, 우리 입맛에 아주 잘 맞는다.

반도호텔 시절 초창기엔 엄격한 대만인 주방장 밑에서 다시금 혹독한 수련기를 거쳤다. 1년동안 야채 다듬는 일만 시킬뿐, 노하우에 관한 한 주방장의 ‘보안관리’는 지독스레 철저했다. 어깨너머 요리법을 익혀봤자 이름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고, 이름을 알아내도 재료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야박한 주방장 몰래 탕수육을 만들어보다가 행여 들킬세라 허둥대는 통에 설탕 대신 소금을 넣은 적도 있다. 뒤늦게 맛을 본 주방장에게 들켜 혼줄이 난 것은 당연지사. 호되게 두들겨 맞았다.

일자리 잃고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 요리공부 시작

그 일도 반도호텔이 롯데로 넘어가는 바람에 끝나버렸다. 하루아침에 갈 곳이 사라졌다. 갈등이 많았다. 계속 조리사 생활을 할지 여부도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우선은 일본에 있는 누님댁에 머물면서 어학공부도 하고, 자신의 진로도 다시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일본으론 건너간 뒤 그러나 정작 그를 붙든건 어학공부가 아니라 요리였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던 록본기의 한 반점에서 되려 발목이 확실히 잡혀버렸다. 여지껏 보지못한 색다른 요리들이 너무 많았다. 한국엔 없던 광동요리도 지천이었다. 진기한 요리에 정신이 팔려 아예 공부도 미뤄버렸다. ‘어학공부야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이 요리는 지금 배우지 않으면 때를 놓치리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요리공부를 시작, 정식 기초를 다진것도 그때였다.

2년간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77년. 그해 11월 1일자로 그는 신라호텔 중식부 부주방장으로 입사했다. 2년뒤 전임자의 퇴사로 주방장 자리까지 물려받았지만, 마냥 기뻐할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플라자 호텔에 밀려 2년 내내 매출액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제일주의’를 표방하던 삼성측에선 ‘더이상 개선되지 않을 경우엔 차라리 문을 닫겠다’며 회장이 직접 최후통첩까지 내렸다.

손님 늘리기가 급선무였다. 그러나 이미 경쟁업체의 요리에 인이 박힌 고객들을 끌어오기란 웬만한 노력 없이는 쉽지 않았다. 주방장이 되자마자 별도의 고객명부를 만들고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손님이 찾아올때마다 그들이 먹은 음식을 빠짐없이 기록하며 취향을 체크했다. 그리고 “지난번엔 이것을 드셨지요? 이번엔 이것을 드셔도 식성에 잘 맞으실겁니다” 라며 고객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작전은 주효했다. 오래지않아 매출액이 급상승곡선을 그렸다. “개업 3년째 되던 해부턴 매출 1위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희 호텔하면 요리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만큼 독보적인 자리를 잡았지요.”

해외출장길엔 점심·저녁 두번씩 먹어보는 ‘고역’도 자청

회사에서 지원해준 해외연수도 큰 도움이 됐다. ‘벤치마킹’ 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개업이후 지금까지 1년에 서너차례, 중국이나 홍콩, 싱가포르 등 동남아 각국을 돌며 새 요리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게 목적이다. 특히 일본은 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해 큰 도움이 되는 곳. 나가기전엔 미리 현지 특급호텔이나 별미로 이름난 음식점 등 관련 정보를 준비했다가 현지에 가서 직접 맛도 보고, 주방장도 만나 만드는 법도 알아보는 등 새로운 정보를 얻어왔다. 물론 기본적인 것만 따오고 나머지는 다시 우리 입맛에 맞게 바꾸는게 원칙.

요컨대 그의 곰발바닥 요리는 88년 베이징 출장때 만든 기념작품이고 겨울 내내 말렸다가 3일간 물에 불리고 다시 하룻동안 꼬박 끓여 양념을 하는 전복요리는 96년 어느 단골로부터 소문을 듣고 홍콩에 나가 배워온 응용작품.

먹기위한 출장이라고 부러워 할 일만도 아니다. 가능하면 보다 많은 음식을 맛보는 게 지상과제. 이 때문에 점심 저녁을 두 번씩 먹기도 다반사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소화가 안돼 계단 왕복운동에다 수영까지 할 때도 있다. 빨리 다른 음식을 맛보러 가기위해 위장을 비우는 ‘딱한 사정’ 이다.

객지에서 반 스파이 취급을 받으며 봉변을 당하는 일도 서럽다. 88년 베이징 출장때엔 연경호텔에서 약선요리 재료를 몰래 수첩에 적으며 사진을 찍다가 들켜 ‘경을 쳤다’. 그래도 자정까지 식당앞에 진을 친채 담당요리사를 기다려 결국 원하는 비법을 듣고 돌아온 집념도 있다.

그렇게 늘린 요리가짓수만 현재 300여가지에 이른다. 그중 본인이 꼽는 최대의 히트작은 ‘불도장(佛跳牆)’. 사슴 힘줄과 잉어부레, 샥스핀 등으로 5시간 이상 쪄서 만든 이 음식은 89년 당시 정·재계 인사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요리이름은 ‘불공 드리던 스님도 그 냄새에 이끌려 담을 뛰어넘는다’는 말에서 따왔는데 ‘성직자 모독’ 이라는 이유로 당시 불교계가 노발대발, 조계종 관계자들에게 불려가 공개사과하고 불교계 신문에 정식 사과문을 싣는 등 한바탕 곤경을 치르고야 소동은 막을 내렸다.

요리 배우려면 먼저 인간적 신뢰와 성실성 길러야

입사 7년차에 들던 94년엔 당시 삼성그룹이 도입한 전문임원제도에 따라 화교로서는 처음으로 이사로 승진,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주방에서 경영일선에까지 활동무대도 넓어졌다. 직원관리에서부터 메뉴, 원가관리, 사원들 교육 등 당장 관리책임을 맡은 인원만 약 350명. 그들에게 가장 즐겨 들려주는 레퍼토리는 ‘중국 무림고수론’ 이다.

“요즘은 조금만 힘들어도 그만 두고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이 분야에선 언제나 맨 처음 청소하고 설겆이하는 일부터 시작하는게 원칙인데, 당장 요리부터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거나 ‘집에서도 이런 심부름은 안해봤다’며 도중에 그만두는 이들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쉽게 얻을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국 무술영화에 나오는 고수중에 자기 비법을 아무에게나 금방 가르쳐주는 사람 봤습니까? 정말 뭔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가장 사소해보이는 일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간적인 신뢰와 성실함을 쌓지 않으면 요리에서도 절대 좋은 기술을 배울수 없습니다.”

스스로도 편하고 따뜻한 것을 포기한 지 오래. 아침 7시에 출근하면 밤 10시가 가까워서야 집에 돌아온다.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도 행사만 있으면 회사로 달려가기 예사. 그래서 가족들에겐 내내 미안한 마음을 달고 산다.

앞으로의 꿈은 언젠가 멋진 자신의 개인식당을 여는 것, 또 조리업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조그만 조리전문학교라도 세워보는 것이다. 시기 문제는 그리 조급하지 않다. 이 ‘무림의 고수’는 평생을 두고 갈 길이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만 해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요리의 끝이란 없습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 중국요리는 더더욱 무한합니다. 완전히 통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지 않으면 누구든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곧잘 합니다. 상사를 두려워하지 말고 부하를 두려워하라. 언제든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경쟁자를 이기려면 그보다 두배 세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라고 예외일수 없겠죠.” 과연 냉엄한 ‘요림’(料林)의 세계다.

정영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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