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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지하철의 준법과 탈법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그자리에서 숨지고 중상을 입은 아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의사가 피투성이의 환자를 보고 “내 아이가 어찌된 일이냐”며 대경실색했습니다. 환자와 의사는 어떤 사이일까요? 사람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아버지가 숨진 상황에서 내 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뿐입니다.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 것은 의사는 으레 남성이라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라는 것으로 페미니스트들이 잘 인용하는 얘기입니다.

한사람이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묘안을 짜냈습니다. 그는 다리 주위에 돈을 싼뒤 깁스를 하면 세관을 무사히 통과할 것으로 생각했지요. 좀더 확실하게 하기위해 비행기 예약을 한뒤 공항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 출발시각을 알리고는 사고로 다리를 다쳐 휠체어가 필요하다며 선처를 요청해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비행기를 타는 날 공항당국에 “어떤 사람이 깁스를 한 다리에 거액을 숨겨 나가려 한다”는 제보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세관이 깁스를 한 사람을 검색한 것은 당연하지요. 그는 깁스를 풀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비행기는 출발했고, 깁스를 푸는 것에 마지못해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돈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세관측이 백배사죄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는 인권침해 명예훼손 등을 운운하며 한동안 소동을 피우다 귀가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다시 깁스를 하고 공항에 나타났습니다. 전날 혼쭐이 났던 세관은 검색은 고사하고 비행기 안까지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깁스 안쪽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모두가 그가 파놓은 함정이었지요. 공항당국에게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확실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금세탁업자’라는 책의 한 내용입니다.

두 가지 예를 든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편견에 빠지거나 선입견에 함몰된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지하철공사 노조가 본격 파업을 앞두고 지난 15일부터 ‘준법’운행에 들어갔습니다. 각 역에서 30초를 정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준법’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법을 지키는 것이 마치 문제가 있다는 투입니다. 노조는 항상 파업에 앞서 ‘준법운행’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서울 지하철의 대부분 역간의 운행시간은 2분내외입니다. 짧은 구간은 1분이 채 안되는 곳도 있습니다. 두역을 오가는데 2분내외가 소요되는데 정차시간이 합쳐 1분이나 되는 것은 분명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노조가 내세우는 준법운행 이유는 ‘안전’입니다. 30초 정차가 규정이든 아니든 그같은 ‘준법’은 고쳐져야 합니다. 복잡한 환승역은 30초로 하고 한가한 역은 10초로 하는 등의 합리적 대안을 찾아 명문화해야 합니다.

필자는 노조의 준법운행이 시작된 첫날 3호선과 4호선을 이용, 출근했습니다. 4호선 전동차는 서울지하철공사 소속으로 30초 정차를 지켰습니다. 평소보다 시계를 보는 승객들이 많았습니다.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타는 사람이 적어 평소 10초도 넘기지 않던 동작역에서도 정확하게 30초를 정차했습니다. 3호선의 을지로3가역과 종로3가역은 환승역으로 승객의 승하차가 많습니다. 그런데 3호선 전동차는 철도청 소속이었습니다. 두개역에서도 20초로 충분했습니다. 사고의 위험도 전혀 없었지요. 평소 55분 걸리는 사당-상계간 4호선의 운행시간이 1시간10분내외로 늘어났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시민들의 분통이 터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국 17일밤 그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부상자도 나왔습니다. 노조는 18일부터 평상시 운행으로 복귀했습니다.

노조가 내세우는 ‘준법’운행이유는 ‘시민의 안전’이었습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평소에 ‘불법운행으로 안전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공사측도 평소 노조의 ‘불법‘을 방치한 꼴입니다. 시민들의 ‘불편’을 노조와의 싸움에서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요. 노조와 마찬가지로 공사측도 시민을 ‘볼모’로 한 것이지요. 그같은 잘못을 고치지 않고서는 누구도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시민은 ‘볼모’가 아닙니다. 시민이 있기에 지하철이 있고, 그래서 노사도 존재합니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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