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비리] 가진 자들의 비뚤어진 자식사랑

05/04(화) 16:44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입대(無錢入隊)’

국방의 의무가 국민의 4대 의무의 하나일 때는 병무비리가 계속된다? 국방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래서 가진 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병무비리에 대한 분노가 크다.

돈을 주고 아들이나 자신의 병역을 면제받은 은행장 부인, 기업인, 교수, 의사, 연예인, 운동선수 등과 브로커, 군의관 등 207명이 적발됐다. 이중 100명이 구속되고 80명이 불구속됐으며, 27명은 지명수배됐다. 부정 병역면제자 133명에 대해서는 현역 등으로 입영조치하기 위해 재신검을 받도록 했다.

적발된 207명은 금품 공여자 135명(구속 49, 불구속 75, 수배 11), 알선자 56명(구속 35, 불구속 5, 수배 16), 전·현직 군의관 16명(구속) 등이다.

검·경·군으로 구성된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는 지난해 12월1일부터 95~98년 서울지역 부정면제 혐의 사범 400여건에 대해 수사에 나서 모두 1,000여명을 조사한 끝에 207명을 추려냈다. 비리 연루 부모 등은 병역 면제 대가로 8,000만∼200만원을 제공했다. 검찰은 공여액 2,000만원을 구속기준으로 정해 처리했다.

병무비리 수사를 위해 합수부가 설치된 것은 사상 처음이고 단일 비리사건에서 100명 이상이 구속된 것도 80년대 건국대 사태 등 일부 공안사건을 제외하고는 최대이다.

돈으로 때우려 한 ‘국방의 의무’

수사결과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그릇된 자식사랑이 돈에 눈 먼 병무 브로커, 군의관 등과 결탁, 조직적인 병무비리를 양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비리는 계층간 위화감 조성은 물론 국방의 의무에 대한 심각한 불신까지 초래하고 있다.

수사를 맡은 검찰 관계자는 “병역 면제자는 ‘신의 아들’, 현역 복무자는 ‘어둠의 자식들’ 이라는 냉소적인 유행어의 근원에는 뿌리깊은 비리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탄했다.

이번 병무비리수사는 강남 등 소위 부자들이 사는 곳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강남 주부들에게 ‘병무해결사’로 알려진 최경희(51·전 강남구청 병사계장·수배)씨가 검거되면 병무비리 연루자들은 더 드러날 전망이다.

합수부는 또 전역 및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둘러싼 비리 30∼40건에 대해 본격 수사키로 하는 한편 브로커 등에게 돈을 주고 병역면제를 받아낸 것으로 추정되는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을 소환, 조사한뒤 사법처리키로 했다. 이들중에는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 소속 투수 위재영(27)씨와 탤런트 겸 모델 이석준(27)씨등이 포함돼 있다.

합수부는 이들외에도 병역면제 비리의혹이 있는 3∼4명의 연예인과 프로운동선수 등도 소환조사중으로 혐의가 확인되는대로 사법처리키로 하는 한편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병역면제를 청탁한 브로커와 일부 구단관계자도 조사중이다.

전역및 공익근무요원 비리의 경우도 부모와 병무청 직원 또는 군의관들 간에 1,000만∼2,000만원의 돈이 오가는 사례가 적발됐다.

한편 대검은 군당국이 지방의 병무비리 기초자료를 넘겨오는대로 합수부 검찰팀에 맡겨 확인과정을 거친 뒤 전국 지검·지청의 병무비리 전담팀에 맡겨 본격 수사토록 할 계획이다.

청탁인사들

사회유력계층 총망라

운동선수, 연예인, 기업체 사장, 고위 공직자, 은행 임직원, 교수, 의사 등 우리 사회의 유력 계층이 모두 망라됐다.

135명의 직업을 보면 사업이 37명으로 가장 많고 의사 7명, 회사원 6명, 공무원 6명, 은행임직원 5명, 교수·전문직 4명 등의 순이었다. 전체의 62%가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이다.

LG트윈스 야구단 소속의 서용빈(28)선수는 병무청 직원에게 2,500만원을 주고 병역면제 청탁을 한뒤 실패하자 다시 군의관에게 1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 병역을 면제받았다.

나래블루버드 농구단의 이민우(28·수배)선수도 국군수도병원의 군무원에게 수천만원을 줬으며 해태타이거즈 야구단 소속의 김종국선수는 아버지(54·개인택시)가 4,000만원을 써 면제받았다. 프로야구 쌍방울 구단주대행 이용일(67·전KBO 사무총장)씨도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돈을 뿌렸다.

연예인으로는 가수이자 방송진행자인 김상희(56)씨가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가수 김원준(30)씨는 의사로 서울구치소 의무 서기관인 아버지 김기영(58)씨가 각각 1,000만원을 건넸다.

기업인들중엔 대형 건설업체인 ㈜신성 회장 신영환(54), 우림해운 대표 최종태(45), 동성유통 대표 백송수(58), 그린웨딩홀 사장 정종대(53), 신생프로덕션 대표 송진화(53·여)씨 등이 적발됐다.

의사는 김용문(56·강서고려의원 원장), 구정열(56·마산중앙자모병원 원장), 안승택(부평 안병원)씨, 공무원은 전총무처 소청심사위원(1급) 한대희(66), 관악세무서 6급직원 김병만(56), 전서초구청 도시국장 이석도(49)씨, 은행 간부로는신한은행 서초지점장 임금택(54)씨 등이 적발됐다.

성남시의회 의원 김종윤(56)씨는 5,000만원을 주고 아들의 병역면제를 청탁했으나 브로커가 가로채는 ‘배달사고’ 때문에 4급 판정(공익근무요원)에 그쳤다.

한양대 의대 교수 주경빈(50·여), 인하대 교수 전용수(55), 변호사 임영득씨의 부인 강대균(68)씨, 김승유 하나은행장의 부인 김영욱(51)씨 등 부유층이 대부분인 반면 환경미화원의 부인(58·불구속)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아들의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어렵게 모은 300만원을 쓰기도 했다.

면제수법

허리·눈이 단골메뉴

‘디스크’로 불리는 수핵탈출증과 고도근시가 단골 면제수단. 흔히 발생하는 결함인데다 X_레이, 허위진단서, 시력검사서의 부정 발급이 쉽기 때문이다. 신경외과와 안과 결함이 각각 55건과 54건으로 절대 다수이고 정형외과 20건, 내과 4건, 치과 2건 순이었다.

황반의 변색으로 시력이 저하되는 황반변성과 부동시(짝눈) 등 안과결함과 선천성 요족, 간염, 아토피성피부염 등도 이용됐다.

면제판정은 주로 재검신청을 통해 이뤄졌다. 현역 또는 공익요원 판정을 받으면 처분변경원을 제출하고 로비를 벌인 뒤 재검에서 면제를 받은 경우가 72%였다.

뇌물 액수는 1,000만원대 37명, 2,000만원대 25명, 3,000만원대 21명, 5,000만원 이상 14명으로 수천만원대가 주류였다.

알선자

병무청 공무원이 비리의 첨병

정건표(46·서울지방병무청 6급), 최기택(44·〃 7급), 정윤근(47·병무청 6급)씨 등 3명이 ‘브로커 3인방’ 으로 통하는 등 병무청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비리의 ‘첨병’ 역할을 하면서 1억5,000만_2억1,000만원씩을 챙겼다.

수배된 ‘병무해결사’ 최경희씨는 상담시 ‘돈을 쓰면 뺄 수 있다’고 유학생 부모를 집중 공략한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원용수준위 사건에도 연루된 박노항(48·수배)원사는 20회에 걸쳐 6억여원을, 의무사령부 인사행정처장 김규형(48·대령)씨 등 의정 장교와 군의관도 다수 적발됐다.

브로커 중에는 병무청 공무원이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들의 부탁을 받고 면제판정을 해준 전·현직 군의관도 16명이 적발됐다.

수법은 최초 알선부터 면제판정까지 2∼3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단계마다 1,000만원 이상 뇌물이 오갔으며 심지어 6단계를 거친 사례도 있었다.

특이 사례

돈 대신 ‘공사’ 상납

신생프로덕션 대표 송씨는 6,000여만원을 주고 쌍둥이 형제의 병역을 한꺼번에 면제받았고 임대업자 전용배(48)씨는 큰아들은 면제, 둘째는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다.

주부 장재순(50)씨와 마산중앙자모병원장 구정열씨는 사위의 병역면제 청탁을 위해 각각 3,000만원, 1,000만원씩을 갖다 바쳤다.

전 대유공영 대표 유일수(51)씨는 도급업체 사장 아들의 병역면제를 대신 청탁하고 78억원 상당의 공사를 따낸 것으로 드러났다.

병무비리 신고전화는 검찰:02_753_9377 FAX 753_9377, 국방부:02_748_5980 FAX 748_5989, 병무청:02_820_4627 FAX 820_4629이다.

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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