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배칼럼] 키신저 회고록 3부

04/28(수) 08:15

헨리 키신저. 닉슨과 포드대통령 시절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이며 국무부장관을 역임한 그가 지난 3월 세번째 회고록을 냈다. 제목은 ‘소생의 세월’(Years of Renewal)이다.

키신저는 79년 안보보좌관때를 회고해 ‘백악관 시절’ 이란 그의 공직 생활 회고록 제Ⅰ부를 펴냈다. 이어 82년에 73년9월서부터 74년 8월까지 워터게이트의 와중에서 보좌관과 국무부장관으로 일한 시기를 ‘격변의 세월’이란 Ⅱ부로 마무리한바 있다.

그리고 17년여만에 나온것이 ‘소생의 세월’ 이다. 키신저는 포드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낸 30개월을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기 위한 세월이었다”고 결론짓고있다. 그래서 Ⅲ부 회고록을 쓰기에 17년이나 걸렸는지 모른다.

세 회고록은 주해와 색인을 빼면 3,800쪽이나 된다. 처칠이 쓴 ‘2차대전’에 버금 간다. ‘항공모함급’ 회고록 이라고 평가받을 만 하다.

예일대학의 외교사가인 죤 루이스 가디스교수(‘냉전사 재고찰’ 저자)는 서평에서 “역사가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어마어마한 사료라는 화약을 장전해 알려지지 않은 과거, 미래를 향해 비판의 소리를 잠 재우려는듯 함포를 쏘아대는, 수준급 이상의 회고록이다”고 평했다.

처칠의 회고록은 2차대전을 치룬 영국의 지도자라는 한계속에 쓰여졌다. 그러나 키신저는 지도자는 아니며 그 한계를 벗어나 그가 상대한 여러 인간들의 성격에 대해서까지 서술의 대상을 넓힐 수 있었다.

이런면에서 이번 ‘회고록 3부’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워터게이트의 닉슨 을 향한 그의 평가다. 닉슨이 94년 4월에 죽은후에도 5년을 기다려 책을 낸 것을 보면 닉슨과의 관계를 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 처럼 보인다.

그동안 닉슨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었다. 많은 평자들은 닉슨을 72년 중국과 의 수교라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그를 워터게이트의 수렁에서 빼내준다. 그리고 ‘닉슨과 중국’을 생각하면 키신저는 동전의 또 다른 한면처럼 등장한다.

키신저는 94년 4월27일, 그가 직접 보좌했으며 외교사가로서도 평가한 바 있는 20세기 미국대통령중 가장 ‘복잡한 성격의 대통령’에 대한 추도사를 했다. “그는 다시는 내 생애에서 볼 수 없는 여러면을 가진 인간이다. 그는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는 정상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너무 많은 고통을 당했다. … 그는 전쟁(베트남 전쟁)을 끝냈다. 그는 한 퀘이커교도 청년으로 평화를 진척시켰다. 그와 함께 일한 것은 나에겐 특혜였다.”

키신저는 이번 회고록 ‘인간과 조직’ 이란 48쪽에 달하는 장에서 닉슨과의 26년여의 사귐을 감상을 빼고 객관화하고있다. 닉슨은 얼굴을 맞대고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고독한 지도자’ 였다.

대통령이란 미국에서 영웅적이거나, 스타가 되거나 해야하지만 그는 영웅도 되고 스타도 되고 싶어하는 내성적 인간이었다. 그는 보수우익이 아니었고 중도주의자였다. 그는 외교문제 결정에도 키신저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얼굴을 맞대고 해결하려 하지않았다. 백악관 집무실옆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방에서 모든 현실을 개념화하고 이론화한뒤 이미 각료와 보좌관이 제시한대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제안의 배경을 알고자 했다.

대통령은 작은방에 숨어 동부의 엘리트, 언론, 지식인계급이 그를 적으로 보고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키신저는 닉슨이 대통령직을 그만의 ‘낭만적인 고독’ 속에 보냈다고 평했다. 그래서 ‘복잡한 성격’ 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새삼 키신저 회고록 3부를 들먹이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월간조선’ 5월호는 노태우 전대통령 ‘육성회고록’ 1회분을 연재했다. 잠깐만 훑어봐도 ‘북방정책’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다. 그를 모시고 있는 보좌진들에게 권하고싶다. ‘육성 회고록’을 내기전에 먼저 ‘회고록’ 이나 ‘참회록’을 써라. 아니 그전에 보좌진이 키신저처럼 ‘시절’과 같은 회고록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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