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열풍] 다 털리고야 마는 이길수 없는 게임

05/04(화) 19:56

“라스베이가스 가는 길에 ‘기름값 떨어지기 전에 기름 넣으세요’라는 주유소 푯말이 농담처럼 서 있습니다. 태백 가는 길도 이런 주유소들이 들어서겠지요. 하지만 막상 돌아올 때는 버스타고 돌아오는 사람이 더 많을 걸요.”

국내외 카지노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C(52)씨. 얼마전 필리핀 카지노 친구로 부터 한국인들을 위해 한국어 가라오케를 설치했더니 ‘문전성시’라는 전화를 받았다. 라스베이가스에서는 심심치 않게 한국인 연예인들이 초청공연을 갖는다. 외국 카지노들의 한국인용 ‘덫’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그 덫에 일찍 걸려든 코미디언 황기순씨. 필리핀 카지노에서 10억이 넘는 돈을 날리고 동전수집원 생활을 하던 그는 뒤늦게 “내 기억에서 카지노를 영원히 지우고 싶다”고 했다. 황(불구속)씨와 함께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슬롯머신의 황제 정덕진씨는 작년 외화를 몰래 빼내 필리핀 카지노에서 수백만달러를 탕진하고 쇠고랑을 찼다.

97년에는 라스베이가스 미라지호텔의 로라 최가 외상 도박한 수십명에게 돈을 받으러 왔다 검거되는 바람에 ‘로라최 리스트’의 일부가 알려졌다. 기업인 등 알려진 사람만 수십명에 달했지만 로라 최는 교포출신인 MGM의 스텔라 권이나 시저스 팰리스의 데이비드 조에 비하면 ‘이도 안난 친구’에 불과하다. 로라최 리스트가 ‘수첩’이라면 이들 것은 ‘치부책’수준으로 보면 맞다고 C씨는 전한다. ‘잭팍(계속 적립돼 많아진 상금)’기대에 지금도 세계 카지노를 배회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얘기다.

이국땅이 아닌 한국에서 제2,제3의 황기순, 정덕진이 출현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내년 강원도 폐광지역에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가 문을 열면 C씨의 농담은 더이상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 않을 지 모른다.

카지노 업계에 게임 못하는 ‘워스트 갬블러’가 있다. 일본 아일랜드 맥시코 이탈리아 스페인 한국은 그래서 6인방으로 불린다. 이중 한국인은 중동처럼 큰손은 아니지만 지기 싫어하고 잃으면 빨리 복구하려는 조급증으로 결국 모든 것을 쉽게 잃어 봉으로 통한다.

실상을 알면 카지노는 그리 만만한 게임이 아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블랙잭은 4대 6정도로 카지노가 유리하고 베팅액수의 36배를 받는 룰렛도 딜러의 숫자인 0번과 00번이 더 있다. 카지노측이 절대 유리하도록 조종된 게임에서 운이 가끔 펼치는 각본없는 드라마도 결국은 역이용당하게 된다. 여기에 카지노는 고객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개인은 감당못할 노력을 기울인다.

얼마전 한 운 나쁜 일본인이 서울에 나타났다. 그는 즉흥베팅 아닌 주식투자가처럼 스스로 정한 룰에 따라 게임하는 ‘카지노 머신’(프로도박사)이었다. 딜러 카드교체 등으로 판의 흐름을 바꾸려 해도 꺽일 기세가 없자 카지노측은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분석, 여종업원이 지날 때 인상이 찌푸려진 사실을 발견했다. 여자의 화장품 냄새를 유독 싫어했던 그는 게임때마다 수시로 오가는 웨이트리스들로 빈털털이가 됐다. 카지노측 심리전의 승리였다.

오죽하면 ‘라스베이가스의 황제’미라지 레조트그룹의 스티브 윈 회장이 ‘카지노를 해서 돈을 따고 싶으면 카지노를 차려라’고 했을까.

이태규·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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